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소중함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큰 고충은 의지할 가족이 없다는 것이다. 일 년에 한 번 한국에 나가서 가족을 만나는 것을 제외하고는 가족 틈에 끼여 가족 구성원들의 다양한 관점과 방식을 경험할 일이 거의 없다. 교회 엄마들과 육아에 대한 정보와 고민을 공유하지만 한계가 있다. 서로의 육아 방식에 대해 자유롭게 피드백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칭찬이야 할 수 있겠지만, 뭔가 고쳤으면 하는 점에 대해서는 서로가 말을 조심하는 편이다. 책임질 수 없는, 다른 집 아이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해 봐야 서로 상처만 되기 쉽다.
그럼에도 나의 육아 방식에 대한 교회 엄마들의 피드백을 간접적으로 들을 때가 있다. 유권이에 대한 모성애가 너무 강하고 유권이에게 양보를 너무 많이 한다고 했다. 그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갸우뚱하기도 했었다. 아이들은 민주적으로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 유권이와 토론과 대화를 많이 하지만 때론 쓸데없는 감정싸움에 피곤해지기도 했다.
올봄, 회사에서 정리해고가 되면서 유권이와 보내는 시간이 급격히 늘었다. 늘 일에 매달려 있던 엄마에서 유권이에게 집중하는 엄마로 지내고 싶었으나 오히려 유권이와 갈등상태가 잦아졌다. 장을 보러 가서도, 저녁을 만들면서도, 학교 가방 정리, 꾸부정한 자세, 친구관계 등 별 것도 아닌 일이 싸움이 되고 감정이 격해지곤 했다.
이번 여름에 한국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유권이와 나의 이런 문제가 더욱 불거졌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갈등상태가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친구들을 보러 가는데, 자기도 따라 나가겠다며 고집을 피우고, 박물관에 가자고 했더니 쓸데없는 신경전이 벌어지고, 지 의견을 따라주지 않으면 그 뜻을 관철하기 위해 온갖 이유와 핑계를 대며 물고 늘어진다. 12살짜리 남자아이, 소위 말하는 중 2병이 이런 건가?
이런 나와 유권이를 보는 가족들은 내가 유권이에게 너무 끌려다니고, 유권이가 나를 너무 피곤하게 한다고 했다. 그런 시선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그런 유권이를 교육시키기 위해 호통도 쳐 보고, 무시하기도 했다. 그런 유권이를 보는 내 마음이 너무 아팠다. 한국 가족들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게 해주고 싶었는데, 유권이는 가족들에게서 오히려 혼이 났고 가족들은 나의 양육방식을 나무랐다.
처음에는 가족들과 붙어서 싸우기도 했다. 왜 애를 이렇게 힘들게 하느냐고, 그 불쌍한 애를 받아주면 안 되냐면서. 나도 감정에 복받쳐 눈물이 나고 화를 벌컥 내기도 했다. 그런 나를 안타까워하는 언니의 마음에 또 마음이 아팠다.
그러면서 엄마 생각이 났다. 늘 자신의 아들을 불쌍해하던 엄마, 지나친 자식 사랑 때문에 자신과 아들을 구별하지 못했던 엄마의 양육방식에 늘 비판적이었던 나. 어느새 나도 엄마 같은 모습으로 유권이를 키우고 있었나? 자식을 불쌍하게 바라보는 부모의 태도가 아이의 성장에 독이 된다는 것을 체험했음에도, 나도 모르게 유권이를 불쌍하게 보고 웬만하면 맞추며 상처 주지 않으려고 애를 썼던 것 같다.
한국을 떠나기 이틀 전, 친한 친구들 몇 명이 송도에 오겠다고 했다. 유권이에게는 엄마 친구들에게 인사하고 밥만 먹고 가라고 했더니 끝까지 있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아니나 다를까? 신경전이 벌어졌고 자신의 욕구를 관철시키려는 유권이의 강도는 점점 세졌다. 나는 울고 불고 버티는 유권이를 두고 친구들을 만나러 가버렸다.
알고 보니, 그날 남겨진 유권이는 혼자서 송도 주변을 산책하고 자신이 먹고 싶었던 일본 카레집에서 저녁을 먹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이모네 집에 들어갔다. 한국말도 편하지 않은 12살 꼬마 녀석이 혼자서 주문을 하고 밥값을 지불하다니. 내가 유권이를 너무 저평가했구나 싶었다. 이렇게 독립적인 중학생 아이를 내가 너무 어린아이로 취급했구나.
언니는 나 중심으로 살라고 했다. 그런 나를 보고 자라는 유권이가 훨씬 더 잘 자란다고 했다. 나의 과도한 관심과 비권위적인 양육태도가 아이에게는 독이 될 수 있다는 걸 상기시켰다. 엄마의 권위가 서야 아이가 잘 자란다는 진리를 잊고 있었구나. 어느새 친구 같은 엄마가 되어 훈육이 아닌, 토론과 양보가 더 익숙해져 버렸다. 내가 부모라는 점, 유권이에게 가르칠 게 너무 많다는 점, 부모는 존경받아야 할 윗사람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었다.
미국에 돌아와서 유권이는 예, 엄마! 예 엄마! 하면서 꼬리를 내리더니 일주일이 지난 오늘 아침, 여름캠프에 가면서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테니스 캠프인데 가방 안에 지난 학기 수업노트와 책들이 잔뜩 들어있다. 점심시간에 혼자서 노트를 보고 책을 읽겠다고 했다. 친구가 없어 괴로워하면서도 또 벽치고 혼자 놀 생각을 하다니. 캠프는 테니스 기술뿐 아니라 친구를 만나는 자리라고, 공부하고 잘난 척하는 자리가 아니라고 했더니, 내게 그만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너는 엄마 말을 들어야 하고, 그만하라는 말은 엄마가 하는 말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나는 유권이에게 친구가 아닌, 40년 이상을 더 산 부모이며, 아이에게 옭고 그름을 가르쳐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의 의견과 감정을 들어주는데서 벗어나 부모로서의 권위를 지켜야 한다. 어떻게 이런 엄연한 진리를 까먹고 살았을까?
나는 유권이를 너무 많이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유권이 괜찮니? 정말 괜찮니? 하면서. 이제는 옆이 아닌, 앞을 더 바라보며 유권이를 잘 이끌어주어야 한다.
지난주에 유권이 아빠가 집에 와서 저녁을 먹었다. 내가 나쁜 엄마 할 테니 당신은 좋은 아빠 하라고 했더니 피식 웃는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을 통해 부모로서의 힘을 되찾는다. 사람은 여럿이 부대끼고 복닥거려야 제대로 성장한다. 한국에 더 자주 나가야 하나? 가족의 소중함을 또다시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