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부의 세계 - 두부계란부침이 그리울 줄이야
존경하는 절대자님께,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하리라 맹세했던 식장에서 서로에게 쓴 편지를 낭독하고 정말 오랜만에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왠지 가슴이 두근거리는 게 설레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지난 몇 년간 가슴에 품었던 말을 용기 내 적어보려 합니다. 속 깊은 당신은 웃으면서 읽어주리라 믿으니까요. 결혼 생활 25년, 날파리 한 마리도 어쩌지 못하는 청아한 소녀 같던 당신은 무시무시한 바퀴벌레를 물티슈 한 장으로 가뿐히 압사시키는 '절대자'가 되었습니다. 언제부턴가 그런 '비상' 상황에서 당신 뒤에 숨는 게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참 든든했답니다. 수영과 마라톤으로 단련한 코어를 자랑하는 당신은 자연스레 권력 피라미드 맨 꼭대기를 차지했으니까요. 열흘 붉은 꽃은 없다는 말은 우리 집에선 통하지 않았습니다. 함무라비 법전보다 몇 곱절은 더 엄격한 '내말이곧법'을 만들어 지킬 것을 강제하고, 정작 당신은 그 모든 원칙에서 예외라고 말해도 누구 하나 토 달지 않았습니다. 나도 아이들도 당신을 사랑했으니까요. 무서워서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절대로. 어, 그런데 왜 이렇게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걸까요.
유난히 포근한 어느 겨울날이었습니다. 그날따라 당신은 무척 기분 좋아 보였습니다. 우리 모두 무슨 일일까 궁금했습니다. 쾌활한 당신이지만,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날은 많지 않았으니까요. 당신이 기분 좋으니까 집안 공기가 달라졌습니다. 우당탕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더니 모처럼 웃음꽃이 만개했답니다. '그래, 이런 게 사는 거지. 인생이 뭐 별 건가.' 싶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왠지 마음 한편에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어떤 기시감 같은 게 일기도 했지요. 착각이길 바랐습니다. 웬걸, 슬픈 예감은 언제나 과녁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가는 화살 같더라고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당신이 말했지요. SNS에서 모처럼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특급 요리'를 봐 두었으니 저녁 메뉴를 기대하라고요.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야단법석을 떨었습니다. 둘째 녀석은 엄마 최고라며 연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지요. 둘째가 효자더라고요. 하지만 나는 똑똑히 보았습니다. 입은 웃고 있는데 눈동자는 요동치는 걸, 허공에서 길을 잃은 슬픈 사슴의 눈빛을 말입니다. 그동안 꾸준히 해왔던 '사회화' 노력 덕분에 착한 거짓말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그럴싸한 연기를 펼쳤지만, 눈빛만큼은 아직 사회화하지 못했습니다. 불길한 기운이 어찌나 그대로 드러나던지 내 가슴이 다 쿵쾅거리더라고요. 그래도 당신 기분 맞추려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니 뭉클했습니다. 이제 다 컸네 싶더라고요.
그런데 사람이란 참 이상합니다. 매번 실망하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니 말입니다. 당신이 선보일 요리에 살짝 기대하는 나를 발견하고는 망각이란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하긴 20여 년 전 미각을 잃고 사랑을 얻었으니 음식 맛이 어떻든 상관없었습니다. 진짜로. 당신이 해준 음식이라면 일류 호텔 주방장이 온갖 고급 재료로 만든 요리보다 맛있게 먹을 준비가 되어 있었으니까요. 결혼 생활 동안 당신이 시도했던, 특히 지난 몇 년간 SNS에서 난리가 났다며 도전했던 숱한 음식의 잔해들, 요리한 당신조차 입도 대지 않았던 그 음식들이 오롯이 내 몫으로 돌아왔지만, 어쨌든 난 아직도 이렇게 살아있으니까요. 그거면 됐지요. 콜록콜록. 왜 하필 중요한 순간에 기침이 나오지. 콜록콜록콜록콜록!
