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호기심과 열정 사이

갈대 같은 내 마음

by 최현숙

정리해고가 된 지 거의 5개월이 지났다. 한국에서 놀고 와서 다시 내 일상에 돌아오니, 또 비슷한 고민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무얼 먹고살아야 하나? 지난 20년 미국 테크기업에서 현지화와 제품 개발 분야에서 프로그램 매니저 (Program Manager. PGM)와 프로덕트 매니저 (Product Manager, PM)로 일을 배우고 성장했다. 중간에 3년 정도 매니저역할을 했었는데, 팀원들의 실적을 평가하며 월급을 책임져 주는 매니저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수평적인 협업을 통해 일의 결과를 맺어가는 일이 더 맞는다는 걸 깨달았다.


현지화 분야는 상대적으로 일의 강도가 낮은 편이었다. 개발팀을 위해 현지화 팀의 얼굴 역할을 하지만, 협업을 수시로 해야 할 필요도 없고, 개발팀에게 필요한 현지화 서비스를 제공하면 된다. 번역, 테스팅, 릴리즈를 담당해 주는 벤더업체와 일의 밀도가 훨씬 높고, 예산과 리스크 및 품질 관리를 감당하는 선에서 일이 이루어졌다.


개발팀으로 옮겼을 때 지적인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새로 영어를 배우는 느낌이었다. 단어들도 생소해서 쉽게 이해도 가지도 않았고,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그러면서 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운 좋게 다양한 제품을 경험했으나 막판 3년은 특히나 더 괴로웠다. 제품의 인지도가 커지면서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고, 테크니컬한 경험이 없는 내게 플랫폼 제품은 한계가 있었다. 내게 코딩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프트웨어 제품인 만큼 기술적인 토론과 결정에 리더십을 발휘하는 게 중요했다.


지난 5개월 PM으로서 몇 번 면접을 보았는데, 역시 쉽지 않았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체한 듯 마음이 불편해지곤 했다. 지난 3년 제품을 하면서 느꼈던 고통스러운 경험이 다시 올라오고, 새로운 회사를 가도 상황이 비슷하면 어쩌나 겁부터 덜컹 났다.


그런데도 신기한 것은 PM일 자체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은 여전하다는 점이다. 고객과 회사 입장에서 제품을 기획하고 출시하고, 고객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제품의 방향을 설정하며 개발팀을 이끌어가는 일. 고객 및 이해 관계자들을 늘 상대하고, 그들의 요구와 고충을 잘 파악해야 하고, 리더들과의 소통도 잘해야 한다. PM일은 어찌 보면 교향악단의 지휘자, 영화감독, 연극연출과 같은 일이다. 내가 직접 코딩, 디자인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개발팀원들과 원활하게 소통하면서 고객들과 회사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제품을 잘 이끌어 가야 한다. 매니저가 아니어도 제품에 대한 결정을 책임지는 자리, 회사와 고객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이 커서 매력적이다. PM 관련된 교육 및 취업 정보를 계속 찾고, AI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읽고 배우는 게 요즘 나의 일상이 되었다.


그러나, PM으로 다시 취직이 된다 해도 과거의 경험을 번복하지 않으리라는 자신감은 없다. 트라우마라고 표현하기에 과하지만, 그 지점 어딘가에 맺힌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한 회사와 인터뷰를 앞두고 있는데, 리쿠르터는 내게 준비를 잘해야 한다며 모범 질문과 준비 방법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준비를 하자니, 지난 3년을 또 되돌아봐야 하는데, 예전의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다시 올라온다. 영락없이 우울해지던 일요일 저녁, 프레젠테이션 스트레스, 준비된 데이터가 없어 쩔쩔매던 기억, 공감보다는 이상을 강요했던 매니저, 내 마음을 후벼 팠던 기억들, 다시 마주하기 벅차다.


AI에 툴에 물어보니, 내 마음 상태를 기특하게 잘 공감해 주면서도 회사를 옮기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했다. 동시에, 과거에 했던 PM일의 과정과 결과가 훌륭했다며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의미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내가 만든 프래임안으로 내 생각이 침몰할 때, 내 갇힌 세계를 빠르게 구원해 주었다.


다시 PM이 되어서 마지막 내 커리어를 불태우고 싶다는 욕망, 이 나이에 하면서 더 쉽게 설렁설렁 가고 싶은 욕망. 이 두 욕망들이 겹쳐서 내가 진짜 뭘 원하는지 정리가 되지 않는다. 과거에는 뭔가 궁금해지면 바로 행동을 취하곤 했다. 앞뒤 안 가리고 손을 버쩍 들고, 어떻게 되겠지 하며 내 눈앞에 있는 기회를 덥석 잡곤 했었다. 50대의 나는 훨씬 더 겁이 많다. 과거에는 호기심과 열망에 사로잡혀, 큰 결정을 내리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미국에 오는 것도 그랬고, 통번역 공부를 할 때도 그랬고, 결혼이나 이혼과 같은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할 때도, 뭔가 밀려오는 힘에 의해 결정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나이가 들면서 결정에 심사숙고해진다는 게 이런 건가 싶다. PM일에 대한 호기심은 여전히 크지만, 그 일이 내 건강과 일상에 미칠 영향에 겁이 난다. 지금 준비하는 인터뷰, 실패하더라도 최선은 다해야 하는데 인터뷰 연습에 박차를 가하지 못하고 자꾸 딴짓을 한다. 내가 진짜 원하는 일이었다면 밤을 패서라도 해야 하는 게 맞지 않나. 또 단순한 지적 호기심인가? 못다 한 일에 대한 미련과 후회인가? 내 순수한 열정은 아닌 건가?


지난 5개월, 은퇴를 하면 삶이 이렇게 달콤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닦달하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지지와 응원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내 삶에 꽈 차 있다. 그림, 글, 노래, 피아노, 잘 못하던 취미 생활도 잔뜩 해 보았다. 커리어와 경제적인 부분만 빼면, 환상적인 5개월이었다.


그러나 아직 은퇴를 할 수는 없다. 어린 아들이 대학에 갈 때까지는 일을 해야 한다. 호기심과 열정 따져가며 계속 꿈을 좇아야 하는지, 적당히 월급 받는 생활인 모드로 가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AI는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스트레스가 적은 일을 하면서 다시 자신감을 찾고 내가 진짜 뭘 좋아하는지 찾아보라고 한다. 역시 똘똘한 AI 녀석, 또 허를 찌르는구먼.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의 영어 일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