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프지 마요.

내리사랑과 치사랑

by 조이홍

혼이 쏙 빠질 정도로 정신이 가출하지 않으면 매일 저녁 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드립니다.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라고 해봤자 5분을 채 넘기지 못하고 내용도 식사 잘하시냐, 아프신 데는 없냐, 따뜻하게 주무셔라 등 특별할 것도 없지만 그 짧은 대화를 통해 여든을 훌쩍 넘기신 노부모님의 안녕을 확인합니다. 막히지 않으면 차로 1시간 30분 거리에 고향이 있지만, 언제부턴가 한 달에 한번 찾아뵙기도 힘듭니다. 지난 추석에는 일한다고 잠깐 얼굴만 비췄습니다. 이런 형편이니 5분도 안 되는 짧은 통화라도 그냥 단순한 통화가 아닙니다. 제게는 가히 혼정신성(昏定晨省, 밤에는 부모의 잠자리를 보아 드리고 이른 아침에는 부모의 밤새 안부를 묻는다는 뜻으로, 부모를 잘 섬기고 효성을 다함을 이르는 말)이라 부를 만합니다.


직장에서 60초밖에 안 되는 '엘리베이터 피치'가 중요한 것처럼, 사실 어머니와의 전화 통화 5분에서 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야기 내용이 아니라 어머니의 목소리 톤과 성조(聲調)에서 말이죠. 말로는 식사도 잘하고 아픈 데도 없다 하시지만 목소리 분위기는 언제나 진실을 말합니다. 그리고 저는 제법 그걸 잘 찾아내곤 합니다. 목소리에 기운이 없다 싶으면 어디 편찮으신 데 없는지 재차 확인합니다. 그제야 어머니는 아들에게 진실을 털어놓습니다. 한 번은 아버지 응급실행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아들이 걱정할까 봐 괜찮다, 괜찮다 하시는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럴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어머니와 통화가 끝나자마자 부모님 댁 근처에 사는 누나들한테 전화를 돌려 추궁 아닌 추궁을 합니다. 떨어져 사는 막내 성화 때문에 누나들은 졸지에 5분 대기조가 됩니다(물론 막내가 재촉하지 않아도 누나들은 거의 매일 부모님을 찾아뵙습니다).


그래서인지 몇 해전부터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어머니 목소리가 한층 밝아졌습니다. 일부러 더 밝고 유쾌하게 말씀하십니다. 한동안 정말 부모님이 무탈하게 지내신다고 믿었습니다. 아니, 믿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 목소리가 밝을수록 사실은 제가 걱정할 일이 많았다는 걸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매일 거는 안부 전화로 조금이나마 자식의 도리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제 마음 편하려고 그런 건가 싶었습니다. 아무리 애써도 자식은 부모의 깊은 마음을 다 헤아일 수 없나 봅니다.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해도 자식은 자식입니다.


그런 어머니도 이제 목소리에서 점점 활기가 사라져 갑니다. 며칠 전에는 하도 목소리에 기운이 없어 "어디 편찮으세요?" 여쭸더니 "엄마는 이제 매일 조금씩 더 아파질 거야." 하십니다. 두 사람 다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놓은 적 없는 이야기입니다. 순간, 정적이 흐릅니다.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아들이 고작 내뱉은 말이라곤 "밥이 보약이래요. 식사만 꾸준히 잘해도 건강하실 거예요."였습니다. 물론 그러마 하셨습니다만, 워낙 소식가인 어머니에게 식사 잘 챙겨 먹기도 그리 쉽지만은 않을 터였습니다. 이야기 말미에 "어제는 웬일로 큰 손자(첫째 아이)가 전화를 다했더라. 모처럼 얼마나 잘 잤는지…." 하십니다. 보충 수업이니 시험이니 핑계 아닌 핑계로 명절에도 얼굴을 보인 적 없는 큰 손자 목소리라도 들으니 기분이 좋으셨나 봅니다.


늙음도, 노화와 쌍둥이인 질병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래도 어머니가 아프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엄마, 아프지 마요. 이제 큰 손자가 자주 전화 드릴 거야." 무뚝뚝한 첫째에게 어머니 비타민 역할을 물려줄 때인 듯합니다. 부모님이 언제까지나 건강하시면 좋겠습니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손아랫사람이 손윗사람을 사랑함)은 없다는 옛말이 있답니다. 부모님 사랑이 얼마나 깊고 넓으면 그럴까요. 다행히 저만큼 할머니를 생각하는 아이가 있어 다행입니다. 어머니 팔순에 첫째 아이가 할머니께 쓴 편지를 읽어 보면 느낄 수 있습니다. 이전에 브런치에 공개한 글이기도 해 다시 소개합니다. 孝도 가풍입니다.




저는 할머니의 첫 번째 손자입니다. 올해는 할머니가 80세가 되는 해입니다. 올해 할머니 생신 잔치에는 저도 많은 것을 준비했습니다. 노래도 연습하고 생신 선물을 위해 저축도 했습니다. 할머니께서 80세가 된다는 큰 의미도 있지만, 할머니를 만난 13년 동안 별로 해드린 게 없기 때문입니다. 춘천에 가면 할머니께서는 항상 손수 농사지으신 감자나 고구마, 옥수수를 한아름 싸주셨고 명절이면 옷, 새 학기가 시작되면 많은 용돈도 주셨습니다. 그때마다 넙죽넙죽 잘 받았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할머니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할머니의 첫 번째 손자로서 받기만 하는 건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머니께 받은 추억은 수없이 많았지만, 정작 할머니에게 뭘 드린 기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할머니께 진심으로 해드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진심이 담긴 선물을 드려야겠다 싶었습니다. 그런 다음 제가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게 바로 노래였습니다. 사실 노래를 뛰어나게 잘하는 것도 아니고 가족 중에 노래를 잘하는 사람(뮤지컬 배우 출신, 심지어 가수도 있답니다)도 많아서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노래 실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중요한 건 마음입니다. 첫째 손자의 노래가 할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라 확신했습니다.


한 달 동안 틈틈이 노래를 연습하고 가사를 외웠습니다. 곡 선정을 위해 수많은 노래를 들어보았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가사가 ‘Superman got nothing on me’와 ‘I gonna keep holding on’이었습니다. 두 가사의 의미는 ‘슈퍼맨은 비교도 안 될 거야’, ‘내가 버팀목이 돼 줄게’입니다. 할머니께서 지금까지 나의 슈퍼맨이고 버팀목이었다면 앞으로 내가 할머니의 버팀목이 되고 슈퍼맨이 돼야겠다는 다짐에서 골랐습니다. 앞으로 할머니와 함께할 시간만이라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할머니의 첫 번째 손자입니다. 올해는 할머니가 80세가 되는 해입니다. 할머니께 받은 것은 많고 드린 것은 없는 손자이지만, 앞으로 할머니께 해드릴 수 있는 것이 많은 손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할머니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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