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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문 (The Moon)

지구연대기 - 가까운 미래에 분명히 일어날 일들의 기록

by 조이홍

2043년 9월


훌쩍 떠나온 것이 얼마나 슬픈지 모른다네. 친구여. 사람의 마음이란 도대체 어찌 이리 간사한지. 넘지 못할 거대한 벽을 만난 것처럼 절망적이었던 지구에서의 삶이 이토록 사무치게 그리워질 줄은 몰랐네. 심지어 그 뜨거운 대기와 한껏 입맞춤하고 싶은 정도라네. 이쯤 되면 얼마나 내가 이번 선택을 후회하는지 짐작하고도 남을 걸세. 자네가 나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네. 사실 이곳에 오기로 결정했다는 우주 메일을 받고 어떻게 답장을 써야 할지 한참 망설였다네. 달에서 자네를 만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지만, 솔직한 마음을 전하는 것이 자넬 위한 일이라고 판단했네. 부디 신중하게 결정하길 바라네. 만약 자네가 정말 이곳에 오고 싶다면 인간과 달의 짧은 역사에 관해 훑어보고 오는 편이 좋을 걸세. 인터뷰할 때 면접관들도 달에 관해 이것저것 물어볼 테니 말일세. 챗GPT 7.0한테 물어보면 엄청난 양의 이야기들을 쏟아낼 테니 내가 인터뷰 준비하면서 공부했던 내용들을 추려 보내네. 달에 오지 말라고 하면서 한편으로 이곳에 관한 자료를 전하는 게 이율배반적이지만, 자네에게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고 싶은 마음 또한 적지 않다는 걸 알아주기 바라네. 자네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테니 말일세.


우주조약에 대해서는 꼭 확인해 두어야 한다네. 모든 여정의 시작이자 끝이기 때문이지. 1967년 10월이었어. UN 총회를 통해 채택되고 90여 개국이 서명한 '달과 기타 천체를 포함한 외기권의 탐색과 이용에 있어서 국가 활동을 규율하는 규칙에 관한 조약'이 발효되었다네. 흔히 우주조약이라고 부르는 것 말일세. 하품 나올 정도로 긴 이름이지만 외워두는 편이 좋을 걸세. 본문이 겨우 17개 조항이니 꼭 한 번 훑어보게. 내용은 무척 간단하다네. 우주는 특정 국가의 소유가 될 수 없으며 호혜 평등의 원칙 아래 평화적 목적으로만 사용한다는 것이지. 우주가 얼마나 넓은지 모를 때라 무식하게 용감했지. 지구 주변 궤도 및 지구 밖 천체에 대량 살상 무기를 설치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지. 냉전으로 한창 핵전쟁 위협이 고조되던 시기에 우주로부터 평화의 물결이 일었다고 사람들은 열광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네. 요즘도 그렇지만 그때도 정치가들이란 먼 미래에 일어날 일보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밥그릇 싸움에서 이길 방법을 찾느라 혈안이었으니까. 다른 국가들도 특정 천체에 외기권을 소유할 수 없으니 급한 불은 꺼두었다고 안심했을 테지. '내가 먹지 못하면 남도 먹지 못한다.' 국제관계의 기본은 시대를 막론하고 변하지 않는 법이라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한 건 그로부터 2년 후였네. 이건 자네도 역사 시간에 배워 잘 알 테니 간단하게 설명하겠네. 우주조약에도 불구하고 냉전 체제를 우주까지 팽창시키던 미국이 소련 뒤통수를 시원하게 후려갈기는 사건이 일어났네. 맞아. 1969년 아폴로 11호를 발사한 미국이 인류 최초로 인간을 달에 보낸 일 말일세. 지구인이 달에 위대한 첫발을 내딛는 장면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다네. 인류가 달에서 금방 무슨 일이라도 벌일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지만, 아폴로 프로젝트 이후 달은 기나긴 동면에 들어갔다네. 어쩌면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성조기를 꽂은 것이 기적이었다고 불릴 만큼 당시 달 탐사는 엄청나게 위험했고 천문학적 비용이 투입되었기 때문이지. 아마 소련과 불꽃 튀게 경쟁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네. 아무튼 기적은 딱 거기까지였지. 인류의 시선이 화성과 같이 더 먼 우주를 향했기에 달은 유행가 가사에나 등장하는 로맨틱한 소재나 늑대인간이 등장하는 음산한 영화의 배경 장면으로 쓰이는 게 전부였다네. 달이 몰락했지.


