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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Jan 22. 2020

우리 집에도 에디슨이 있었네 (그것도 둘이나)

준&큐 형제의 유정란 부화 시도 실패기 

  최근 몇 해 동안 이른바 살인적인 더위라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폭염이 계속되었다. 대구 한 지역에서는 차량 보닛(bonet) 위에서 달걀 프라이가 가능하다는 소문이 있었는가 하면, 강릉에서는 베란다에 둔 계란이 자연 부화했다는 소식이 뉴스로 소개되기도 했다. 아이들과 나들이하던 차량에서 라디오 뉴스던가, 음악프로 DJ가 전하는 사연으로 들었던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쨌든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흘려듣고 더위가 대단하긴 한 것 같다며 수긍했던 기억이 있었다. 


  아내와 나는 이내 잊어버렸지만 준&큐 형제는 이 뉴스를 잊지 않고, 원대한 포부를 세웠다. 우리는 꿈에서도 모를...... 갑자기 한 여름 이야기를 꺼내는 데에는 물론 이유가 있다. 


  어제 아이들 방에 딸려 있는 드레스 룸 (주로 아이들 장난감과 안 입는 옷을 놓아두는 공간으로 활용)에서 준&큐 형제의 유정란 부화 시도 현장이 적발되었다. 사건 현장에서 담요 위에 놓인 유정란 2개와 온도 유지를 위한 조명(스탠드), 휴대용 충전기 2개, 그리고 병아리 부화 시 먹이로 사용될 쌀 등이 발견되었다. 준&큐 형제는 이 공간을 자신들만의 아지트로 만들어 종종 간식이나 만화책을 가져다 놓고 놀곤 했다. 하지만 이 공간이 유정란 부화의 장소로 활용될지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아이들은 언젠가 들은 무더위 달걀 부화 뉴스를 스스로 실험해 보고 싶었다고 했다. 부화되면 병아리는 마당이 있는 춘천 할머니 댁에 갖다 드리거나 조카 (수의대 학생)에게 전달하겠다는 사후 계획도 세워 두었다. 다른 것은 그렇다고 치고 부화도 되지 않았는데 쌀은 왜 가져다 놓았냐고 물었더니 언제 부화될지 몰라 미리 달걀 주위에 뿌려 두었다는 것이다. 나름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놓았던 것이다. 


  아이들의 치밀한 작전을 눈치챈 아내가 더 대단해 보였다. 적발되었을 때가 5일째였는데 나는 전혀 낌새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내(여자)의 직감이란 역시 초인적인 능력이다. 아내가 아이들의 유정란 부화 시도를 눈치챈 이유를 몇 가지로 설명해 주었다. 


  1) 최근 며칠 동안 큐가 엄마에게 살갑게 굴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엄마를 안아준다거나 엄마의 팔, 다리를 정성껏 주물러 주는 행동은 평소의 큐라면 거의 하지 않는 행동이었다. (하더라도 장난감을 사달라거나 게임을 시켜달라는 조건부였다) 처음에는 철이 들었나 싶었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2) 쌀통이 열려 있다거나 쌀이 주방 이외의 공간에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아이들이 쌀로 무언가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3) 아이들 공부방 책상 위에는 두 개의 조명(스탠드)이 있는데, 언제부턴가 하나가 안보이기 시작했다는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였다. 이 스탠드는 전원을 연결하지 않고, 휴대용 충전기로도 사용이 가능한데 휴대폰을 압수당해 휴대용 충전기를 사용할 일이 전혀 없는데도 항상 충전 중인 두 개의 휴대용 충전기도 의심스러웠다고 한다. 


  4) 핫팩 (뜨거운 물을 부어 사용)의 숫자가 늘 한 두 개 비어 있었다고 한다. 


  5) 준&큐 형제가 갑자기 청진기를 사달라고 했다는 것이 마지막 이유였다. 자기들 심장 소리를 듣고 싶다며 아내에게 청진기를 사달라고 졸랐다고 하는데 너무 뜬금없는 요청에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결국 유정란 부화 시도는 적발되어 무산되었다. 생명을 탄생시킨다는 것은 무한한 책임을 동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아내와 나는 준&큐 형제 이외의 생명을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동안 강아지나 고양이, 그리고 거북이까지 아이들이 키우고 싶어 하는 많은 동물들이 가족회의에서 논의되었지만 무산되었다. 경제적 고려뿐만 아니라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했다. 순간적인 호기심이나 관심으로 생명에 관여하는 일은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일들 중의 하나라고 믿는다.  


  그리고 '에디슨의 달걀'처럼 아이의 작은 호기심이 학문적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그 불씨를 꺼뜨리지 않는 것도 숙제로 남겨졌다. 집에 에디슨이 둘이나 있으니 좀 피곤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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