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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Dec 13. 2019

라떼도 말이야 (2)

인생 수업

  연예인에는 1도 관심 없던 준도 드디어 입덕을 했다. 프로듀스 101 시즌2를 통해 화려하게 데뷔한 '워너원'에 꽂혔다. 우~아~한 피아노 선율과 함께 시작하던 주말 아침이 워너원의 '에너제틱'으로 바뀌었다. 11명 멤버들의 신상을 꿰뚫고 있는 준이 대단해 보였다. 문방구에서 워너원 스티커며 멤버들 사진도 사들이기 시작했다. 'OO리아'에서 가장 비싼 세트를 구매하면 워너원 브로마이드를 증정하는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OO리아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로 넘쳐나는 것을 처음 보았다. 우리도 준의 성화에 못 이겨 온 가족이 출동해 그 비싼 세트를 사 먹었다. 집에 워너원 브로마이드가 쌓여 갔다. 


  준은 워너원 브로마이드를 방에 붙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아내는 반대했다. 연예인을 그렇게 좋아해 본 적이 없는 아내는 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중재자로 나섰다. 저맘때면 연예인 좋아할 나이라고, 자기 방에 붙이는 건데 그쯤은 해줘도 좋을 것 같다고 아내를 설득했다. 아내는 (아빠의 책임하에) 스카치테이프로 살짝 붙였다가 나중에 티 안 나게 떼는 조건으로 준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정말 즐거워하는 준의 모습을 보니 국민학교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나도 딱 그 나이 때 연예인 앓이를 시작했다. 


  내가 사랑한 첫 번째 연예인은 이선희 누나였다. 'J에게'로 MBC 제5회 강변가요제 대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사실 강변가요제에 출전했던 이선희 누나의 모습은 약간 촌스러웠다. 하지만 1집 앨범 <아 옛날이여>와 함께 등장한 누나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 있었다. 폭발적인 가창력과 함께 보이쉬한 모습이 매력 만점이었다. 그런 누나를 당시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를 졸라 카세트테이프를 구매해 닳고 닳도록 들었다. 문방구에서 판매하는 누나 사진도 모으기 시작했다. 당시 사진 한 장은 50원이었다. 당시 누나들이 아르바이트를 해 월급을 받으면 내게도 조금씩 용돈을 줬는데 그 돈으로 전부 이선희 누나 사진을 사들였다. 당시 코팅된 사진은 100원에 판매했는데, 그 돈을 아끼려고 집에서 직접 코팅을 하기도 했다. 코팅 비닐 사이에 사진을 넣고 다리미로 꾹꾹 눌러 주면 나름 질 좋은 코팅 사진이 완성되었다. 앨범에 차곡차곡 사진을 모으며 나중에 꼭 이선희 누나랑 결혼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학교를 졸업하던 날 이선희 누나 사진을 모두 버렸다. 과거는 훌훌 털고 중학생이 되어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고 (반 강제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뭔가 내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했고, 그렇게 몇 년간 모아두었던 누나의 사진을 버리기로 했다. 다시는 연예인한테 관심을 갖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누나의 사진을 버리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87년 청순하면서도 이국적인 매력의 고교생 가수 이지연 누나가 데뷔를 했다. 1집 앨범 <그때는 어렸나 봐요 / 안개 모습>에 수록된 '그 이유가 내겐 아픔이었네', '난 사랑을 아직 몰라'가 연이어 히트를 했다. 이선희 누나의 사진을 버려가며 다시는 연예인을 좋아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나는 아름다운 이지연 누나에게 흠뻑 빠지고 말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사진 모으기도 시작했다. 카세트테이프 또한 닳고 닳도록 들었다. 마침 어린이 회관에서 열리는 연말 콘서트에 누나가 출연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방에서 연예인을 직접 보는 것이 어려울 때였다. 누나를 보려고 추위 속에서 몇 시간을 기다렸다. 운 좋게 출연자 대기실에 들어갈 기회가 생겨 누나를 직접 보고 싸인도 받았다. (사실 목숨 걸고 들어갔다) 눈앞에서 누나를 직접 보니 너무 떨려 악수 한번 하고 싶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누나와 악수를 못한 것이 평생의 한으로 남았다. 이지연 누나는 갑작스러운 은퇴(?)로 연예계에서 흔적을 지워 나갔다. 나는 오래도록 누나를 기억하고 싶었지만 얄궂게도 그 기억은 점점 희미해졌다. "Out of sight, out of MIND" 


  88년 최고의 하이틴 스타 故 최진실 누나가 데뷔를 했다. 아마도 그 시절 중, 고등학교에 다니던 남학생들 중에 최진실 누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남부군>, <꼭지딴>,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2> 등 출연하는 영화는 빠지지 않고 관람을 했다.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도 한 회도 빠지지 않고 시청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한국적인 미인의 전형이던 최진실 누나 역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지금까지 내가 사 모았던 연예인 사진 중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최진실 누나 사진이다. 최진실 누나는 9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여배우였다. 그녀처럼 오랜 시간 동안 꾸준하게 대중의 사랑을 받은 배우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우리 곁에 없지만 고통도 아픔도 없는 저 세상에서 편안하게 쉬고 있기를 바란다. 최진실 누나를 마지막으로 내 소년 시절도 끝이 났다. 


  준의 연예인 사랑은 아직 워너원에 멈춰 있다. 혹시나 내가 좋아하는 '소녀시대'와 겹치면 어쩌지 걱정하기도 했지만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큐는 아직 어려서 그런지 연예인에는 1도 관심이 없다. 하지만 엄마와 딸이 함께 BTS 공연을 보러 간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좀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대중문화와 연예인을 사랑하는 것은, 선을 넘지 않으면, 얼마나 건강하고 아름다운 일인가. 우리 아이들과 함께 사랑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즐길 그날을 즐겁게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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