식사 준비를 마친 당신은 인간에게 가장 기분 좋게 들린다는 ‘솔’ 음으로 다정하게 우리를 불러 모았습니다.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식탁에 앉은 우리는 눈이 휘둥그레졌지요. 식탁 한가운데 자리 잡은 노랗고 고운 ‘두부계란부침’ 때문이었습니다. 소문난 맛집 입구에 진열해 놓은 모형 음식처럼 어찌나 예쁘고 고급스럽던지, 소담하게 차려낸 밥상 앞에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아이들도 진심으로 감동하는 듯했습니다. 젓가락질로 망치기엔 아까운 특급 요리 앞에서 당신은 "많이 만들었으니 실컷 먹어" 했답니다. 잠시나마 당신의 실력을 의심했던 나 자신이 바보 같았습니다. 어쩌자고 당신을 부정했을까요. 참회의 눈물을 마음속으로 흘리며 조심스레 두부계란부침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습니다. 그 순간 문득 질문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두부는 그냥 먹어도 맛있고 어떤 요리와도 잘 어울리며 달걀 역시 웬만하면 맛없기 힘든 성실한 재료인데, 이 두 가지 완벽한 재료를 섞어서 만든 음식에서 어떻게 아무 맛도 나지 않을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었습니다. 마치 흰옷을 입고 설산에 오르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그런 느낌....
자연스레 시선이 아이들에게 닿았습니다. 사람 입맛은 거기서 거기 같더라고요. 각자 앞 접시로 가져간 두부계란부침이 한 입 베어 문 자국만 남기고 이른 봄 그늘에 쌓인 눈처럼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연기력은 몰라보게 늘었지만, 입맛은 변하지 않았나 봅니다. 물론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습니다. 당신이 모처럼 시도한 새로운 요리 덕분에 아이들은 외할머니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 듯했으니까요. 아이들이 나물 반찬을 어찌나 맛깔스럽게 먹던지요. 평소에는 젓가락질 한 번 안 하던 것을. 어쩌면 당신의 숨은 의도는 그런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할머니의 소중함을 일깨우려는….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어찌 하해와 같은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요. 그저 짐작만 할 뿐입니다. 그래도 나는 압니다. 당신이 지난 몇 년 동안 요리 장인으로 거듭났다는 걸 말입니다. 당신은 카레를 잘 만들고, 하이라이스를 잘 만들고…, 그러니까 카레를 잘 만들고 하이라이스도 잘 만들고…, 아, 미역국과 배춧국도 환상적으로 끓이지요. 그거면 충분합니다. 우리 중 누가 당신 음식이 지겹다고 했던가요. 그런 녀석이 있다면 혼쭐 내줄 테니 이제 '요리스타그램'은 끊어도 됩니다. 당신이 열정적으로 도전했던 요리스타그램 음식들은 보기에만 그럴싸하고, 실제 맛은 하나도 없는 빛 좋은 개살구랍니다. 그렇지 않다면 요리 장인인 당신이 그 맛을 구현해내지 못할 까닭이 없을 테지요. 그러니 부디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려고 SNS를 탐구하는 일은 그만두어도 좋습니다. 인도 사람보다 카레를 더 많이 먹으면 어떤가요. 맛있는걸요.
절절한 사랑의 편지를 썼지만 결국 아내에게 부치지는 못했습니다(브런치에는 올렸지만요). 다소 과장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그날 만든 두부계란부침은 일주일 동안 제 맥주 안주가 되었습니다. 케첩이 없었다면 아마 해내지 못했을 테지요. 이심전심이었을까요. 편지를 부치지는 못했지만, 아내는 두부계란부침 사건 이후 새로운 요리에 도전하는 걸 그만두었습니다. 밥상이 심심해졌습니다. 음식을 '맛'으로만 먹는 게 아니란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내의 빈자리를 채워보려 직접 사골꼬리곰탕과 해물순두부찌개에 도전했습니다. 유명 맛집의 기술(소스)을 빌려 짬뽕도 만들어 보았습니다. 그럴수록 아내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졌습니다. 아내 전시회가 끝나면 그때 먹었던 두부계란부침을 다시 한번 만들어 달라고 떼써보려 합니다. 순백의 두부와 노랗고 고소한 계란을 섞어서 만든 '無味'의 결정체. 오늘은 왠지 그 맛도 눈물 나게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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