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mmer of Love in 샌프란시스코
어렸을 때 내가 가장 좋아하던 단어는 자유였다. 낙서장에 뭔가 긁적거릴 때면 늘 자유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자유에 대한 정의를 구체적으로 내렸던 것은 아니지만, 자유라는 말에서 풍기는 낭만적인 느낌을 좋아했다. 주변과 사회의 틀에서 얽매이지 않으며, 내 생각과 감정에 죄책감이 없는, 말과 행동이 구약 받지 않는 지점.
그 갈망의 근원지가 어디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자라면서 엄마에게 공부하라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먹고 자라는 소리를 주로 들었다. 성적표를 가져다주면, 성적이 전교에서 놀던, 반에서 중간을 하던, 시험 과목에서 양을 받던, 엄마는 별 관심이 없었다. 딸들이 아들보다 교육을 더 받는 것에 대한 우려를 빼고는, 대학에 가도 대학원에 가도 기특해만 하셨다. 엄마는 외가, 친가의 친척들을 챙기느라, 음식 하느라, 화투치고 노시느라 늘 바빴다. 아빠도, 그 시대 모든 아빠들이 그랬듯이, 새벽에 나가 자정이 되어서야 술이 흥건히 취해 들어오셨다.
옆에서 챙겨주고 나무라던 언니가 없었으면 방목상태로 청소년기를 보낸 것 같다. 물질적으로 부족한 것은 없었으나 원하는 걸 다 얻을 수는 없었고, 엄마의 관심을 갈구했으나 내 차지는 아니었다. 그런 나를 측은하게 여겼던 언니는 친구네 집에도 나를 데려갔고, 구구단도 제대로 못 외우는 나를 호되게 혼내기도 했다.
그런 언니의 관심이 없었다면 나의 어린 시절은 자유 그 자체였다. 밤늦게 까지 학교와 집 근처를 쏘다니고, 친구들이 논다는 곳을 찾아다니고, 남들 자율학습할 때 그림 그리고 합주연습을 했다. 가족의 속박과 강제 없이 이미 자유롭게 지냈던 나, 왜 그토록 자유를 갈망했을까?
성인이 되어도 자유에 대한 열망은 여전했다. 결혼은 남들이나 하는 거였고, 대학원을 졸업하고는 미국으로 훌쩍 떠나버렸다. 새로운 언어와 문화에 대한 낯섦과 두려움이 컸지만, 한번 보면 그만인 익명성이 나를 더 자유롭게 했다. 이제 미국에 산지 20여 년이 흘러, 동네 어딜 가던 지인들과 마주치곤 하지만, 여전히 백인이 대다수인 이 동네, 내 과거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 속에 묻혀 지내는 자유함이 있다.
자유를 추구하는 내 성향은 예술과 문화에 대한 관심과 맞닿기도 한다. 예술에 조예가 깊거나 지식이 풍부한 것은 아니지만, 기존의 틀을 깨는 반사회적인 사건이나 문화적 현상에 특히 관심을 갖는다. 지금의 샌프란시스코를 만들어준 결정적인 사건, The Summer of Love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1967년 여름, 샌프란시스코에 2만여 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자유와 평화를 찾아 전국 각지에서 모인 젊은이들이 골든게이트 공원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The Summer of Love라는 표현은 그때의 열기와 열망을 상징하는 것이고, 소위 말하는 히피 문화를 대변한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은 인구수가 급증했고 경제적인 풍요를 경험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베트남 전으로 인해 수백만명의 군인들이 죽어갔고, 공산주의와 자본경제주의가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었다. 이런 양가적인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미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은 공허함을 느꼈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갈망했다.
그때 골든게이트 공원에 무슨 대단한 콘서트나 연설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모여든 사람들끼리 머리에 꽃을 꽂고, 온몸을 흐느적거리며 대마초에 취해 춤을 추고,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파티를 하고 친구가 되었다. 그들이 샌프란시스코의 Haight-Ashbury 동네에 모여 히피문화를 형성해 갔다.
1967년을 경험했던 세대가 이제 70-80 나이대의 사람들이다. 전쟁과 풍요 속에 혼란스럽던 그들에게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 필요했고 그 열망을 꽃피워 준 곳이 샌프란시스코였다. 어느 틀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의 공간이었다.
요즘 아이들에게 자유란 무엇일까. 나날이 극심해지는 경쟁, 외로움과 불안감이 익숙해져 가는 아이들에게 주체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면 꼰대 소리를 들을까? 자신의 일상에서 벗어나 내가 낯설어지는 경험, 소박한 일탈을 꿈꿔 볼 때, 아이들의 마음속에도 단단한 힘이 생기지 않을까?
오늘 아침, 유권이는 셰익스피어 연극반에서 3주짜리 여름 캠프를 시작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무대에 올린다는데, 어떤 역할을 맡을지 궁금해진다. 어떤 역할이던, 유권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셰익스피어 시대의 인물을 재현하는 일, 아이가 자유를 경험하는 방법이 아닐까?
자유롭게 살아야 인생의 주인으로 남는다. 그래서 아직도 자유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