1980년대 들어 달은 다소 희한한 방식으로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다네. 데니스 호프라는 미국인이 달과 화성 등 태양계 전체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한 걸세. 처음에는 다들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했지. 시대를 앞서간 사람들은 언제나 당대 주류로부터 그런 취급을 받았지만 말일세. 기발하게도 그는 우주조약이 국가에 대한 소유권을 금지할 뿐 개인의 소유권은 제한하지 않았다는 점을 역이용했네. 샌프란시스코 법원에 달 소유권을 인정해 달라고 소송을 제기했지. 신이시여, 자유와 기회의 땅, 미국과 언제나 함께하소서. 정의의 상징인 법원은 그의 주장을 부정할 근거를 찾지 못했다네. 결국 데니스 호프의 손을 들어주었지. 수완가였던 그는 내친김에 샌프란시스코 법원 결정에 이견이 있는지 UN에 공식 견해를 밝혀달라고 요청했다네. UN이 뭐라고 했는 줄 아나? 나씽!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네. 침묵은 곧 긍정을 의미했지. 데니스 호프는 합법적으로 달의 소유권을 인정받았다네. 하루아침에 몽상가에서 혁신적인 사업가로 변신해 'Lunar Embassy'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1에이커의 달 토지를 단돈 20달러에 판매했지. 실제 달을 소유할 수는 없어도 사람들은 휘영청 밝은 달의 토지 일부를 갖는다는 상상만으로 즐거워했지. 재미 삼아했던 이 일이 훗날 엄청난 분쟁의 불씨가 될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네.


2010년, 전설적인 보이그룹 BTS의 나라 한국에서 한 노인이 칠십 번째 생일을 맞아 자식들로부터 특별한 생일 선물을 받았다네. 바로 Lunar Embassy라고 큼지막하게 박혀 있는 달 토지 소유 증서였지. 왜 이런 이야기까지 들어야 하나 궁금하겠지만 곧 알게 될 걸세. 그가 소유한 땅은 달의 바다 중에서도 고요의 바다라고 불리는 지역이었는데 넓이가 무려 10에이커나 되었다네. 닐 암스트롱이 착륙한 지점도 바로 이곳이었지. 사실 그 노인은 데니스 호프보다 10년이나 먼저 달의 소유권을 주장했지만, 당시 대한민국 법원은 황당무계하다고 그의 말을 들으려고조차 하지 않았다네. 한국의 데니스 호프는 몽상가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그 비밀을 옛날이야기 삼아 어린 손녀에게 들려주었다네. 맞아. 그 손녀가 바로 그녀야. 그녀 이야기는 잠시 미뤄두고 이제 본격적으로 인류의 달 정착기를 들려주겠네.


2025년 아르테미스 3호가 달 착륙에 성공해 한 명의 여성을 포함한 네 명의 우주인이 달 표면에 발을 내디뎠다네. 나도 어릴 적에 그 장면을 유튜브 생중계로 본 기억이 생생하다네. 마침내 달이 기나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이었지. 우주인들은 대한민국의 달 궤도 탐사선 다누리호가 작성한 달 표면 원소 지도를 바탕으로 계속 뜨거워지는 지구를 구원해 줄 '헬륨3' 매장 지역을 집중적으로 탐색했다네. 지도는 꽤 정확했지. 사실 헬륨3은 기후 변화의 주범인 화석 연료를 대체할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오래전부터 관심받아왔네. 태양풍에 섞여 이동하기 때문에 대기권에 둘러싸인 지구에는 도달하지 못하지만, 이곳 달에는 상당량이 퇴적돼 있었지. 찬밥 신세로 전락했던 달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주목받게 된 까닭이었다네. 당시 다누리호는 약 100만 톤의 헬륨3이 매장되어 있다고 예측했다네. 견해 차이는 있지만 당시 전문가들은 헬륨3 100톤으로 이산화탄소 배출 문제나 방사능 걱정 없이 1년간 인류가 사용할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고 추정했지. 100만 톤이면 인류가 풍요로움을 멈추지 않고도 1만 년이나 사용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양이었지. 경제전문가들이 예상한 헬륨3 1톤의 가치는 약 30억 달러였다네. 금보다 몇 배나 더 가치 있는 보물의 존재를 두 눈으로 목격한 지구인들은 열광했다네. 신이 포기한 지구와 인류를 과학이 구원했다고 흥분했지. 이후 2027년부터 지금까지 건설 중인 우주정거장 '루나 게이트웨이'가 달 궤도에 자리를 잡았고, 2030년에는 인간이 달에 체류할 수 있는 최초 전초기지인 '루나 아웃포스트'를 건설하기 시작했다네. 우리 회사의 전초기지인 '소월 아웃포스트'는 2032년 공사를 시작했다네. 중간에 2년 정도 공사가 중단되긴 했지만 그걸 제외하면 대체로 순조로웠지.


