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섬 (3)

픽스-업 소설 지구연대기(파트 2)

by 조이홍

처음 도전하는 바다낚시라 잔뜩 긴장했는데 선장님 설명을 듣고 나니 의외로 무척 간단했다. 낚싯바늘에 미끼로 쓸 작은 새우를 끼우고 바다에 던진 후, 봉돌이 바닥에 닿으면 줄을 서너 차례 감아 주면 끝이었다. 물론 작고 빨간 크릴새우를 낚싯바늘에 끼우는 게 끔찍하긴 했지만, 눈을 질끈 감고 새우 배에 바늘 끝을 밀어 넣었더니 그럭저럭 선장님이 보여준 걸 흉내냈다. 일찌감치 엄마와 뒤편에 자리 잡은 동생을 피해 아빠와 배 왼쪽에 자리를 잡았다. 이제 겨우 준비를 마쳤을 뿐인데 굵은 땀방울이 멈출 줄 몰랐다. 땀 닦을 틈도 없이 낚싯대 끝을 매의 눈으로 노려보았다. 이제부터 실전이다.

세상사가 언제나 그렇듯이 바다낚시도 말은 쉬웠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온몸의 감각을 총동원해도 좀처럼 입질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아까운 새우만 끊임없이 축낼 뿐이었다. 얼마나 많은 새우를 바다로 돌려보냈을까, 한 통 가득했던 미끼통이 바닥을 드러냈다. 목이 타들어 갈 지경인데도 1분 1초가 아까워 물조차 마시지 않았다. 낚싯대 끝이 파르르 떨린다 싶어 줄을 감으면 은빛 낚싯바늘만 처량하게 딸려왔다. 초심자의 행운이란 말도 바다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험한 말이 튀어나오려는 걸 겨우 밀어 넣었다. 온종일 열기를 뿜어대느라 지쳤는지 한낮의 태양도 편안한 무심함으로 단잠에 취한 완벽하게 평범한 오후였다. 앙증맞은 흰구름 하나가 무리를 이탈한 어린 양처럼 파란 하늘을 천방지축 날뛰었다. 고요한 바다도 심심한지 이따금 작은 너울을 흘려보내 옐로우서브마린 호에 장난을 걸었다. 어느새 새우 미끼를 낚싯바늘에 끼우는 일조차 무덤덤해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지루해 미쳐버릴지도 몰랐다. 옛날 방식이긴 했지만 책으로라도 낚시 공부했던 아빠 도움이 절실했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 옆에서 함께 낚시하던 아빠가 보이지 않았다. 얼른 낚싯대를 고정하고 배 뒤편으로 갔다.

“야, 정호민! 아빠 어디 계셔?”

“내가 어떻게 알아? 바쁘니까 말 시키지 마.”

새우를 바늘에 끼우던 동생 목소리에서 날카로운 쇳소리가 났다. 서귀포 앞바다 물고기는 혼자 다 잡을 것처럼 큰소리치더니 실컷 허탕만 치고 화풀이를 형한테 했다. 뒤통수라도 한 대 후려갈기고 싶지만 녀석과 괜히 엮이고 싶지 않았다. 굳이 이 몸이 나설 필요도 없었다.

“너 구명조끼 똑바로 안 입을래? 엄마, 호민이 좀 보세요.”

“또 이른다. 고자질쟁이!”

“호민아, 아까 선장님 말씀 들었지? 아무리 더워도 구명조끼는 제대로 입어야지.”

툴툴거리던 녀석이 마지못해 구명조끼 버클을 다시 채웠다. 입을 꾹 다물고 있어도 두 눈은 이글이글 타올랐다. 혀를 쏙 내밀어 골려주고는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마침 아빠가 배 한가운데에 있는 조그마한 선실에 누워있는 걸 발견했다.

“아빠, 괜찮으세요?”

“주민아, 아빠는 하늘이 팽팽 돈다. 잠깐 누워있을게 동생이랑 사이좋게 낚시해. 아빠 몫까지 많이 잡아야 해.”

고깃배에 오르기 전까지만 해도 아빠는 동생 못지않게 낚시에 자신감을 보이던 바다 사나이였다. 싱싱한 횟감에 생선구이까지 저녁 밥상을 책임지겠다던 아빠가 멀미로 꼼짝달싹 못 하고 있으니 측은하면서도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배낭에서 생수병 하나를 꺼내 아빠 옆에 두고 선실을 나왔다. 그 순간 엄마가 단거리 육상 선수처럼 쏜살같이 지나갔다.

“엄마, 아빠가….”

엄마는 아이돌 가수처럼 손바닥을 펼쳐 몇 번 요란하게 흔들더니 선실 반대편에 있는 화장실로 내달렸다. 규칙을 잘 지키는 모범생이 카리스마 선장님의 안전 수칙도 무시한 채 급하게 달려가는 걸 보니 탈이 나도 단단히 난 게 분명했다. 낚싯대를 챙겨 동생 옆에 자리를 잡았다. 엄마가 자리 비운 줄도 모르고 낚싯대 끝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무서운 집념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공부를 저렇게 좀 하지.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서둘러 미끼를 끼우고 낚싯줄을 바다에 던졌다. 그제야 녀석은 힐끗 곁눈질했다.

“내가 애야, 왜 왔어? 형아 자리로 가!”

“네가 예뻐서 온 줄 알아? 아빠가 사이좋게 낚시하래서 어쩔 수 없이 온 거야. 멀미로 누워 계셔. 넌 너밖에 모르지?”

