한 평 텃밭의 목적

한 해 농사를 시작하며.

by 조이홍

'귀찮은데 하지 말까. 아니다, 그래도 해야지. 지난 14년 동안 한 해도 거른 적 없는데….'


삼일절 아침, 태극기를 창밖에 내걸고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텃밭에 오른다. 십여 년 이상 해왔던 루틴, 언제나 가벼웠던 발걸음이 유난히 무겁다. 나이 앞자리가 바뀌어서 그런가? 아니다, 기분 탓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걸. 마음을 단단히 고쳐먹고 억지 텐션을 끌어올린다. 한 해 농사를 시작하는데 기분 좋게 출발해야지. 요맘때 항상 챙겼던 압축 계분도, 자연 계분도, 쑥쑥이(영양 만점 배합토)도 없으니 두 손이 가볍다. 어떤 채소를 얼마나 심을까 영혼을 갈아 넣으며 고민하던 '설계도'도 없으니 마음까지도. 올해 한 평 텃밭은 '자연스러움'과 '자유로움'을 추구하리라 마음먹은 탓이다. 맛집과 관광 명소를 선정해 다니는 여행은 안정감이 있지만, 계획 없이 떠나는 여행은 증류주가 우연히 오크통에서 황금빛을 얻은 것처럼 미지의 세계와 조우하는 묘한 쾌감으로 가득하다. 올해 한 평 텃밭 농사는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떠나는 자유 여행처럼 몸은 가볍게, 설렘만 가득 안고 떠나보려 한다.


꼬박 3개월을 방치한 한 평 텃밭은 을씨년스럽다. 지난가을 끝자락에 고라니에게 양보했던 마지막 배추 한 포기와 무청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으니 어느 추운 겨울날, 고라니 가족의 허기진 배를 단단히 채웠으리라 기대해 본다.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으리라 예상했는데 봄소식에 잡초들이 먼저 마중 나왔다. 반갑지는 않지만 만물이 태동하는 봄의 섭리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저것도 잡초인가? 아니다. 쪽파다. 반가운 마음에 버선발로 뛰쳐나간다. 추운 겨울을 오롯이 자기 안에 간직한 에너지와 영양분만으로 버틴 쪽파가 파릇파릇 줄기를 한껏 뻗었다. 까맣게 잊고 지냈는데 어김없이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증명하는 쪽파, 보일러도 온수도 없이 겨울을 난 쪽파에게 경외심마저 들었다면 지나친 감정팔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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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중순부터 밭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밑거름을 준 야심 가득 텃밭 4대 천왕의 텃밭은 벌써 두터운 땅을 뚫고 올라온 새싹들로 파릇하다. 농장식 텃밭을 경영하려면 부지런을 부산히도 떨어야 하는구나 생각하니 땅 부자가 조금도 부럽지가 않다. 텃밭에서 키운 채소들로 위층과 아래층에 마음을 나누고, 또 절반(까지는 아니지만)은 뚝 떼어 고라니에게도 양보하니 손바닥만 한 땅에서 짓는 농사 치고는 제법 쓰임이 넉넉하다. 인간의 욕심에는 브레이크가 없는 법이니 아예 처음부터 제한 속도를 설정해 놓기로 했다. 웬만하면 잡초도 그냥 둬야지 싶다. 이름도 없어 서러운데 보이는 족족 뽑히는 운명이 어찌나 애처롭던지.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 뱃속에 부처님이라도 들어앉은 것처럼 관대해졌을까. 그저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었을 뿐인데. 결심하지 않으므로 결실 맺는 삶을 살아보고 싶었나 보다. 와우, 나 쫌 멋진데. 20여분 만에 뚝딱 텃밭을 갈아엎고 발걸음 가볍게 집으로 향했다. 그래, 텃밭에 올라오길 잘했다. 우리 가족 입에만 들어간다면 아마 올해 농사는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주린 고라니 가족 A 씨의 한 끼, 이웃과 정을 나누는 푸릇푸릇한 매개체, 한 평 텃밭의 목적이 살랑대는 봄바람처럼 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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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가 훌쩍 지나 둘째 아이와 오순도순 손을 맞잡고 다시 텃밭에 올랐다. 역설이다. 싫다는 걸 억지로 데리고 나왔다. 운동 좀 시키려고 말이다. 씨 뿌리기 좋은 날이니 씨를 뿌려야 하지 않겠는가. 아직 눈이 휙휙 돌아가는 식물원에는 가지 않았다. 귀여운 쌈채소 모종들이 반갑게 맞이해 줄 테지만, 이번에는 씨앗으로 뿌리기로 했다. 욕심에 눈이 멀어 지난 몇 년 동안 사놓은 쌈채소 씨앗이 에코백 안에 거짓말 조금 보태 20여 개가 넘었다. 유통 기한 지난 씨앗도 제법 눈에 띄었다. 올해도 심지 않으면 이들의 운명은 고작 작은 알갱이로 끝날 터였다. 그것도 그리 나쁘지 않겠지만, 신록으로 거듭나는 것이 이들의 숙명이라 믿었다. 상추만 10여 종에 쑥갓, 청경채, 청겨자까지 텃밭 3분의 2를 쌈채소만으로 채웠다. 우연히 채송화와 봉선화 씨앗도 발견해 이웃 텃밭 경계에는 꽃씨도 뿌렸다. 그래, 언젠가는 입에만 좋은 식물이 아니라 눈에도 좋은 식물도 가꿨었지 기억이 새록새록했다. 너무 오래되어 싹을 틔울지 의문이지만 다시 한번 만물을 태동시키는 봄의 기운을 믿어 보기로 했다. 인간과 달리 땅은, 자연은 노력한 만큼 돌려주니 말이다. 텃밭 3분의 1을 남겨 둔 건 오이와 고추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다. 아무리 '자유'를 추구해도 오이와 고추 없는 한 평 텃밭의 여름은 상상할 수 없었다. 무더운 여름, 뙤약볕에 담대하게 자라는 싱싱 오이를 만나는 기쁨을 포기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사각사각한 오이 고추도.


그래, 결국 한 평 텃밭을 가꾸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다. 텃밭은 나의 위안이자 위로이자 치유다. 한 평 텃밭에서 나는 조금 더 품이 넓은 사람이 된다. 콧노래를 흥얼거리자 완연한 봄기운이 세포 하나하나에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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