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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Dec 23. 2019

영혼이 분리되었다

독한 감기에 걸렸지만 독감은 아니라는!

  국립국어원에서 독감(毒感)을 찾아보니 아래처럼 두 가지 뜻이 나와 있다. 


  (001) <명사> 독한 감기 

  (002) <명사>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하여 일어나는 감기. 고열이 나며 폐렴, 가운데 귀염, 뇌염 따위의 합병증을 일으킨다.


  이쯤 되니 갑자기 감기(感氣)에 대한 뜻도 궁금해졌다.  


  (004) <명사> 주로 바이러스로 말미암아 걸리는 호흡 계통의 병. 보통 코가 막히고 열이 나며 머리가 아프다.


  보통 감기는 어느 정도 아픈 것이고, 독감은 엄청 아픈 것, 감기의 상위 레벌쯤으로 독한 감기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둘은 전혀 다른 병이다. 친절한 녹색창에 검색을 해보면 감기는 리노바이러스, 아데노바이러스, 콕사키바이러스 등이 코나 목의 상피세포에 침투해 일으키는 질병이고, 독감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폐에 침투해 일으키는 급성 호흡기 질환이란다.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워낙 다양해 백신을 만들 수 없지만, 독감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한 종류이기 때문에 백신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몇 해 전에 생애 처음 독감 예방 주사를 맞았고, 그 해 생애 처음 독감에 걸렸다. 


  독감에 걸린 줄도 모르고 며칠을 앓았다. 앓다가 앓다가 회사 근처 병원에 가니 독감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타미플루 처방도 받았다. 직장 동료들에게 옮길 위험이 있으니 일주일 정도 병가를 내라고 소견서를 써 주었다. 거의 몸이 나을 무렵이었지만 일주일을 쉬었다. 


  독감에 걸리니 정말 아팠다. 온몸을 맞은 것 같은 통증이 있었다. 하지만 정말 참기 어려운 것은 따로 있었다. 눈을 감으면 계속 눈 앞에서 무언가가 돌고 있었다. 영화에서 최면 걸 때 나오는 그런 이미지들이 계속 눈 앞에 펼쳐졌다. 어지러움을 느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것이 돌고 있었다. 끝도 없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바로 이런 얘가 계속 돌고 있었습니다.>

  처방받은 타미플루 덕분인지 독감은 완치되었고 (이미 어느 정도 회복세였다), 다행히 가족이나 회사 동료들에게 옮기지는 않았다. 그 이후로 몇 해 동안 독감 예방 주사를 맞지 않았다. 그리고 올해 오랜만에 다시 독감 예방 주사를 맞았다. 


  코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코피인 줄 알고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젖혔다. 뚝 떨어지는 것을 보니 맑은 색 콧물이었다. 이 콧물을 시작으로 독한 감기가 찾아왔다. 엄청난 근육통이 동반되었고 이가 딱딱 부딪힐 정도로 심한 추위가 느껴졌다. 몇 해 전의 악몽이 떠올랐다. 이건 분명히 독감이었다. 


  이번에는 증상이 좀 달랐다. 빙글 뱅글 도는 이미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설명할 말들이 떠오르지 않지만 마치 영혼이 분리된 느낌이었다. 아파서 끙끙 앓고 있는 내가 있었고, 그걸 지켜보는 내가 있었다. 분리된 영혼은 생각도 각각 했지만, 또한 각각의 생각이 모두 내게 인식되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내 머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느낌이었다. 아픈 와중이지만 서로의 생각을 듣느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음 날 병원에 가 독감 검사를 받았다. 독감이 아니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도대체 독감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영혼이 분리되는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의사 선생님은 감기라고 했고 3일 치 약을 처방해 주셨다. 3일째 몸은 거짓말처럼 좋아졌고, 병원에 다녀온 이후로는 영혼이 분리되는 경험은 다시 하지 못했다. 다시 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번 증상이 독감 예방 주사 덕분에 감기 정도로 온 것이 아니었나 싶다. 확실히 처음 독감보다는 아픈 시간도 짧아지고 증상도 덜했던 것 같다. 물론 전문적인 소견은 아니다. 무엇보다 빙글 뱅글 도는 이미지든 영혼이 분리되는 느낌이든 다시는 절대 경험해 보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다.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면 나만 손해다. 아프지 말고 건강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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