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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와 성공 사이

Time to move on!

by 최현숙

한국에 가면 꼭 하는 일중의 하나가 미장원에 가는 것이다. 내 머리와 스타일을 아시는 헤어 디자이너 분을 운 좋게 만났고, 7월 초순 미국으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날, 그 미장원을 찾았다.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벽에 걸려 있는 방향제의 문구가 눈에 확 들어왔다.


Somestimes You Win

Sometimes You Learn


2월에 정리 해고 소식을 들었을 때, 초반의 충격상태가 지나가도 내 마음에 껄끄럽게 남아 있는 질문이 있었다. 지난 6년, 회사에서 왜 그렇게 힘들어했을까? 그 이유, 전적으로 나의 책임인가? 리더십과 운영방식의 문제였나? 회사에서 내가 전략적으로 필요한 사람이었다면 나를 내보냈을까?


지난 6년, 업무평가도 가히 나쁘지 않았고 나름 어깨에 힘이 들어갈 만한 프로젝트도 있었지만, 마지막 3년은 유난히 힘들었다. 주어진 프로덕트는 개발자들이 쓰는 플랫폼 툴로 2D, 3D 설계모델을 웹과 모바일에서 구현해 주는 시각화 툴이었다. 회사의 다양한 앱에 내재된 이 툴은 일반 유저들에게는 생소하지만, 유저수가 2백만이 넘어 이해 관계자들의 수많은 요구사항을 관리해야 하는 복잡한 프로덕트였다. 그 소용돌이 안에서 중심을 잡지 못했고, 문제를 깨고 나가기보다는 내 한계에 봉착하여 내적으로 괴로워했다.


Sometimes You Learn이라는 문구는, Sometimes You Fail로 다가왔다. 실패를 통해 배운다면 그만이라는 뜻이다. 실패를 인정하는 것을 거부했던 걸까? 실패를 인정하면 그 원인이 온통 내게 있는 것 같아서, 자책감이 들까 무서웠을까? 지난 3년, 실패로 결론지을까? 그러면 내 마음이 더 편해질까?


돌아보니 성공적인 경험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고객들과 팀원들에게 긍정적인 피드백도 받았고, 프로덕트의 위상이 훨씬 높아졌고, 프로덕트의 얼굴이 되어 로드맵을 발표하며 고객들과 신뢰를 쌓아갔다. 그러나 리더십과의 관계가 쉽지 않았다. 나를 내세우고 리더들에게 접근하기보다는 주어진 일을 해내기에 바빴다. 업계에 대한 지식을 쌓으려고 노력했지만 개발자 경험이 없는 내가 따라잡고 리드하기에는 무리수였다. 내가 갖고 있는 장점은 호기심과 관계 맺기인데, 그 장점을 발휘하지 못하고 내 약점에 치여 슬슬 도망을 다니기도 했다.


이제, 그 3년을 성공과 실패의 중간지점 어딘가로 결론짓는다. 그리고 이제, time to move on! 성공적인 경험은 취하고, 실패한 경험은 교훈만 남기고 과감히 내보내야 한다. 머리를 쥐어 짜며 고민해야 봐야, 남는 게 별로 없다. 내게 남길 교훈은, 판단을 미루지 말고 전략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황을 뭉개며 어떻게 되겠지 내버려 두는 무모함은 확실히 문제였다. 상황에 대한 인식을 정확하게 하고 나아갈 방향을 정해 실행에 옮겼어야 했다. 그 결론이 정리해고를 기다리는 상황이었더라도.


모든 경험에는 가치가 있다.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게 낫다. 언제 그 경험이 도움이 될지 모르고, 또 그 경험을 통해 과거와 다른 나로 성장하기도 물론, 주춤하기도 한다. 한번 사는 인생, 지루하게 살고 싶진 않다. 전 남편은 나를 보고 Cowgirl이라고 했다. 기회가 다가오면 일단 취하고 리스크는 나중에 감당하는 편. 그래서 사건 사고도 많지만, 그래서 내 인생은 나름 흥미진진하다.


예기치 못한 곳에서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는 친구의 따뜻한 말이 떠오른다. 인생은 성공이던 실패이던, 살아볼 만하다. 언제나 새로운 경험들이 우리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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