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떡은 다 커 보이는 법
아이 둘 챙기랴, 남편 챙기랴 늘 일상이 분주한 친구는 내게 아이를 절반만 봐서 부럽다고 한다. 아들내미가 아빠집, 엄마집을 왔다 갔다 생활을 하니, 나는 유권이가 없는 시간은 완벽한 싱글로 돌아온다. 그 시간만큼은 부양할 가족도 없고, 집안일이 쌓여 있지도 않다. 단출한 나의 일상. 친구를 만나기도, 도서관에 가기도 하고, 운동도 하고, 드라마도 상의하지 않고 내 맘대로 본다. 그러나, 집에 오롯이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게 행복하기도 하지만 또 가끔은 처절하게 외로워진다. 스며오는 외로움은 혼자라는 자유에 대한 대가라며 위로한다.
나는 식구들과 북적북적 살아가는 친구들이 부럽다. 혼자 있고 싶다고 외치는 그녀들의 함성, 이해는 가지만 외로움까지 부러워할까? 게다가, 가족들과 부대끼며 살아본 아이들, 성격이 더 유하지 않을까? 그래야 나중에 사회생활을 더 잘하지 않을까? 혼자 크는 아들놈이, 게다가 집이 두 개인 녀석이 애처로울 때도 있다.
요즘, 사람들에게 얼굴이 폈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5개월 동안 일 안 하고, 먹고, 놀고, 내가 원하는 시간에 하고 싶은 일을 하니 삶에 대한 만족감이 큰 것은 당연하다. 일하는 친구들은, 돈은 버는데 편하게 놀고 여유 부릴 시간이 없고, 노는 친구들은 시간은 많은데 돈이 궁하다. 나도 일을 시작하게 되면, 시간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지겠지.
얼마 전에 50일 동안 RV로 미국과 캐나다 서부의 대자연을 여행하다 돌아온 친구는, 집에 오니 눈물이 날 정도로 감격스러웠다고 했다. 집의 소중함, 가족들과 안전하게 여행을 끝냈다는 안도감, 일상에 대한 정겨움 같은 감정들. 여행의 소중함과 묘미를 누구보다 잘 아는 친구이지만, 또 돌아갈 집과 일상을 그리워했나 보다.
일상에 치인 많은 이들이 여행을 꿈꾸고 일상에서 탈출을 꿈꾼다. 가장 달콤한 순간은 여행 자체보다도 여행에서 돌아온 나 자신이다. 내 일상을 제삼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상태. 그래서 일상에 매몰되면 여행을 찾고, 여행을 하다가도 일상과 집을 그리워한다.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들이 부부관계가 좋은 사람들이다. 티격태격해도 서로에 대한 믿음이 굳건하고, 서로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부부들을 보면 전생에 나라를 구한 사람들인가 싶다. 나는 다시 누구를 만나도 그런 찐 부부관계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부부가 건강하게 살려면, 한쪽에서 져주지 않는 이상, 밀고 당기는 교섭이 늘 필요한데, 난 그냥 따라 주거나 침묵하는 게 편하고, 서로 맞춰서 사는 게 부담이다. 잘 맞추고 사는 사람들, 그래서 저녁이 외롭지 않은 사람들이 부럽다.
물론, 결혼생활이 고된 사람들에게는 내 삶이 부러울 수도 있다. 희망이 없는 결혼 생활을 박차고 나왔고, 끊임없는 교섭과 설득 없이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들을 혼자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는 돈은 많은데 부부사이가 안 좋고, 누구는 부부사이는 좋은데 주변에 친구가 없고, 누구는 시간은 많은데 돈이 궁하고, 누구는 돈은 많은데 시간이 없고, 누구는 돈은 없는데 자식이 잘 나가고, 누구는 돈은 많은데 자식이 엉망이고...
그러니 완벽한 삶이 없다. 남의 떡은 다 커 보이고 문득 내 삶이 초라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저 내 삶의 중심만 잡고 살면 된다. 오랜 인류의 역사와 거대한 우주 속에서, 내가 살아가는 공간과 시간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한 점에 불과하다. 비교하지 말라는 말을 들으면 바로 비교하게 된다. 비교해도 괜찮다. 그래야 차이를 느끼고 나만의 것이 구체화된다. 세상에서 나와 똑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유일하게 살아가는 나, 그 자체로 만족해도 된다.
지난여름, 친구들과 스벅에서 수다를 떨며, 누구의 인생이던 그 총량은 다 똑같다는 인생 총량의 법칙에 대해 이야기했다. 누구의 인생이던 더하기 빼기 하면 다 거기서 거기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서로의 인생을 위로했다. 다들 열심히 살아왔다고. 그러니 비교를 해도, 나로서 온전히 만족스러우면 된다. 오늘 하루하루 즐겁게 살면 그만.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장담을 하는가?
오늘 아침 지인에게 이멜이 왔다. 건강하던 남동생이 갑자기 죽었고 동생이 없는 삶을 어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사랑하는 동생이 아무런 예고 없이 하늘나라에 간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러니, 오늘 당장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잘하자. 사랑한다고, 응원한다고 말해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