“낚시하다 말고 무슨 잠꼬대야. 옆에서 낚시하고 싶으면 입 다물어.”

“…….”

기가 막혀서 말도 안 나왔다. 뒤통수를 한 대 쥐어박으려는데 마침 엄마가 돌아왔다. 자외선 차단제를 발라 새하얗던 얼굴이 그새 누렇게 변했다. 한 번도 약한 모습 보인 적 없는 엄마도 멀미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주민아, 엄마도 더는 못 할 것 같아. 아빠 옆에서 쉬고 있을 테니까 동생 좀 잘 챙겨. 그만 좀 티격태격하고. 호민이는 형 말 잘 듣고. 알았지?”

말 끝나기가 무섭게 엄마는 다시 화장실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모든 일에 철두철미한 눈의 여왕에게서 오랜만에 인간미가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약속이나 한 것처럼 배에 탄 어른들은 죄다 멀미로 힘들어했다. 치타도 앞지를 스피드로 내달린 엄마가 화장실을 차지하자 보라색 원피스를 입은 아줌마가 그새를 참지 못하고 바다를 향해 총천연색 폭포수를 토해냈다. 나머지 두 아줌마들도 바닥에 거의 쓰러지다시피 했다.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아무도 멀미하지 않았다. 너울도 거의 없는 바다라 오히려 침대에 누워있는 것처럼 편안했다. 대신 아이들에게는 다른 문제가 있었다. 지루함이라는 심술쟁이 요정이 착 달라붙어 괴롭혔다. 한 시간이 되어가도록 그 흔하다는 자리돔조차 구경하지 못했다. 누군가 멀리서 옐로우서브마린 호를 바라보았다면 컴퓨터 바탕 화면에 나올법한 고즈넉한 풍경이라고 감탄할지 모르지만, 정작 낚싯배 안에는 고통스러운 멀미와 지독한 지루함만이 가득했다. 아이들의 벌겋게 그을린 두 볼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풍선처럼 뿔룩해졌다. 당장 선상 반란이 일어나도 이상할 게 없었다. 바다는 잘 알아도 사람 마음은 모르는 무뚝뚝한 선장님이 사태를 파악했는지 갑자기 분주해졌다. ‘삑삑삑’ 요란한 뱃고동이 낮잠 자는 바다에 울려 퍼졌다. 그간 수천 번도 넘게 바다에 나왔지만, 이런 일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며 이제라도 뱃사람 자존심을 지키겠다며 선장님만 아는 황금어장으로 이동할 테니 낚싯대를 거두라고 했다. 순간 지루함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던 아이들이 제자리에서 겅중겅중 뛰며 함성을 질렀다. 그와 동시에 끙끙 앓는 소리도 두 배로 커졌다.


옐로우서브마린 호가 물살을 가르며 다시 짙은 바다를 향해 질주했다. 옥빛 바다가 점점 남색으로 변했다. 저 멀리 위미항이 블록 장난감처럼 보이다 이내 사라졌다. 배 뒤편에 나란히 앉은 동생과 그새를 못 참고 누가 입질이 많았는지 시비가 붙었다. 내가 다섯 번쯤 입질이 온 것 같다고 하자 동생은 열 번은 족히 넘는다고 맞받아쳤다. 입질인지 어떻게 아냐고 묻자 낚싯줄을 걷어 올리니 새우가 없어졌단다. 그런 것도 입질로 치면 백 번도 넘는다고 하자 그럼 이백 번이라고 얼른 말을 바꿨다. 천 번이라고 했으면 이천 번이라고 우겼을 녀석이다. 수준 낮은 녀석과 말을 섞은 내가 바보지 싶어 얼른 등을 돌려 앉았다. 그 순간, 마치 개기 일식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머리 위에서 한가로이 졸고 있던 태양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온 세상이 흑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하늘도 바다도 온통 새카맣게 변했다. 살랑거리던 남풍도 사나운 돌풍이 되어 덮쳤다. 바다에서 반백 년을 보냈다는 선장님이 갑작스레 바뀐 날씨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휴대전화를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되지 않는지 몇 번이고 다시 시도했다. 옐로우서브마린 호가 세차게 요동치자 멀미로 정신을 놓았던 어른들이 하나둘 깨어났다. 엄마와 아빠도 비틀거리며 선실에서 뛰어나왔다. 아기처럼 온순한 바다는 온데간데없고 성난 들소 떼처럼 난폭해진 바다가 거침없이 옐로우서브마린 호를 흔들어댔다. 엄마가 한 손으로 동생을, 다른 한 손으로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아무 일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저 바람이 좀 강해질 뿐이야. 여보, 당신도 애들 손 잡아요. 어서.”

걱정하지 말라는 엄마 목소리를 듣자 더 걱정되었다. 그렇게 떨리는 목소리는 처음 들었다. 동생과 내 손을 꼭 쥔 아빠가 큰 소리로 외쳤다.

“혹시 바다에 빠져도 절대 겁먹으면 안 돼. 구명조끼도 입었고 수영이라면 다들 자신 있잖아. 구조대가 금방 올 거야. 그러니 정신 바짝 차려야 해. 알았지? 아빠가 너희 얼마나 사랑하…….”

아빠가 하는 말을 끝까지 듣지 못했다. 어디에선가 날카로운 비명이 들리더니 누군가 세상의 스위치를 갑자기 꺼버린 것처럼 눈앞이 온통 캄캄해졌다. 그리고 한여름 열기를 가득 품은 바닷물이 온몸을 휘감았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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