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섬 (7)

픽스-업 소설 지구연대기(파트 2)

by 조이홍

이곳이 섬이라면 무인도가 분명했다. 정겨운 오솔길을 상상한 건 아니지만 이건 정말 해도 해도 너무했다. 길이라고 부를만한 건 어디에도 없었다. 빼곡하게 자리 잡은 나무들을 방패 삼아 검은 숲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숲에서 동생은 손에 쥔 나뭇가지가 마치 정글 칼이라도 되는 양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닥치는 대로 내리쳤다. 한 번씩 괴상한 기합도 넣었다. 처음에는 그런 동생이 대단해 보였는데 오히려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한 척해도 고작 열네 살 중학생이었다. 벌레는 그렇다고 쳐도 어두컴컴한 숲이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일 터였다. 게다가 땅도 고르지 않고 돌에 낀 이끼를 밟아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나아가는 속도가 점점 더뎌졌다. 경쟁하듯 넘어지고 미끄러지기를 반복하니 어느새 둘 다 팔다리가 성한 곳이 없었다. 어떤 식물은 닿기만 해도 가시에 찔린 것처럼 따끔했다. 해변으로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 뭐라도 해야 했기에 계속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질색할만한 벌레나 생명을 위협하는 맹수와 마주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반면 안 좋은 소식은 백 가지도 넘었다. 마실 물은커녕 쉴만한 장소나 먹을거리도 없었다. 기분 나쁜 숲의 끝이 어딘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언제부턴가 계속 같은 장소를 맴돌았다. 이대로 가다간 해변에 있을 때보다 상황이 더 안 좋아질 게 뻔했다. 불길한 생각 하나가 머릿속에 뿌리를 내리더니 두려움을 자양분 삼아 쑥쑥 자랐다. 두려움은 걱정을 낳고, 걱정은 잽싸게 절망을 불러왔다. 물을 마시지 않고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나무위키에서 읽었던 기억이 났다. 3일…, 이론적으로 3일이었다. 극한 상황에서는 일주일 이상도 가능했다. 한여름 숲 속에서 길 잃은 아이들이라면 어떨까. 꼬박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땀도 비 오듯 흘렸으니 일주일은 어림도 없었다. 당장 탈수증상이 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머리가 뱅글뱅글 도는 게 정신이 아찔했다.


“호민아, 잠깐 쉬었다 가자. 야, 정호민! 안 들려?”

제자리에 멈춰 선 동생이 뒤를 돌아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시뻘겋게 부은 눈에서 당장이라도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질 듯했다. 앞장서겠다더니 무서운 건 녀석도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칭찬받을 만했다.

“잠깐 쉬었다 가자, 이러다 탈수증 걸리겠어.”

“형아, 물도 먹을거리도 못 찾으면 우리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왜 못 찾아! 무슨 일이 있어도 찾아야지. 너, 사람 몸이 얼마나 강한 줄 알아? 안 먹고 안 마셔도 일주일은 거뜬히 버틸 수 있어. 얼마 전에 본 다큐멘터리 기억 안 나? 그 아저씨는 40일도 넘게 단식했잖아.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야. 못 찾는다는 말 하지 마. 우린 꼭 찾아낼 거니까!”


동생이 코앞에 있는데도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사실 그건 나를 향한 절규였다. 아무리 좋게 마음먹으려 몸부림쳐도 현실에선 티끌만 한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절망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다 이대로 깊숙이 가라앉을 터였다. 그러다 문득 제주행 비행기 안에서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큰 배와 함께 바다에 가라앉아 별이 된 형들과 누나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눈의 여왕이라는 별명과 달리 봄날 오후의 햇살 같은 얼굴로 내 손을 꼭 쥐며 말했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이 닥쳐도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고. 만약 그런 상황에 처하면 자신을 믿고 행동하라고. 그리고 곁에 동생이 있으면 함께 하라고. 동생을 보살피는 게 결국 나 자신을 돕는 일이라는 알 듯 모를 듯한 이야기였다. 그게 형제의 운명이라나. 내가 뭐 잘못한 거 없나 염탐하다 툭하면 엄마한테 이르기나 하고, 하는 말마다 사사건건 꼬투리 잡는 녀석을 지켜주라는 말이 하필 이 순간에 떠올랐다. 쉽게 포기하면 안 된다. 이제 겨우 몇 걸음 내디뎠을 뿐이다. 가슴에서 자꾸만 무언가가 끓어올랐다. 눈물이었다. 눈물샘은 눈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가슴에도 있었다. 그 순간 다급한 목소리로 동생이 외쳤다.


“형아, 저기 봐, 저기! 저거 산딸기 아니야?”

아무 일 없다는 듯 재빨리 눈물을 훔치고 동생 손끝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키 큰 나무들 사이로 햇살이 간간이 비치는 곳에 동생 키만 한 덩굴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그 덩굴 사이사이에 검붉은 열매가 촘촘히 박혀 있었다. 시골 할머니 댁에 갔을 때 뒷산에서 따먹었던 산딸기를 닮았다. 당장 쓰러질 것 같던 두 사람이 비탈길을 한걸음에 내달렸다. 덩굴 앞에 도착하자 영화 속 장면처럼 한 줄기 빛이 검붉은 열매를 환하게 비추었다.

