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나들이
8월 첫째 주 토요일, 오늘은 무얼 할까 아들아이와 고민하다가 샌프란시스코 도심을 걸어보기로 했다. 유권이는 아시아인들이 북적이는 재팬타운에, 나는 히피 문화의 성지인 Haight-Ashbury 동네에 가보고 싶었다. 그럼, 재팬타운에서 주차하고 놀다가, The Haight으로 걸어가면 되겠구나!
요즘 유권이와 나는 걷는 재미에 푹 빠져 있는터라 재팬타운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주차를 했다. 걸어서 재팬 타운 안에 들어오니 웬걸,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마이크 소리, 하늘에 각양각색 풍선, 물건이나 음식을 파는 벤더들이 길 양쪽에 있고, 마린 카운티에서는 볼 수 없는 까만 머리의 사람들이 즐비하다. 유권이는 유독 '까만 머리의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그러고 보니, 진짜 동양인들이 많다. 마린카운티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 유권이가 행복해 보여서 나도 덩달아 좋았다.
재팬타운에서 1년에 한 번 개최하는 Nihonmachi 축제라고 했다. Nihonmachi가 무슨 말인가 했더니, 재팬 타운! 계획도 하지 않았는데, 이런 축제를 경험하다니 마치 행운이 속삭이는 것 같다.
재팬타운은 볼거리, 먹을거리가 많아서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자주 들르는 곳이다. 수시, 우동, 라면, 돈가스 등등 다양한 일본 음식점들이 있고, 일본 책, 잡지, 문구용품 등을 파는 Kinokuniya 서점도, 일본식 마차 음료, 빵, 디저트를 파는 Anderson Bakery도 있고, 오락실을 연상시키는 놀이공간도 있고, K-beauty 상점도, 드문 드문 한국 식당도 보인다.
유권이는 엄마가 돈 쓰는 걸 늘 염려하는 친구여서 음식 메뉴를 아주 꼼꼼히 본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일본식 우동과 돈가스 카레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둘이 음료수도 없이 음식만 먹고 계산하니, 봉사료와 세금까지 $52불, 한국 돈으로 거의 7만 원 꼴. 한국에서 먹었으면 2만 원이면 떡을 쳤을 음식이지만, 어쩐지 우리 동네 일본 음식점들보다 더 저렴한 느낌이다. 마차라테를 마시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돌아와서 마시자 하며, The Haight으로 향했다.
재팬타운에서 나와 Filmore 거리로 좌회전을 해서 걸어 나오는데, 가다 보니 영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갑자기 거리에 휴지들이 날아다니고, 웃통을 벗은 아이가 아파트 2층에서 사람들을 노려보고, 정신줄 놓은 아저씨들이 듬성듬성 보인다. 몇 골목만 지나도 동네가 확확 변하는 미국 동네들. 저소득층 아파트가 많은 동네를 지나쳤기 때문이다.
Folsom 거리로 우회전하니, 동네가 확 열린다. 샌프란시스코를 상징하는, 화려하고 세로로 긴 빅토리안 스타일의 집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지도에는 공원을 통과해서 걸어야 한다고 했는데, 바로 Alamo Park가 보였다.
약간 경사진 계단을 오르니 아담한 동산에 커다란 나무들 사이로 음료트럭에서 커피를 사려고 줄지어 있는 사람들, 삼삼오오 잔디밭에 앉아 피크닉을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도심 한복판에서 푸르른 나무와 신선한 공기을 만끽하고, 샌프란시스코 도심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공원이었다. 도시의 편리함과 자연의 여유로움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다니,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역시 복 받은 사람들이다.
공원을 지나 몇 블락을 걸어 Ashbury 거리에 도착했다. 이 동네 에너지도 심상치 않다. 여기도 역시, 축제 분위기! 1967년 Summer of Love를 방불케 할 정도로 히피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알고 보니, 이번 주말에 Grateful Dead 밴드 창립 6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 골드게이트 파크에서 열려 그해 여름처럼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했다. Grateful Dead 밴드는 히피 문화의 또 다른 상징이라고 할 정도로 영향력이 대단했다.
특히, Jerry Garcia라는 리드 싱어는 히피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과격한 추동자들의 선 넘는 행동들이 당시에 사회적인 문제가 되기도 했다.
온 거리가 축제 분위기였다. 그 해 여름을 재현한 건지, 아니면 여전히 히피인지 잘 구분이 안 되는 사람들이 머리에 두건을 걸고, 형형색색의 Tie Dye 셔츠를 입고, 춤을 춘다. 요동치는 에너지에 나는 신나 하고 유권이는 금세 지쳐했다.
운 좋게 또 공원이 나왔다. Buena Vista 공원! 등산을 해도 될 정도로 높고 덩치가 제법 큰 공원이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금문교가 보였다.
사방으로 쫙쫙 뻗은 거리들, 다닥다닥 붙은 집들, 다운타운의 높은 건물들, 샌프란시스코 베이가 보이고, 주변을 둘러싼 나무들이 보인다. 걸어 내려오는데, 어떤 아저씨가 한숨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다. 바로 곁에 4마리 개들이 아저씨를 지키고 있었다. 아무래도 홈리스 같았는데, 아저씨를 떠나지 않는 개들이 신기했다.
공원을 나와 다시 그 축제의 에너지 속으로 돌진하려 했더니, 유권이가 내 팔을 잡았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힘들다고 했고 바로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말해주는 유권이가 고마왔다.
Ashbury 거리에서 내려오는데 또 공원이 보인다. The Pan Handle공원! 골든게이트 공원과 연결된 곳으로 마치 프라이팬 손잡이처럼 옆으로 길쭉하게 뻗은 모양을 따서 이름을 Pan Handle로 지었다. 재미있는 발상이다. 여유 있게 피크닉을 하는 젊은 가족들이 보인다. 그해 여름, 사랑과 평화의 함성이 무안해질 정도로 부와 여유가 느껴졌다.
평지로 된 이 공원을 가로질러 1시간 정도를 걸어서 다시 재팬타운에 도착했다. 많이 걸어서 피곤했지만 뿌듯했다. Anderson Bakery에 들려 아이스 마차라테, 단팥빵, 마차 소보로 빵을 시켰다. 유권이는 건강과 칼로리를 어찌나 절도 있게 챙기는지, 빵 한두 입 먹더니 그만이다. 나만 무지 먹고, Filmore에 있는 우리 식품에서 간단해서 한국장을 봤다.
아무 생각 없이 집을 떠났는데, 하루에 샌프란시스코에서 2개의 축제와 3개의 공원을 경험했다. 찢어지게 운 좋은 날이다. 돌아오는 길에 Divisadero 거리를 운전하며 금문교로 향하는데, 에메랄드 빛 바다에 떠 있는 하얀색의 자그마한 세일보트가 눈에 들어왔다. 인생이 또 신비로워지는 순간! I love San Francis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