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서 생긴 일
울산으로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바다가 있는 도시로 출장을 다녀도 바다를 가까이서 보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해변을 걷는 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합니다.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온종일 회의만 하다 돌아오곤 하지요. 바닷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짭조름한 내음을 맡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습니다. 이번에는 바다가 보고 싶었습니다. 반드시 바다를 보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일정을 쪼개고 쪼개 마침내 바닷가에 들렀습니다. 모래사장을 걷고 또 걷고 수평선을 보고 또 보았습니다. 별거 아닌 일들에 얼마나 기분이 좋아지는지요. 푸른 하늘과 맞닿은 푸른 바다 덕분에 회색 빌딩 숲에 지친 두 눈이 모처럼 호강했습니다. 노안이 조금은 좋아졌겠지 하는 허튼 상상에 피식 웃음도 나왔습니다.
따갑게 내리쬐는 햇살 때문에 시원한 커피 한 잔이 간절해졌습니다. 4월의 바닷가는 마치 한여름 같았습니다. 근처 카페에서 아이스 카페라테 한 잔 주문했습니다. 커피가 나오고 빨대를 찾다가 문득 '지구'가 걱정되었습니다. 아마도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한동안 잊고 지내던 '양심'을 일깨워준 듯합니다. 오랜 독자님들은 제가 '기후위기'에 관심이 많다는 걸 잘 아실 테지요. 뜬금없이 고백하자면 요즘 조금 시들해졌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보다 눈앞에 일상이 더 절실해졌다고나 할까요. 일회용품 사용이나 분리수거도 덜 신경 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하는 게 어머니 지구에게, 저 바다에게 미안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빨대를 사용하지 않아도 편리한 뚜껑이 그 역할을 대신해 주었습니다. 차에서 텀블러를 가져오라는 양심의 소리는 외면하고 고작 빨대 하나 쓰지 않은 일에 혼자 우쭐했습니다. '바다멍' 하며 망중한을 즐기다 그만 날벼락을 맞았습니다. 하얀 티셔츠에 커피를 흘리고 만 것이죠. 바닷가에서 입으려고 아껴 두었던 메이커(?) 티셔츠였습니다. 출장 마지막 날이라 갈아입을 옷도 없었습니다. 안 하던 짓하려니 고거 쌤통이라는 악마의 목소리가 귓가에 윙윙거렸습니다. 물티슈를 얼른 한가득 챙겨와 지우고 또 지웠지만 헛수고였습니다. 가슴 한가운데 갈색 커피멍이 들었습니다. 그냥 빨대 쓸 걸 괜한 오지랖을 부렸나 후회의 파도가 밀려왔습니다. 행복했던 오후가 한순간 우울해졌습니다.
그냥 빨대 가져와서 마셔야지 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빨대 하나 아끼려다 쓴 물티슈와 냅킨이 몇 장이던가 돌아보니 진짜 지구에게 미안했습니다. 요즘 세제가 얼마나 잘 나오는데 이깟 커피 자국 얼마든지 지울 수 있을 테니까요(앗, 세제 또한 바다에...). 인류가 푸른 지구 곳곳에 만든 상처들을 생각하면 커피 자국은 티끌만도 못하니까요. 느슨해진 '기후위기' 안전벨트를 다시 조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나 하나 바뀐다고 세상이 변하겠어하는 패배감도 저 멀리 내버리기로 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커피멍이 선명한 하얀 티셔츠를 입고 밤바다를 걸었습니다. 누군가 '저 사람 얼마나 칠칠맞지 못하면 옷에 커피를 쏟고 다닐까' 비웃었을지 모릅니다. 상관없습니다. 다시 만날 사람 아니니까요. 그리고 저는 지구의 안녕을 걱정하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으니까요. 지구야,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