헬륨3 존재를 확인했지만, 당시에는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네. 헬륨3을 채굴하는 일반적인 방법, 즉 달 표면을 1m 채굴해 섭씨 600도로 가열 후 헬륨3을 분리해 내는 기술은 그때까지만 해도 이론에 불과했거든. 달 전문 채굴 인원을 양성하고 상주시키는 문제 역시 만만치 않았지. 게다가 채굴에 성공해도 지구로 이송하는 일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네. 다행히 민간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참여해 헬륨3을 운송할 우주 화물선 '루나 크래프트'를 개발했다네. 달 프로젝트 중 진행 속도가 가장 빨랐지. 하지만 난제는 뭐니 뭐니 해도 핵융합 기술이었지. 낙관적인 전문가들조차 핵융합 원자로를 가동하려면 2060년이 되어야 한다고 전망했으니 말일세. 어쨌든 기술적인 문제들은 '무어의 법칙'과 시간이 해결해 줄 테지만, 제도 보완은 국제관계로 얽히고설켜 풀어내기 쉽지 않았다네. 당장 우주조약부터 손봐야 했지. 헬륨3 채굴을 민간기업에 위탁한다고 해도 달의 특정 지역을 어느 기업이 소유할 것인가를 두고 분쟁이 일어날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일세. 아르테미스 계획에 참여하지 않은 중국과 러시아, 인도와 아프리카 일부 국가들이 거세게 반발했다네. 그 옛날 먼 미래의 일이라 덮어두었던 문제들이 하나둘 수면 위로 떠오른 거지. 발 빠른 유튜버들이 '신냉전 체제의 부활, 우주 전쟁의 서막'이라는 자극적인 썸네일을 경쟁적으로 뽑아댔고 언론과 포탈도 거들었지. 2027년 열린 제82차 UN 총회에서 우주조약 개정을 논의했지만 두 진영이 첨예하게 대립해 한 글자도 건들지 못했다네. 루나 크래프트가 발사되는 2035년 6월까지 우주조약을 개정하기로 합의한 것이 유일한 소득이었다네. 지구 온난화와 세계적인 경기 침체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을 눈앞에 두고도 저마다 파랑새를 쫓느라 정작 중요한 걸 놓치고 말았지.


