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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Jan 18. 2020

형씨, 위스키 온더락 한 잔 하겠소?

고전의 재味발견 <위대한 개츠비>

  낭만적 경이감에 대한 능력이나 일상적 경험을 초월적 가능성으로 바꾸는 탁월한 재능을 의미하는 ‘개츠비적(Gatsbyesque)’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킨 <위대한 개츠비>는 미국인이 사랑하는 소설의 상위권에 항상 그 이름을 올리는 책이다. 나에게도 읽을 때마다 매번 다른 재미를 주는 소설인데 2013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로도 개봉된 덕분에 개츠비라는 인물이 꽤 구체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소설이 영화화되는 것을 싫어하는 정통 독자들도 많지만 나의 경우에는 빈약한 상상력을 보완해 줄 수 있어 좋아하는 소설이 영화화되면 챙겨보곤 한다. 


<개츠비와 닉, 그리고 데이지>

  <위대한 개츠비>의 서사는 비교적 간단한 구조이다. 자신의 신분 때문에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주인공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한 후 이를 토대로 다시 사랑을 찾고자 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우연한 사고로 주인공은 씁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 소설이 오래도록 미국인, 아니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이 소설이 사랑과 (물질적) 성공이라는 인간의 본성을 재즈의 시대라 불리던 192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지금의 모든 사랑 영화가 <카사블랑카>의 변주라면, <위대한 개츠비>는 모든 현대 연애소설의 변주라고 말하고 싶다. 누군가는 말도 안 되는 궤변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소설을 향한 이런 찬사가 과해 보이지 않는다. 우리 시대가 가장 사랑하는 소설가 중의 한 명인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이 책의 작가와 작품에 대한 애정을 그의 작품 <상실의 시대>에 듬뿍 담기도 했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는 사람이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지”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서 기인 중의 기인인 도쿄 대학 법학부의 나가사와 선배가 평범한 와타나베와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위대한 개츠비> 때문이었다. 나가사와는 죽어서 30년이 지나지 않은 작가의 책은 읽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는데 (1968년 시점에서), 사후 28년 밖에 지나지 않은 스콧 피츠제럴드만큼은 예외로 한다. 

     

  “스콧 피츠제럴드 정도로 훌륭한 작가라면 언더 파로도 충분해”      


  그런가 하면 하루키의 또 다른 작품 <기사단장 죽이기>에서도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오마주가 느껴진다. 단 이것은 하루키의 공식입장은 아니고 나만의 가설일 뿐이다.  


  개츠비는 데이지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그녀의 집이 보이는 곳에 화려한 저택을 구입한다. 그리고 <기사단장 죽이기>에서도 백발의 신사 멘시키는 자신의 딸이 있는 저택의 맞은편에 호화로운 저택을 구입한다. 둘 다 상대의 존재를 모른다. 개츠비가 언제나 저 멀리 부두의 맨 끝자락에 있는 데이지의 집에서 새 나오는 초록색 불빛을 쳐다보며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을 그날을 기다리는 것처럼 멘시키 역시 자신의 딸을 그리며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갖기 위해 교묘한 방법을 고안해 낸다. 개츠비가 데이지의 사촌인 닉을 통해 그녀에게 닿은 것처럼, 멘시키도 주인공인 ‘나’를 통해 결국 딸과 만난다. 이 정도의 설정이라면 하루키의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오마주라고 불라도 좋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추론의 결론이다. 

 

  <위대한 개츠비>의 줄거리는 이미 너무 유명해서 조금은 다른 측면에서 이 책을 짚어나가 볼까 한다. 이 책이 1차 세계대전 후 경기상승이 최고조에 오른 1920년대 미국 상류층의 생활상과 문화를 보여주는 만큼 당시에 유행하던 다양한 술들이 등장하는데, 개인적으로 술과의 인연도 깊고 해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술들을 이야기와 함께 소개해 보고자 한다. 


  “중앙 홀에는 진짜 청동 레일로 장식한 바를 설치해 놓고, 그 위에는 각종 술과 코디얼 주가 가득했다. 코디얼 주는 워낙 오랫동안 잊혔던 술이라 나이 어린 여자 손님들은 제대로 구별해 낼 수도 없었다.”     


  소설 초반부는 베일에 싸인 개츠비의 화려한 파티를 묘사하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이때 등장하는 술이 코디얼 주다. 화려하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개츠비의 호화 파티에서 제공되는 칵테일이다. 원래 코디얼(Cordial)이란 냉장 보관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유럽에서 착즙 한 과일 원액을 설탕과 함께 가열해 농축한 것을 말한다. 사전적 의미로 강심제, 흥분제, 리큐어 술을 뜻하는데 알코올이 함유된 주스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사전적 의미에서도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파티와 정말 잘 어울리는 술이다. 과일을 베이스로 하여 마시기에 편하고, 자양강장 효능이 있어 심장은 계속 하이텐션을 유지할 수 있는 매력적(?)인 술이다. 매주 금요일 뉴욕의 과일 가게에서 개츠비의 대저택으로 다섯 광주리의 오렌지와 레몬이 배달되고, 월요일 오후면 그 과일들은 반쪽으로 쪼개진 껍질만 남긴 채 버려지는데 책에서는 이 과일들이 주스로 만들어진다고 했지만, 코디얼 주로 사용되었으리라 짐작해 볼 수 있다.


