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 아침, 눈뜨자마자 태극기부터 달았다. 늦잠을 잤더니 시곗바늘이 둔각과 예각 사이를 하염없이 방황했다. 창문 밖으로 머리를 거북이처럼 쭉 내밀어 이웃집 창문을 째려보았다. 당장 눈에 들어오는 태극기는 우리 집을 제외하면 딱 한 곳밖에 없었다. 역시나…. 짧은 탄식이 터져나왔다. 다들 애국심이라곤 어디다 팔아 치웠는지…. 혼자 잘난 척, 애국자인 척 넋두리를 늘어놓다가 이 사연을 브런치에 일러바쳐야지 마음먹고 컴퓨터를 켰다. 글을 쓸 때면 으레 유튜브로 음악을 들었다. 요즘 한창 빠진 곡은 일본 애니메이션 OST였다. '신카이 마코토'라는 애니메이션 감독을 특히 유달리 좋아했다. <초속 5cm>, <언어의 정원>,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같은 작품들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보았는지 모른다. 그의 작품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OST가 하나같이 보석 같았다. 특히 더구나 우리나라에서 뒤늦게 개봉한 '스즈메의 문단속' OST에 꽂여 최근에는 글 쓸 때마다 항상 그 곡을 틀어 놓았다. 한창 글을 쓰는 데 둘째 아이가 다가와 "아빠, 일본 노래 들어, 삼일절에?" 하는 게 아닌가! 습관이 이렇게 무섭다. 깨어 있으려 노력하지 않으면 타성에 젖고 만다. 얼른 음악을 끄고 쓰던 글도 전부 지워버렸다. 혼자 얼굴이 시뻘게졌다. 무슨 자격이 있다고 남들을 몰아세울 수 있겠는가. 오늘 하루는 일본 애니메이션 OST를 듣지 않기로 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컴퓨터에서 비발디의 <사계> 중 '봄' 악장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오덕 선생님의 <바른 말 바른 글>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특히'라는 말이 일본말을 따라 쓰는 표현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특히'라는 말 대신 우리말 '유달리'나 '더구나'를 쓰면 된다. 오늘 글에도 무의식적으로 '특히'를 두 번이나 사용했다. '유달리'와 '더구나'를 쓰면 더 자연스러운 것을…. 이래저래 가시방석에 앉은 듯 반성할 게 많은 삼일절 아침이다.
사족이지만, 지구촌에서 전 세계인이 공존하는 시대다. 일부에서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 지적은 정당하다. 단, 잘못한 자가 진정한, 그리고 진솔한 사과를 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