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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May 22. 2024

이제 나이 들었구나 느껴질 때

포토에세이 - 영양제 편

"먹어!"

"됐어, 자네나 챙겨 먹어."

"난 먹으라고 했다. 자기 몸은 자기가 챙겨라!"

이 소리는 경기도 OO시 OO마을에서 한 부부가 비타민과 영양제를 사이에 두고 옥신각신하며 살가운(?) 대화를 나누는 모습입니다.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10여 년 전, 건강 검진 결과표를 받아 들은 아내와 저는 매우 당혹스러웠습니다. 물론 다른 까닭에서요. 재미로 했던 '기대 수명' 검진에서 아내는 90세 이상, 저는 70세 미만으로 나왔더랬습니다. 10년 이상 꾸준히 모아 온 건강 검진 결과표가 그 해 것만 없는 까닭입니다. 쩝, 결과표가 무슨 죄라고…. 뺄 살도 없는데 평생 다이어트하며 꾸준히 운동하는 아내, 툭 나온 뱃살을 신경도 쓰지 않는 남편은 태어난 날은 달라도 돌아가는 날은 함께 하자던 신성한 약속을 더 이상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직감했습니다. 各自圖生! 


수영과 마라톤, 최근에는 헬스까지 섭렵한 아내는 초콜릿 복근을 얻고 유일한 장점인 미모를 잃었습니다. 건강과 미모가 반비례하다니 아내가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일까요. 40대 초반부터 각종 비타민을 비롯해 영양제를 살뜰히 챙겨 먹던 아내는 90세가 아니라 150세까지도 거뜬하게 살 것 같습니다. 반면 32~34 사이즈 바지가 딱 맞던 저는 언제부턴가 더 큰 사이즈를 원하게 되었습니다. 야속하게도 몸은 거짓말하지 않더군요. 운동이라곤 가끔 들르는 탁구장이 전부이니…. 게다가 세상 일은 혼자 다하는 양 얼마나 바쁜 척하는지. 신이시여. 이게 정녕 제 배란 말입니까. 事必歸正?


꼼꼼히 비타민을 챙겨 먹던 아내에게 "그거 아무 소용도 없데. 다 과장 광고야."라고 말하던 제가 마침내 한 움큼씩 영양제를 챙겨 먹습니다. 어느 날 세어 보니 아침에 열아홉 알, 오후에 다섯 알, 자기 전에 아홉 알이나 되더군요. 솔직히 그 영양제가 어디에 좋은지 다 알지도 못합니다. 그저 아내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고 싶으면 주는 대로 먹어라!'라고 하명해 열심히 따를 뿐입니다. 평생 입에 대지도 않던 홍삼도 잘 챙겨 먹습니다. 지난달 감기와 오랜 피로로 병원에서 비타민 주사를 맞은 이후 더 그렇게 되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하루만 푹 쉬어도 거뜬해지던 몸이 이제는 쉬어도 쉬어도 말을 듣지 않습니다. 나도 이제 나이 들었구나 싶은 때입니다. 서럽냐고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다만, 예전에 아내가 비타민 잘 챙겨 먹으라고 할 때 왜 먹지 않았을까 아주 가끔 후회되기는 합니다. 대한민국 남자들의 장수 비결, 아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거 아닙니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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