  뉴욕 뒷골목의 권력자 울프심과의 만남에서 등장하는 술은 하이볼(Highball)이다. 덥고 끈적끈적한 정오의 레스토랑에서 개츠비가 주문하는 술이다. 하이볼은 추락하던 일본 위스키를 부활시킨 산토리 하이볼이 2000년대 후반부터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탔다가 우리나라에도 전해져 큰 인기를 얻은 칵테일이다. 물론 이전에도 하이볼로 음용하는 경우가 제법 있었지만 큰 유행은 되지 않았다. 만드는 방법은 정말 간단해서 위스키에 소다수 (진저엘이나 콜라도 가능)를 타기만 하면 된다. 더운 날씨에 시원하게 한 잔 마시기에 더없이 좋은 술이다. 독주를 좋아하지 않는 나도 하이볼 정도는 언제나 환영이다.


  닉을 통해 개츠비는 드디어 데이지를 자신의 저택에 초대하게 된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집안 이곳저곳을 구경시켜 주기도 한다. 데이지에게 자신의 재력을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그런 어느 날 데이지가 개츠비와 닉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다. 개츠비는 갑작스러운 초대에 불안해하지만 그날도 데이지는 특유의 나른함에 젖어있다. 심지어 자신의 아이를 개츠비에게 인사시키기까지 한다. 이때 마침 톰이 들고 나오는 술이 진 리키(Gin Rickey)다. 드라이 진에 라임 주스를 섞고 소다수를 첨가해 만든 칵테일이다. 만드는 방법은 매우 간단한 편인데, 하이볼 글라스에 라임 즙을 짜서 넣고, 드라이 진과 라임 주스, 여기에 찬 소다수를 넣으면 완성된다. 이 날은 여름의 막바지로 접어든 무렵으로 가장 더운 날들 중 하루였으므로 개츠비는 진 리키를 단숨에 들이켠다. 날씨 때문인지, 여러 가지 예측 불가능한 상황 때문에 당황해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시원한 진 리키 한잔은 불안한 개츠비의 마음을 조금은 진정시켜 주었을지 모른다. 


  이야기의 전개가 절정을 항해 가고 있을 무렵 민트 줄렙(Mint Julep)이 등장한다. 개츠비와 데이지, 닉과 조던 그리고 톰 다섯 사람은 더위 때문에 무작정 외출하자는 데이지의 제안으로 시내로 나오게 된다. 마땅치 않던 톰은 개츠비와 데이지 두 사람만 사라질까 봐 막무가내로 플라자 호텔로 가자고 한다. 그리고 플라자 호텔 스위트룸을 빌린다. 숨이 턱 막히는 더위 때문에 데이지는 냉수욕을 즐기자고 제안하지만 정작 방에 들어가서는 민트 줄렙을 마시자고 생각을 바꾸게 된다. 줄렙은 텀블러에 잘게 부순 얼음을 채우고 주로 켄터키 주에서 생산하는 버번위스키에 설탕을 넣어 만드는 칵테일이다. 이런 줄렙 중에 가장 많이 마시는 종류가 상쾌한 민트 잎을 첨가한 민트 줄렙이다. 하지만 민트의 상쾌함과는 반대로 정작 이곳은 비극이 시발점이 되고 만다. 개츠비와 톰이 충돌하고, 개츠비와 데이지가 갈등을 겪는 결정적인 공간이 되는 것이다. 이곳에서 톰은 개츠비의 추악함을 들춰내고, 개츠비는 데이지가 남편을 사랑한 적이 없음을 고백하라고 종용한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인 톰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비록 지금은 개츠비를 사랑하지만 자신에게 너무도 많은 것을 원하는 그를 원망하기에 이른다.      


  결국 개츠비는 톰의 정부(머틀 윌슨)를 차로 치여 죽였다는 오해를 받고 그녀의 남편(조지 윌슨)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저 사랑을 되찾고 싶던 개츠비의 꿈은 거품처럼 사라지게 되고, 불빛을 쫒던 불나방들처럼 파티를 찾던 사람들 중 누구도 개츠비의 장례식에 오지 않는다. 오직 닉만이 그를 기억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개츠비의 대저택에서 호화로운 파티가 수도 없이 벌어졌지만 정작 개츠비는 술 한잔 (거의) 마시지 않았다. 데이지가 언제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 빈틈없던 개츠비였지만 사랑 앞에서는 서투른 것 투성이인 낭만주의자일 뿐이었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개츠비, 그에게 공감과 동정의 마음을 담아 술 한잔을 권하고 싶다. 


  "형씨, 위스키 온더락 한 잔 하지 않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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