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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Jan 08. 2020

휴대폰을 빼앗기다

의혹만 불러일으킨 준의 첫 놀이동산 나들이 

  준이 휴대폰을 빼앗겼다. 큐와 자주 티격태격하지만 '성실함의 표본이자 타의 모범이 되는' 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길래 아내는 일주일 간 휴대폰 사용금지라는 중벌을 내린 것일까? 


  그 일이 일어난 것은 준의 초등학교 졸업식 다음 날이었다. 처음으로 (보호자 없이) 반 친구들과 놀이동산에 놀러 간 날! 이미 한 달 전부터 일정을 잡아 놓은 준은 매우 들떠 있었다. 휴대폰을 선물 받고 엄청 기뻐한 이후로 어떤 일에도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던 준에게는 찾아보기 힘든 즐거운 얼굴의 날들이었다. 

 

  아내의 허락도 받아 두었다. 물론 아내는 아이들끼리만 놀러 가는 것에 대해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평소 준의 생활태도로 미루어 아이들끼리만 가더라도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되었다. 나의 지원사격으로 간신히 아내의 허락을 받아냈다. 허락은 했지만 아내는 두 가지 조건을 내세웠다. 첫 번째는 함께 가는 (모두 다섯 명이었다) 아이들과의 단체사진을 보내라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저녁 6시까지는 집으로 돌아오라는 것이었다. 준은 신병 훈련소 퇴소하는 날 마지막 단체 경례를 하는 신병처럼 목청이 터져라 대답을 했다. 그때는 이 두 가지 조건이 어떤 부메랑이 되어 준을 향해 날아올지 예상하지 못했다. 


  친구들과 함께 놀이동산까지 태워주겠다는 것을 한사코 거절하고 준은 친구들과 학교에서 모여 버스를 타고 갔다. 집을 나서는 준에게 추우니까 너무 밖에서만 놀지 말고 실내에 들어가 따뜻한 음료도 마시고 안전사고에 유의하도록 당부를 했다. 그저 혼자 떠들고 있었다. 순간이동이라도 했는지 어느새 준은 사라지고 없었다. 


  첫 사진이 깨톡으로 온 것은 오전 10시쯤이었다. 그런데 아내와 내가 예상했던 사진이 아니었다. 그 나이 때 아이들이 사진을 찍으면 으레 나오는 그런 이미지가 아니었다. 조금 멀리서 앉아있는 여러 사람을 찍은 사진이었는데 거리가 멀어 얼굴도 잘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 전날 졸업식에서 함께 가기로 한 친구들을 이야기해 주었는데 알아볼 수 없었다. 아내는 침착하게 예쁜 얼굴들이 잘 나오게 찍어서 보내라고 답장을 보냈다.  


  두 번째 사진이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몇 시간 후였다. 이번에 보내온 사진은 사파리 버스 안에서 찍은 사진이었는데 딱 한 친구의 얼굴만 알아볼 수 있었다. 나머지는 옆모습이나 뒷모습 일부만 보였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생각했던 사진은 아니었다. 아내의 답장이 짧아졌고, 단호해졌다. 패왕색 패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더 이상 사진은 오지 않았다. 


  준이 집에 도착한 시간은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아내는 두 가지 조건에 모두 흔쾌히 그러마 대답했던 준에게 이유를 따져 물었다. 준에게도 나름 사연은 있었다. 하지만 놀이동산을 즐기는 내내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없다는 것을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귀가 시간도 지키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용돈을 거의 5만 원이나 지출했다. 소풍(현장학습) 때 간식 사 먹으라고 준 용돈 1만 원도 쓰지 않고 그냥 가지고 오는 준에게는 엄청 큰 소비였다. 


  여러 가지 의혹(?)이 있었지만 더 이상 따져 묻지 않았다. 그 대신 일주일 간 휴대폰 사용금지라는 처벌이 내려졌다. 준은 억울해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로서도 준을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준의 처음이자 마지막 나들이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어제 준과 단 둘이 있을 기회가 있어 남자의 명예를 걸고 비밀을 지켜줄 테니 놀이공원 사태에 대한 진실을 알려 달라고 했다. 준은 이미 하나도 숨김없이 말했다고 했다. 역시 심지가 굳은 아이다. 


  오늘도 준의 휴대폰은 서랍장 안에서 꺼진 채로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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