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심장, GPU 이야기
대한민국의 명운이 걸렸던 APEC 정상회의가 무사히 막을 내렸습니다. 한고비를 넘겼을 뿐만 아니라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지만, 아주 잠깐 이 결과를 즐겨도 좋을 듯합니다. 나라 걱정 안 하고 사는, 너무 당연한 일들이 당연하지 않았던 몇 년을 버텨왔으니, 이제 국민들도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해도 되겠죠. 정치가, 투표가 이렇게 우리 삶에 커다란 영향을 끼칩니다. 주가도 연일 불기둥처럼 치솟으니 슬슬 일개미도 이 흐름에 편승해 볼까요. 사람 미워하는 타입 아닌데, 그가 없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휴~~~.
한미, 한중 정상회담 같은 정치, 외교 이슈는 다룰 깜냥이 안돼 딱히 APEC 관련해 글 쓸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이 뜬금없이 삼성, 현대와 '치맥 회동'을 벌이더니 우리나라에 큰 선물을 안겨주었습니다. GPU 26만 장 우선 공급! 와, 이건 그냥 지나칠 수 없겠다 싶었습니다. 웃돈 주고도 못 사는 GPU를 이렇게나 많이! 이건 정말 대박 사건입니다.
이쯤에서 GPU가 뭐 그리 대단한데 싶은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AI 시대에 없어서는 안 될 그거..., 정도로 알고 계시는 분들도 있을 테고요. 사실 뭐 저도 같은 부류에 속해 있는 사람입니다만, 오늘은 아주 쉽고 간단하게 GPU가 무엇인지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일단 저부터 궁금하기도 하고요. 워낙 궁금한 게 많은 나이니까요.
GPU란 'Graphic Processing Unit'의 약자입니다. 우리말로 '그래픽처리장치'라고 합니다. 원래 컴퓨터 게임 화면(그래픽)을 예쁘고 빠르게 보여주기 위해 개발되었습니다. 이전에 사용했던 CPU, 즉 Central Processing Unit은 화면 픽셀을 하나하나 계산해야 하기 때문에 매우 느렸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계산을 동시에 처리하는 GPU가 등장한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CPU는 머리 좋은 수학자이고, GPU는 수천, 수만 대의 계산기를 가진 노동자 집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잡한 미적분이라면 전자가, 단순 계산을 반복하는 일이라면 후자가 잘해 낼 테지요. 그렇다면 컴퓨터 게임을 더 실감 나게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GPU가 AI와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인공지능(AI)이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할 수 있는 수준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수많은 숫자를 계산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무리 많은 사진 속에서도 개와 고양이를 구분할 수 있지만 인공지능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AI가 고양이를 제대로 배우려면 가능한 많은 이미지를 가지고 공부, 즉 수백만 번의 계산을 해야 합니다(이걸 딥러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처럼 생긴 고양이, 재규어나 표범처럼 생긴 고양이를 구분하려면 기존 CPU로는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2012년 캐나다의 한 대학 연구팀이 GPU로 인공지능 모델을 학습시켰고, 그 결과 컴퓨터가 사진 속 사물을 사람보다 더 정확히 알아보게 되었습니다(이것이 가능했던 건 엔비디아의 CUDA 덕분입니다. 간단히 말해 GPU를 범용 계산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기술입니다). 이때 사람들은 깨달았습니다. GPU가 AI를 발전시킬 열쇠라는 사실을. 이후 GPU는 게임 부품을 뛰어넘어 AI 성장의 엔진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ChatGPT는 수천, 수만 개의 GPU를 통해서 돌아갑니다. 하나의 거대하고 똑똑한 두뇌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서는 수많은 작은 칩들이 함께 계산을 나누어 맡고 있습니다.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하나의 대답을 만들어내기 위해 쉼 없이 일하고 있는 셈이지요. 이러한 AI 성장의 중심에 엔비디아(NVIDIA)가 있습니다. 세계 GPU 시장에서 90% 내외 점유율을 지키고 있으니 독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생산이 밀려 앞서 말한 것처럼 돈이 있어도 못 사는 상황입니다. GPU 대란이라도 불릴 만한, 미국의 디지털 안보의 핵심 자원이라 마음대로 수출할 수 없다고 누군가 말하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에 26만 장을 우선 공급하겠다고 했으니 가히 역사적 사건이라고 부를 만합니다. AI가 반드시 장밋빛 미래를 가져다줄 거란 보장은 없지만, 현시점에서 AI 산업에 뒤쳐지면 미래 세대가 큰 어려움에 빠지리란 건 자명해 보입니다. AI가 인류에게 가져다줄 손익분기점을 엄격하게 정해놓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일단은 한시름 놓았습니다.
삼성동 치맥 회동이 끝나고 계산대 앞에서 정 회장이 현대 카드를 내밀자 이 회장이 동생 내가 쏠게 하며 삼성 카드를 내밀었다고 합니다. 그때 젠슨 황이 유유히 나와 그래픽카드를 내밀었다고 합니다. 물론 우스갯소리입니다. 시가 총액 기준으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인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도 엔비디아와 비교하면 동네 마트 수준입니다. AI 가 업계를 가릴 것 없이 중요한 까닭을 엿볼 수 있습니다. 판은 잘 깔아 놓았습니다. 대한민국의 다음 수가 정말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