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나온 남편에게 '프로 다이어터'라고 놀림당하며 일평생 다이어트하던 아내는 2kg 이상 감량에 성공한 적이 없습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온종일 굶었다고 하소연하면서 "정말 아무것도 못 먹었어?" 물어보면 "어, 바나나 2개, 삶은 계란 5개밖에…." 하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합니다. '그 정도면 대식가도 한 끼야.' 마음속으로만 읊조리고 입밖에 내지는 않습니다. 20년 결혼 생활을 통해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법을 체득했으니까요. 그런 아내가 지난 5월, 한 달 만에 무려 5kg이나 감량했습니다. 대한적십자에서 주관하는 라이프 가드(인명구조요원) 자격증 도전에 따른 대가였습니다. 그림책을 제외하면 책과 냉랭한 관계를 유지하던 아내가 전화번호부만큼 두툼한 참고서를 붙들고 밤마다 씨름했습니다. 오랜만에 옛 추억이 떠오른다며 까만 밤을 하얗게 불태웠습니다. 수영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 하니 필기시험만 합격하면 라이프 가드 자격증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다들 한 마디씩 거들었습니다. 웬걸, 인명구조요원 실기시험은 극강 E와 극강 I의 성격만큼이나 우리가 알던 수영과 차이가 났습니다. 손을 물 밖으로 빼고 선 채로 헤엄치는 입영이나 5kg 중량물 운반 테스트는 평소 수영 실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수영인으로서 차곡차곡 쌓아 올렸던 아내의 자긍심이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수영장에서 8시간 훈련받고 오는 주말에는 밥을 거의 먹지 못했습니다. 어떤 날은 몇 숟가락 뜨다 말고 화장실로 달려가 얼마 먹지도 못한 걸 토해내기도 했습니다. 아내의 깡마른 등을 두드려주다 '힘들면 그만해도 돼.'라는 말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밀어 넣었습니다. 생기 하나 없는 얼굴이지만 눈은, 꿈을 좇는 두 눈은 밤하늘 별처럼 빛났기 때문입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아내는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것을요. 온몸에 파스를 붙이고도 부족한 과목을 보충해 줄 수업을 인터넷에서 찾아 추가 훈련까지 받았습니다. 거짓말 조금 보태 5월 한 달은 물밖에 있는 것보다 물속에 있는 시간이 훨씬 많았습니다. 자존감 강하고 자존심 센 아내가 입영과 중량물 운반 훈련하는 내내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였으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겠지요. 눈치 없는 여름이 슬그머니 우리 곁을 찾아온 이른 6월 어느 날, 마침내 아내는 라이프 가드 자격증을 손에 쥐었습니다. 무심하게 "당연한 걸 뭘 그렇게 좋아해?"라고 말했지만, 곁에서 그 과정을 하나하나 지켜본 저는 마치 제가 자격증을 딴 것처럼 기뻤습니다. 훈련받는 동안 성공한 경험이 손에 꼽을 정도여서 속마음은 조금 불안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결국 해냈습니다. 이전에 실패한 경험들이 실패에 머물지 않고 성공을 향한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아내는 마음먹은 건 어떻게든 해내는 사람입니다.
40대 초반, 아내와 진지하게 '세컨드 라이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샐러리맨의 사회적 수명이 점점 짧아지던 시기였습니다. 저는 글쓰기를 좋아하고 아내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럼 우리 부부 그림책 작가할까?" 했더니 아내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 대단한 계기나 결심 없이 우리 부부는 두 번째 인생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이후 아내는 화실에 다니며 꾸준히 그림을 그렸습니다. 손재주가 있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였나 싶을 정도로 멋진(제 기준에) 작품을 그려냈습니다. 얼핏 어디선가 들어본 미술전에 출품해 입상도 했습니다. 라이프 가드에 도전하던 5월에도, 경영 3급 공인 심판에 도전하던 6월에도, 생존 수영 강사에 도전하던 뜨겁던 7~8월에도 아내는 매주 이틀은 아픈 몸을 이끌고 화실에 나가 그림을 그렸습니다. '슈퍼발차기 개인전'을 올 연말에 열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만 보기 아까운, 거실 한 면을 빼곡하게 채운 그림들이 빛을 보게 되는 날이 올까요? 쉽지 않겠지만 왠지 그럴 것 같습니다. 아내 까만 두 눈이 또다시 이글거렸으니까요.
2023년은 하루 24시간을 48시간처럼 활용하는 아내가 20여 년만에 끊어진 경력을 다시 잇는 뜻깊은 해입니다. 지난 8월 아내는 한 스포츠 센터의 수영 강사가 되었습니다. 매일 야근에 주말에도 출근하는 남편을 대신해 취미로 시작한 수영이 아내에게 '일자리'를 창출해 주었습니다.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면 있던 애정도 사라진다는데 아내는 수영 강사가 너무 재미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다시 경제활동을 한다는 게 무척 행복해 보였습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라이프 가드 도전 이후 아내는 연달아 대한수영연맹에서 주관하는 '경영 3급 공인 심판' 과정을 통해 심판 자격증을 땄고, 또 한 번 대한적십자사에서 주관하는 '생존 수영 강사' 과정을 통해 생존 수영 강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라이프 가드보다 수월하다고는 해도 결코 만만한 과정은 아니었으나 아내는 이번에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주말 살림과 아이들 돌봄은 제 몫이 되었지만 그게 뭐 대수인가요. 지난 20년 동안 아내는 불평 한 마디 없이 해왔던 것을요. 사실 아내의 다재다능함을 집안에서만 활용하는 게 무척 아쉬웠습니다. 그러니 응원해 줄 수밖에요. 물론 싫은 게 한 가지 있긴 합니다. 누구보다 치열한 여름을 보냈던 아내 신체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근육이 붙은 것입니다. 울룩불룩한 근육이 낯설어서 그런지 아내 몸에 붙은 녀석들이 보기 싫었습니다. 그래도 아내는 과도한 운동의 부작용(?)이 꽤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샤워장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헬스 코치' 아니냐고, 개인 레슨 받을 수 있냐고 물어본다고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아내에게 또 다른 꿈이 생겼습니다. 이쯤 되면 여러분도 눈치채셨겠죠? 아내 눈이 얼마나 반짝반짝 빛나고 있을지 말입니다.
아내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개인 운동(수영)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주중에는 화실에 갈 시간이 없어 주말 시간을 쪼개 그림을 그립니다. 수영 관련 자격증을 3개나 땄다고 해도 수업을 진행하려면 엄청나게 많은 준비를 해야 합니다. 오랜 수영 경험에서 얻은 노하우를 하나라도 더 알려주기 위해 자료를 뒤지고 유튜브를 시청합니다. 이면지에 빼곡하게 적은 수업 내용을 보면 저도 아내에게 배우고 싶어 집니다. 한 달 뒤에 있을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틈틈이 달리기 연습도 합니다. 40대 후반인 아내는 여전히 꿈이 많습니다. 뭐든지 대충대충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저와는 다른 아내가 부럽습니다. 꿈이 꿈으로 그치지 않고 어떻게든 해내는 사람, 아내는 정말 멋진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