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에서 김환기 화백의 작품을 만나다
노동절 공휴일이 월요일에 있는 터라 지난 주말은 3일을 쉬었다. 노동절 아침, 유권이에게 무엇을 할까 물었더니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박물관에 가자고 했다. 그러면서 시내에 나가면 비용이 클 텐데 괜찮냐고 물었다. 자린고비 정신을 어디에서 배웠는지 유권이는 엄마가 돈 쓰는 것에 꽤나 민감한 편이다.
유권이가 어렸을 때는 집 밖으로 나가는 게 큰 일이었다. 징징거리는 아이를 데리고 아슬아슬하게 박물관을 다니던 게 엊그제 같다. 그랬던 유권이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MOMA (The Museum of Modern Art)에 가자고 하니, 싫다는 애를 끌고 박물관에 다녔던 세월들이 고맙게 느껴진다.
음식에 진심인 유권이는 다운타운에 있는 타이 퓨전 식당에 가자고 했다. 코비드 이후에 거리가 한산할 줄 알았는데, 거리에 주차할 자리가 없다. 북적이지는 않았지만, 삼삼오오 관광객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다운타운 내 공용주차장은 가격이 말도 안 되게 비싸서, 근처 주거지역에 주차를 하고 15분 정도 걸어서 식당에 도착했다. Very Thai Hed라는 식당, 다운타운 구석, 작은 골목에 위치한 식당은 태국 분위기를 모티브로 하면서도 모던하고 힙한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다. 유권이는 치킨 세트메뉴, 나는 야채세트 메뉴를 시켰다. 유권이가 내내 감동하며 청소기처럼 음식을 흡입했다. 태국음식인데 달지 않아서 좋고, 양도 적당하고, 분위기도 좋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차로 다시 돌아가는데, 차이나 타운이 보였다. 20여 년 전에 처음 방문했을 때 신기해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도심의 한가운데 이렇게나 큰 차이나 타운이 있다니. 그곳에, 이번에는 유권이와 함께 걸었다. 관광용품을 파는 가게, 중국 식당, 향료와 차를 파는 가게들을 지났다. 분위기가 칙칙하고 20년 전과 별반 다른 게 없어 보였다. 이곳에 코리아 타운이 있다면 어땠을까? 엘에이에 있는 코리아 타운도 칙칙했던 기억이 난다. 1년이 다르게 확확 변하는 서울의 거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이곳은 변화의 속도가 느리다.
가장 인기가 있는 곳은 행운의 쿠키를 만드는 공장이었다. 작은 골목에 위치한 이 공장은 차이나 타운의 명소가 되어 골목 전체가 줄 서 있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몇몇 베이커리 가게들에도 뱀꼬리 같은 긴 줄이 보였다. 한산해 보였던 차이나 타운, 조금 들여다보니 흥미로운 상점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기다릴 시간이 없어 돌아 서는데, 유권이는 이 소박한 차이나타운을 아쉬워했다. 동양사람들이 많아서일까? 까만 머리 사람들이 많다는 말을 또 한다.
다운타운에서 나와서 MOMA가 있는 SoMA (South of Market) 지역으로 들어오니, 거리를 넘나들던 그 많던 홈리스들이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췄다. 어디로 보낸 걸까? 유권이는 이런 상황이 슬프다고 했지만 말끔하게 정리된 거리가 나쁘지 않았다. 작년에 연방법원에서 쉘터가 없어도 홈리스를 추방할 수 있다는 판결이 나온 이후, 시 당국은 홈리스들을 다른 도시나 감옥으로 보낼 수 있는 명분을 얻었다. 홈리스로 득실거리던 SoMA지역은 물청소라도 한 것처럼 깨끗해 보였다. 인도적인 차원으로 보자면 천인공로할 일이지만, 법과 도시 경제 차원에서는 납득할 만한 처사였다.
