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민기 선생님을 추모하며
70년대 중반 태어나 90년대 중반 대학생활을 한 저에게 김민기란 이름은 '아침이슬(1971년)'과 '상록수(1977년)'로 기억됩니다. 절반만 운동권이던 제가 그 어느 대중, 민중가요보다 많이 부른 노래가 '아침이슬'이었습니다. 시위 현장뿐만 아니라 '민속집과 옛 마당' 뒤풀이 공간에서도 빠지지 않았더랬습니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에 시련 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간결하고 담백한 노랫말이 어쩌면 이토록 강렬할 수 있을까요. 정부 선정 '건전 가요 상'을 받은 이 노래는 불과 1년 후에 금지곡이 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습니다.
'상록수'는 1998년 한 공익광고에서 박세리 선수가 맨발 투혼으로 LPGA US 여자오픈에서 우승한 장면의 배경 음악으로 사용되며 많은 국민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곡 자체는 김민기 선생님 목소리보다 모든 노래를 '양희은化'하는 양희은 씨의 청아하면서 동시에 기운 넘치는 목소리와 더 잘 어울리지만, IMF라는 시대 상황과 딱 맞아떨어진 가사 덕분에 자연스레 김민기 선생님이 떠올랐습니다. "저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서럽고 쓰리던 지난날들도 다시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 땀 흘리리라 깨우치리라 거치른 들판에 솔잎 되리라 /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우리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선생님의 다른 곡들이 그런 것처럼 '상록수' 역시 별다른 미사여구 없이도 노랫말이 참으로 아름답고 비장합니다. 암울한 시대를 이겨내라고 희망과 용기를 준 노래, 존경하는 故 노무현 대통령께서도 즐겨 부르시던 노래가 바로 '상록수'였습니다.
엄혹한 시대에 불빛이 되어준 노래와 천재라 불리며 청춘과 저항의 아이콘이 된 김민기 선생님과의 인연은, 그러나 여기까지였습니다. '먹고살기즘'에 얽매여 살다 보니 어느새 나이가 한껏 들었고 청춘은 그저 '아, 옛날이여!'가 되었습니다. 바로 어제 김민기 선생님께서 작고하셨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선생님이 얼마나 많은 일을, 대중문화에 이바지하였는지 자세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청춘의 한 단락을 함께 했던 선생님이 떠나셨다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고인께서 영면하시기를, 마지막 길에 한 사람이라도 더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