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또다시 변신의 꿈

대학로를 그리워하며

by 최현숙

고3 입시가 끝나고 대학 입학날을 기다릴 즈음, 대학로에 갔던 기억이 난다. 창작과 신명의 에너지가 나를 흥분시켰던 기억. 길거리의 사람들에게 풍물놀이를 가르쳐주던 창작 집단을 우연히 만났는데, 치기 어린 나는 손을 번쩍 들었고, 놀이패에 끼어 소고였는지 장고였는지 북을 치며 춤을 추었다. 에라 모르겠다 나도 이제 대학생인걸 하며 부끄러움을 덜어냈다. 대학에 가면 뭔가 신나는 일이 많이 생길 것 같은 기대감. 대학로가 그 설렘으로 가득 찬 것 같았다.


어제는 우연히 전설 같은 음악가, 김민기가 작년 7월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국을 떠난 지 20여 년이 흘렀고, 이렇게 중요한 한국뉴스를 한참 뒤에나 듣는 일이 종종 생긴다. 학전을 둘러싼 그분의 미담과 그의 노래를 들으며 안타까움과 애도의 눈물을 흘렸다.


90년에 대학에 입학했을 때 내가 처음 문을 두드린 곳은 노래패였다. 그때 처음 부른 노래가 아침이슬이었고, 그때 내 노래를 들은 선배들은 목소리가 양희은 같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해서 4년 내내 노래를 하고, 공연을 했다. 우리 노래패는 소위 말하는 운동권 노래패였으나, 나를 이끌었던 것은 노래와 공연의 묘미였다. 길거리 집회에 참여하여 공연하는 일이 있었지만, 노래를 부르는 이유보다는 노래 자체와 합창의 힘에 매료되었다.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직업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가수에 대한 꿈을 꾸기도 했다. 그 당시에 노찾사와 같은 민중가요 노래패들이 상업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런 곳에서 오디션을 보는 건 어떨까 상상하기도 했다. 며칠 고민하다 그 꿈을 접고, 삼성 사내방송에 납품을 하는 영상 프로덕션 회사에 조연출로 취직을 했다. 공연은 아니어도 뭔가 기획하고 창작하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다, 방송연출이라는 답이 나왔고 첫 월급 35만 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공영 방송 취업고시에 도전할 야망도 도서관에 장시간 앉아 있을 끈기도 부족한 내게는 어렵지 않은 선택이었다. 보잘것없는 첫 직장에서 콘티를 작성하고, 현장에서 찍고, 밤새가며 편집을 했다. 그때 내 나이, 스물넷.


지난 30여 년 사이 나는 많은 변화들을 겪었다. 조연출 생활을 하다 방송일에 회의를 느껴 대학원에 갔고, 우연히 만난 재미 교포친구를 통해 느지막이 미국에 유학을 가게 된다. 통번역 공부를 하고 샌프란시스코에 일을 시작하다 마지막 직장에서 17년을 일하고 지난 2월 말에 정리해고를 당했다. 생각해 보니 무수히도 많은 일을 했다. 조연출, 작가, 조교, 대학강사, 프로젝트 매니저, 비서실장, 프로덕트 매니저. 내 직업의 역사를 보니, 변화를 좋아하고 새로운 걸 추구하는 내 성향이 고스란히 보인다.


올해 2월 말에 정리해고가 된 이후, 지난 3개월이 또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처음에는 직장인이라는 소속감과 정체성 상실에 당황했고, 그 아무것도 아닌 허울이 벗기니 50대 중반의 이혼녀라는 자연인으로 고스란히 돌아왔다. 그다음엔 취업시장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 보고자 이력서를 업데이트했고, 몇몇 회사들과 얘기가 있었지만 어느 한 건도 성사되지 않았다. 속상함이 사라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그리고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에 집중했다. LinkedIn에 "Open to Work"이라는 태그를 내렸다. 신나게 놀아보리라.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자유로움에 더 감사했다.


나는 은퇴 후에 카페에서 노래 부르는 가수가 될 거라는 얘기를 농담처럼 하곤 했다. 가창 수업도 듣고, 피아노도 연습하고, 요즘엔 작곡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보스턴에 있는 버클리 음대에서 하는 온라인 강의를 Coursera라는 교육 플랫폼에서 들을 수 있다. 한 달에 58불이면 뭐든지 다 배울 수 있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꾸었던 가수에 대한 꿈, 언젠가 이룰 수 있을까?


얼마 전에는 동네 성인들에게도 미술을 가르쳐주는 Art Studio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데생, 수채화, 유화, 아크릴화 등 다양한 수업들이 있고 그중에서 인상주의 화풍을 배우는 수업이 가장 흥미로왔다. 재작년에 파리에 갔을 때 인상주의 박물관에서 고호, 마네, 모네와 같은 작품을 접하며 받았던 감동. 그 감동을 내가 재현해 볼 수 있을까? 일주일에 한 번씩 총 6주에 걸친 수업이었고 나는 고호의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이라는 그림을 그렸다. 매주 지나면서 변해가는 그림이 신기했고 잔잔한 감동과 성취감이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2021년 여름 코로나 시기에는, 혼자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중학교 때 방과 후 미술반에서 그렸던 그림에 대한 감각이 다시 살아났다. 겁 없이 막 그리는 나는, 전문가 수준은 아니어도 나름 볼만했다. 그때는 물감과 색연필로 그림을 그렸는데, 이번에는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으로 고호의 작품을 그렸다.


정리해고 이후에 뭘 해 먹고살아야 하나 많은 생각을 한다. ChatGPT에 물어보니, 일단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니 계속 취업원서를 내보고, 그러면서 그림과 노래와 같은 창작활동을 틈틈이 해보라고 했다. 미국에는 Etsy라는 사이트가 있는데 빈티지나 특이한 제품을 판매하고 구입하는 플랫폼이다. 팔리는 그림들을 보니 나도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을 그려 액자까지 만들어 판매하면 가격이 좀 세지만, 디지털 아트로 다운로드하게 하면 가격은 적어도 무한대로 카피가 가능하다. 혼자서 창작사업을 해볼까?


김민기가 연출, 제작한 학전의 첫 공연, 지하철 1호선, 그때 활약했던 배우들을 보니 지금 뮤지컬과 영화 부분에서 대활약하는 분들이 많다. 설경구, 황정민, 조승우와 같은 대한민국을 주름잡는 연예인들이 학전 출신이다. 방은진이라는 여배우도 마찬가지인데, 그분은 인정받는 영화감독으로 성장해 있었다. 여배우로서 감독이 되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 변신의 과정이 궁금했고 영화에 대한 열정이 부러웠다. 65년생 그녀의 인생에서 깊이가 느껴졌다.


인생에서 변신의 기회가 찾아올 때가 있다. 정리해고 후에 찾은 시간과 여유가 기회로 돌아왔다. 위기는 기회라는 상투적인 말을 떠올려본다. 창작을 본업으로 하며 살 수 있을까? 노래를 하고 그림을 그리면서? 또 꿈이다. 맨날 꿈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게 영성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