거리가 안전하다는 걸 확인하자 멀찌감치 주차를 했다. MOMA 근처의 공용 주차장에 주차를 했으면 30분에 4불! 3시간 놀자고 24불을 주차비에 할애하기는 억울했는데, 훨씬 더 싼 가격에 거리 주차를 찾다니 오늘은 주차 운이 나쁘지 않다. 10여분을 걸으니 MOMA가 보인다.
먼저, 상설 갤러리를 둘러보기로 했다. 멕시코의 대표 화가 Diego Rivera와 Frida Rivera, 미국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Mark Rothko과 Jackson Pollak, 미국 팝아트의 시작점인 Roy Lichtenstein과 Any Warhol의 작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작품 하나하나 사진을 찍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랑데부를 경험하듯 겹쳐지는 이미지들이 섬광처럼 떠올랐다. 핸드폰 속 사진을 찾아보니 2022년 4월에 거의 똑같은 작품들이 그대로 찍혀 있다. 기억이 나를 이 작품으로 이끌었을까? 나의 온전한 취향일까?
그림에 대한 황홀경에서 빠져나오니 갑자기 피곤해졌다. 눈이 빠질 것 같고, 다리에 쥐가 날 것 같다. 에너지를 조금 회복하고 나서, 남은 갤러리를 설렁설렁 돌아보는데, 추상미술 갤러리에서 유일하게 걸린 한국인 예술가의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김환기 화백의 작품이었다. 뉴욕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그는 지독한 향수병에 시달렸고, 그 마음을 달래면서 푸른색의 점들로 가득한 새로운 작품 세계가 열렸다고 했다. 그의 작품 설명에는 그의 예술 세계에서 고향이 어떤 의미를 차지하는지 서사해주고 있다. "I can't seem to separate my art from Seoul.. Simple composition, the sutle colour of blue-- only I can create my world." 시적인 정서가 가득한 그의 글귀에 슬픔이 촉촉이 젖어 있다.
1913년에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동경과 파리에서 유학을 하고 홍익대 미대 학과장을 역임한 후, 다시 뉴욕에서 작품 활동을 하며 그의 예술세계는 큰 전기를 맞이한다. 그 당시에 예술가라면 누구나 동경할만한 세계적인 도시들에서 유학하며, 피카소나 큐비즘 같은 서양의 추상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그러면서도 그의 작품에는 한국적인 정서가 물씬 풍긴다. 서울에 대한 그리움, 항아리 같은 전통 소재에 대한 존경심과 자부심, 우주와 하늘, 별과 달에 대한 추상적인 묘사가 뭉클한 감동을 자아낸다.
또한, 김광섭의 "저녁에"라는 시가 김환기에게 큰 예술적 영감을 주었다는 점이 흥미로왔다. 예전에 어떤 가수가 불렀던 이 노래의 멜로디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데, 가사에 이런 깊은 뜻과 사연이 있었다니.
<저녁에>
김광섭 (1905~1977)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으로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그의 동지애적인 사랑의 서사 또한 획기적인데, 첫 번째 아내와 결별하고 작가 이상의 전처인 변동림과 결혼한다. 그녀 역시, 문학과 그림을 넘나드는 예술가였고, 김환기가 파리에서 유학을 할 때, 그의 생계를 돕고 전시회를 지원하는 후원자 역할을 한다. 김환기가 돌아가신 후에 그녀는 환기재단을 만들고 후세에 그의 작품을 알리는 일에 매진한다. 1913년 일본 강점기에 태어나 1974년에 생을 마칠 때까지 예술가로서의 그의 인생은 영화처럼 극적이다.
금문교를 건너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의 언덕을 내려오니 또 바다가 눈에 보인다. 부족함 없이 꽉 차 있는 것 같은 내 마음도 보인다. 시대를 초월하는 예술의 힘이구나. 서울 부암동에 환기 미술관이 있다고 하니, 다음에 꼭 가봐야지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