갈라파고스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꾸준히 진행돼 오던 달 개발 사업이 갑작스레 멈춘 건 2033년이었다네. 드디어 김재희, 그녀가 등장할 차례네. 그녀가 우리 회사를 상대로 사유재산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고, 샌프란시스코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지. 할아버지로부터 10에이커의 달 토지를 상속받은 그녀는 우리 회사가 한창 전초기지를 건설하던 지역이 자신의 소유임을 증명하는 토지 증서를 샌프란시스코 법원에 제출했다네. 그녀의 법률 대리인은 우리 회사가 그녀의 땅에 전초기지를 건설하는 건 명백한 사유재산 침해로 즉각 사업을 중단하고 적당한 보상과 토지 이용료를 지급하라고 요구했다네. 회사가 발칵 뒤집혔지. 그때는 나도 NASA에서 달 적응 훈련을 받을 때라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귀동냥으로 대강 파악하고 있었네. 회사로서는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없었지. 겉으로 표현은 못 해도 미국 정부도 마찬가지였을 테고. 전 세계적으로 6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달 토지 증서를 가지고 있었지. 그녀의 요청을 받아들였다간 집단 소송으로 이어질 게 분명했으니까. 사실 달 토지를 분양한다는 건 로맨틱한 이벤트일 뿐이지 않은가. 누가 실제로 발 한 번 내딛지 않은 땅의 소유권을 인정하겠나? 그 어려운 일을 샌프란시스코 법원이 해냈다네. 정의의 사도가 이번에도 그녀의 손을 번쩍 들어주었지. 신이시여, 자유와 기회의 땅, 미국과 언제나 함께하소서. 2년을 끈 소송에서 결국 우리 회사가 패소했다네. 2년 동안 달 전초기지 공사가 중단돼 엄청난 손해를 입은 데다 그녀에게 보상해야 할 금액과 토지 이용료도 만만치 않았지. 회사가 발칵 뒤집어졌지. 그런데 그녀가 별안간 무엇을 제안한 줄 아나? 이용료를 포기하는 대신 전초기지 이름을 그녀의 할아버지 이름인 '소월'로 해달라는 것이었네. 고민할 여지가 없었지. 이제 왜 내가 머무는 이곳의 이름이 소월 아웃포스트인지 눈치챘을 걸세. 그녀가 제기한 소송은 일단락되었지만, 골칫거리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네. 집단 소송 말일세. 우리뿐만 아니라 각 국가를 대표하는 달 개발 기업들이 신경을 바짝 곤두세웠지. 그때 그 일이 일어난 거야. '파멸의 주간' 말일세. 결국 곪을 대로 곪은 상처가 한방에 터지고 말았지. 끔찍한 사건은 굳이 언급하지 않겠네. 꿈에서도 다시 보고 싶지 않으니까. 또다시 멈춘 사업은 2036년이 되어서야 겨우 재개되었다네. 뜨거워진 지구에 호되게 당한 생존자들은 집단 소송을 포기하고 달 개발 회사들이 하루빨리 헬륨3을 지구로 가져오도록 응원해 주었다네. 회사로서는 전화위복이 된 셈이지만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지.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잃었으니까. 자네처럼 나도 그때 가족을 잃었다네. 너무 힘들어 모든 걸 내려놓으려던 순간 자네가 손을 내밀어 주었지. 사는 게 더없이 힘들고 무의미했지만, 살아남은 이들의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자네 말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네. 때마침 달 적응 훈련이 재개되었고, 훈련을 마치고 이곳에 왔다네. 벌써 3년 전 일이지. 인터뷰에 도움이 될만한 내용을 요약해 준다고 하고선 하소연으로 마무리했네. 오랜만에 그리운 친구에게 마음을 전해 그런 것이니 부디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게.


우리 기지에서 지구가 아주 잘 보인다네. 사실 달 어디에서라도 지구는 잘 보이지만 말일세. 눈에 띄게 육지가 줄고 바다가 늘었지만, 여전히 푸른 지구는 눈 부시게 아름답다네. 하루빨리 핵융합 원자로 기술이 완성돼 헬륨3을 사용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네. 그래야 지구도, 남겨진 사람들도 다시 예전처럼 행복해질 테니 말일세. 달에서 처음 1년은 고독이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네만, 이제는 성가신 불청객이 되었다네. 솔직히 하루도 지구가 그립지 않은 날이 없다네. 물론 사명감 같은 무언가가 아직도 심장을 힘차게 뛰게 하지만, 푸른 숲과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그리고 자네를 포함해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들이 있는 지구가 그립지 않다면 거짓말 일 걸세. 자네도 알다시피 이곳에 오면 10년 동안은 지구로 돌아갈 수 없다네. 상실로부터 도피하기에 달은 현명한 선택이 결코 아니라네. 오늘 밤 커다란 보름달이 높이 높이 떠서 자네의 어두운 마음마저 환하게 비춰주길 바라네.


2043년 9월 17일 소월 아웃포스트에서 자네의 벗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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