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할로윈 데이
2025년은 내 기억에 특별한 해로 남을 것 같다. 2월 말 17년을 몸담은 회사에서 정리해고라는 태풍을 맞고 그 태풍이 쓸고 간 자리를 새로운 경험들로 채워갔다. 나를 찾아가는 시간이었다 정의하면 너무 거창하게 들리려나.
3월부터 7월까지 어디에 묶이지 않고 그야말로 자연인 백수로 살았다. 건강해지기로 했고 요가와 걷기 운동을 꾸준히 했다. 한동안 묵혀있던 이력서도 업데이트하고, 아크릴로 인상주의 그림을 흉내내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는 모임에도 나가 보기도 했다. 속박과 구속이 없는 상태, 나도 모르게 행복하다는 소리를 달고 다녔다.
그렇게 여름이 지나고 운 좋게도 8월부터는 일을 시작했다. 친구에게서 현지화 관련 비정규직 자리에 대한 소개를 받고, 순조롭게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정직원보다는 덜 까다롭게 사람을 뽑는지라, 거의 1주일 만에 채용 결정이 났다. 미국에서 처음 했던 일이 현지화 관련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일인데, 부담 없이 일하면서 다음 기회를 모색하기에는 안성맞춤인 자리였다.
이 일은 해야 할 일이 정확해서 스트레스가 적은 점이 맘에 든다. 처음에는 아침에 일어나서 유권이와 여유 있는 아침을 보낼 수 있는 게 신기하게 느껴졌다. 새벽 6시에는 일어나 유럽팀들하고 눈을 비비며 미팅으로 아침을 시작하던 때가, 오히려 비인간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아침 9시 정도 일을 시작하고 5시 정도에 컴퓨터를 닫고 나면 또다시 완벽한 자유인으로 돌아온다. 일과 개인의 삶, 그 사이의 경계가 선명해서 일을 끝내도 에너지가 남았다. 예전에는 일이 끝나면 소파에 누워서 기진맥진해진 몸을 달래느라 1-2시간은 맥없이 누워있기도 했다.
문제는 비정규직이라는 불확실성. 회사와 팀의 예산이 언제든 삭감될 수 있고, 계약 종료는 언제든 이루어질 수 있지만, 예고도 없이 찾아와 준 고마운 일이다. 2025년, 내 마음과 몸을 돌볼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어디에선가 우울감이 있는 사람들은 계절의 변화에 둔감하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행복감이 높아서인지, 요즘은 계절과 날씨의 변화에 민감하다. 아무 생각 없이 집을 나섰다가 후다닥 쏟아지는 비에 젖어 집에 돌아오는 일은 없어졌다.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지나간다. 이곳 가을의 한복판에는 할로윈데이가 있다. 올해는 K-pop 아이돌 복장이 등장하고, K-pop Demon Hunter의 캐릭터들이 간간이 보인다. 올해는 유권이가 아빠랑 있는 터에 혼자 할로윈을 보냈다. 일을 끝내고 집에서 쉬고 있는데, 동네가 시끌벅적했다. 친하게 지내는 이웃이 우리 집 차고에 프로젝터를 설치하고 아이들에게 사탕과 초콜릿을 나눠주었다. 나도 덩달아 와인 한잔을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Happy Halloween이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동안 모르고 지내던 동네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유권이를 데리고 사탕을 받기 위해 동네를 걸어 다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한 곳에 정착해서 지나가는 사람을 맞이해 주는 할로윈, 어른들에게도 커뮤니티가 더 가까워지는 계기였구나.
할로윈이 지나면 땡스기빙이 11월 말에 오고, 그리고 나면 연말분위기다. 바로 크리스마스 연휴로 한 해가 막 달려간다. 오늘은 서머타임이 끝나는 날이다. 캘리포니아의 가을 햇살이 눈부신 날이다.
계절이 가고 시간은 흐르고, 내 삶도 유권이의 삶도 흘러간다. 새로운 변화들이 주섬주섬 나타날 것이고 그 변화들에 귀 기울이며 살아낼 것이다. 그렇게 2025년의 10월이 가고 11월이 시작되었다. 11월은 또 어떤 이야기들로 채워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