“산딸기 맞지? 우리 아빠랑 시골 할머니 댁에서 먹어 봤잖아.”

“생긴 건 비슷한데. 잠깐 기다려 봐.”

“기다리긴 뭘 기다려. 산딸기 맞다니까. 나만 믿어.”

말 끝나기 무섭게 열매 하나를 입어 넣는 녀석. 말릴 겨를도 없었다. 잠깐 맛을 보나 싶더니 씹지도 않는지 연신 입에 열매를 욱여넣었다. 잿빛 얼굴에 금방 화색이 돌았다. 열매 하나를 입에 넣고 천천히 씹었다. 새콤달콤한 과즙이 할머니 댁에서 먹었던 산딸기와 비슷했다. 산딸기가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지금까지 먹어 본 과일 중에 가장 달고 맛있었다. 삼킨 열매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몸이 휘청하더니 현기증이 밀려왔다. 꼬박 이틀 만에 먹는 음식이었다. 뱃속에서 더 내놓으라고 아우성쳤다. 머리에서 먹어도 좋다는 신호를 보내기도 전에 손이 먼저 움직였다. 기다란 컨베이어 벨트에서 끝없이 밀려오는 부품을 조립하는 협동 로봇처럼 쉬지 않고 열매를 입에 넣었다. 수십 개를 입에 넣었지만 처음 먹었던 걸 제외하면 맛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단지 먹는다는 본능,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만 있었다. 기적처럼 발견한 열매 덕분에 배고픔과 목마름이 한꺼번에 해결되었다. 탈수증 걱정도 덜었다. 절망과 희망은 지구와 달의 거리만큼 멀리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동전의 양면처럼 착 달라붙어 있는지도 몰랐다. 결국 그 동전을 뒤집는 건 우리 몫이었다. 이번에도 엄마 말이 맞았다.


한참을 정신없이 먹었더니 열매가 눈에 띄게 줄었다. 그만 멈추어야 했다. 유일한 양식을 한꺼번에 먹어 버리면 곤란했다. 붉은 열매로 허기진 배를 달랜 덕분에 꽉 막힌 머리도 덩달아 뻥 뚫렸다. 이렇게 넓은 숲에서 오직 한 곳에서만 열매가 자랄 리 없었다. 다른 장소에서도 열매를 발견할 가능성은 충분했다. 먹을거리를 찾지 못하면 이곳으로 돌아오면 그만이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은 껐으니 지형 파악을 서둘러야 했다.

“다 먹었지? 이제 움직여야 해. 언제 해 떨어질지 몰라.”

“산딸기는 어떻게 하고? 챙겨가야지.”

“마땅히 담아갈 데가 없잖아.”

“음…. 형아, 양말 벗어봐.”

“갑자기 양말은 왜?”

“산딸기 담아야지.”

“더러워서 어떻게 먹으려고? 차라리 바지 주머니에 넣는 게 어때?”

“지금 이것저것 따질 처지야? 게다가 산딸기를 바지 주머니에 넣으면 으깨져서 먹을 수나 있겠어? 똑똑한 척은 혼자 하더니만. 쯧쯧.”

동생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자연스레 두 사람 시선이 아래를 향했다. 흰색이던 양말이 회색에 가까워졌다. 군데군데 녹색 물도 들었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신발을 벗었다. 퀴퀴한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시큼하고 고린내 나는 양말에 유일한 양식을 넣어야 한다니. 그렇다고 신발에 담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양말을 벗자 발바닥에 백 원짜리 동전만 한 물집이 보였다. 숲을 헤매느라 아픈 줄도 몰랐다. 작은 가시 하나만 박혀도 집이 떠들썩하도록 난리를 피웠는데 이 정도 물집에 담담한 모습이라니, 나도 모르게 내 몸이 낯선 환경에 적응했다. 나란히 서서 열매를 양말 속으로 하나하나 정성스레 넣었다. 양말은 보기보다 깨끗하다고 연신 주문을 걸었다. 양말 두 짝을 먼저 채운 동생이 양쪽 끝을 매듭지어 구명조끼에 걸었다.

“두 손이 자유로워야 걷기에 편하니까. 형아도 해봐.”

“이런 것도 유튜브에 나와?”

“이 정도는 기본이지. 난 뭐 매일 유튜브만 보는 줄 알아?”

양말 끝을 매듭지어 구명조끼에 거는 사이 동생은 덩글 주위 나뭇가지를 꺾어 표식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알던 동생이 아니었다.

“형아, 무작정 숲을 헤맬 게 아니라 높은 곳으로 올라가 보자. 정상에 오르면 우리가 있는 곳이 한눈에 들어올 거야.”

막 출발하려던 순간 동생이 말했다. 뒤통수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듯했다. 숲 속에 들어오면 무언가 찾으리라 막연하게 기대했다. 그 대가는 가혹했다. 천만다행으로 산딸기를 닮은 열매를 찾았지만, 아무 계획 없이 길을 나서는 건 가만히 있는 것만큼 위험했다. 동생 말대로 높은 장소로 이동해야 한다. 매일 뒹굴뒹굴하며 유튜브만 본다고 무시했는데 이곳에 온 이후로 동생이 변했다. 녀석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혼자만의 착각일지도 몰랐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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