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 아닌 일반인으로
샌프란시스코는 미국 서부에서 가장 아름답고 역동적인 도시이다. 지난 200여 년 기간 동안, 역사적으로 중대한 사건들을 수없이 겪으며 무수한 변화를 이뤄낸 곳. 1800년대 말 서부지역 금광개발 (Gold Rush) 열기에 인구수가 급증했고, 1960년대에는 베트남전에 대한 반대급부로 전국에서 몰려드는 히피들로 붐볐고, 2000년대 이후에는 인터넷과 AI 개발로 하이테크 업계의 성지가 되었다. 코비드 여파로 심각해진 홈리스 문제로 샌프란시스코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하지만, 이 도시의 명성은 여전하다.
2005년에 대학원을 마치고 미국에서 처음 일을 하게 된 도시가 샌프란시스코이다. 총직원이 12명이었던 작은 번역회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바트 (Bart)라고 불리는 지하철을 타고 다운타운 역에 내려 회사까지 걸어가던 출근길, 회사 동료들과 술 한잔하고 막차를 타러 뛰어가던 길, 점심시간에 커피를 들고 산책하던 길. 다운타운을 걷고 뛰면서 미국에서의 사회 초년병으로 짜릿한 만족감을 느끼곤 했다.
오토데스크로 이직을 한 뒤, 산라파엘 (San Rafael)에 있는 사무실에서 5년 정도 일을 했고, 회사가 샌프란시스코로 본사를 옮기면서 다시 다운타운으로 출근을 하게 됐다. 회사의 위치는 페리 빌딩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보이는, 다운타운의 시작 1 Market. 우리 집에서 샌프란시스코에 가려면 페리를 타는 게 제일 간단한데, 집에서 10분 정도 운전을 해서 선착장에 주차를 하고 30분 정도 페리를 타면 회사가 보인다. 구글, 세일즈포스, 어도비, 메타, 아마존, 내로라하는 하이테크 기업들은 거의 다 다운타운에 사무실이 있다. 랩탑을 메고 출근하는 인파에 섞여 다운타운을 지나며, 그렇게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제는 직장인이 아닌 일반인으로 페리를 탔다. 오후에 출발해서 주차장에 자리도 많았고, 주차비도 받지 않았다. 놀러 가는 사람들도 듬성듬성 자리에 앉아 있고, 페리 안 스낵코너에는 직원이 커피와 베이글을 팔았고, 그 익숙해질 법한 바다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소살리토를 지나고 샌프란시스코 항구에 도착. 우르르 사람들이 쏟아져 내리고 페리빌딩에 도착했다.
페리 빌딩 안에 블루바틀 (Blue Bottle)에서 3시에 예전 상사를 만나기로 했다. 스탠퍼드 대학원을 나오고, 올 초에 그룹 매니저로 승진한, 서른세 살의 똘똘한 이태리계 유태인 친구. 4개월 만에 그녀를 만나니 너무 반가워 호들갑 떨며 인사를 했다. 풀타임 잡에 어린아이 둘을 키우고, 게다가 집 인테리어도 한다는 그녀는 머리가 부스스하니 허름한 쑥색 잠바를 걸치고 나왔다. 일하다가 급하게 뛰어나온 모양이다.
나를 보더니 일할 때보다 얼굴이 확 폈다고 했다. 그녀의 안색은 피곤한 기운이 역력했지만, 수수한 얼굴이 빛나 보였다. 정리 해고 이후에 팀이 어떻게 변했는지, 리더십 팀에 누가 있는지, 사람들은 잘 지내고 있는지, 내 근황은 어떤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나에게 도움이 될만한 정보들을 그 자리에서 공유하고 자신의 커리어에 대한 계획도 털어놓았다.
그녀와 나의 나이차는 20살. 내가 대학에 갔을 때 그녀가 태어난 셈이다. 똘똘하고 당찬 그녀, 작년에 그녀는 건설 쪽 PM으로, 나는 플랫폼 PM으로 가깝게 일을 하다가 올 1월에 결국 그녀가 내 매니저가 되었고, 2월 말에 나는 정리해고가 되었다. 어려운 일이 닥쳐도 여유 만만하게 버티고 해결하는 그녀의 자신감, 그래서 윗분들도 그녀를 신뢰하고 더 큰 일을 맡긴다. 그녀만의 비결이 뭐냐고 물으니, "I am an Alpha girl. I can't help it!"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그런 그녀가 귀엽고 멋지다.
두 시간 정도 수다를 떨고 자리를 뜨려고 하는데, 그녀가 페리빌딩 앞 광장에 서 있는 조각물이 보이냐고 했다. 13.7 미터의 웅장한 조각물은 2015년에 버닝맨이라는 서부지역의 비주류 축제에서 처음 만들어졌고, 샌프란시스코 도시 관계자들은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도시 이미지를 되찾는 일환으로 이 조각물을 유치했다고 했다. 이 조각물의 이름은 R-Evolution. 위풍당당하게 온몸을 펼치고 세상을 향해 맞서나가는 혁명적인 여성상을 표현하고 있다. 나체의 적나라한 몸이 민망하기는 했으나, 이 정도는 돼야 샌프란시스코지 하며 피식 웃었다.
모든 게 변한다. 나도, 내 상사도, 샌프란시스코도 다 변화를 겼는다. 내 큰 조카보다도 어린 동료가 내 매니저가 되고, 정리 해고 이후에도 서로를 지원하고, 페리빌딩 앞에는 거대한 조각물이 서 있고, 코비드 때는 파리도 없을 것 같은 다운타운이 사람들로 넘실거린다.
내일은, 올 가을에는, 내년에는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나의 커리어, 유권이의 7학년, 가족의 건강, 친구들의 삶, 모든 게 변할 텐데, 다가올 미래를 걱정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다 보면, 상황은 펼쳐질 테고 그 안에 나는 또 어떤 모습으로든 살아가겠지. R-Evolution처럼 기죽지 말고 위풍당당하게 살아보자. 내가 개척하는 내 인생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