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 제게는 시련이 아니라
축복입니다.

by 바다처럼살기

2025년 9월 13일 토요일.


2 개월에 한 번씩 정기 진료를 받는 날이어서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저는 2년 2개월째 공황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었는데요,

의사선생님이 드디어 약물치료 종료를 해 보자고 하셨습니다.


공황이나 우울증은 완치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증상이 많이 개선되면 치료를 종료하는 것입니다.

의사선생님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여분의 약은 가지고 있으라고 처방전을 주셨습니다.


가슴 쫙 펴고 자신만만하게

계단 대신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엘리베이터 타는 데 무슨 자신만만씩이냐고요?^^

저는 엘리베이터도, 기차, 버스, 지하철 그리고 비행기도 못 탔습니다.

혈압도 못 쟀고

치과치료도 못 받았고

화장실 문도 못 닫았습니다.


지금은 조금 용기를 내야 하는 순간도 있지만 대부분의 일상생활을 잘 하고 있습니다.

비행기는 아직 '위급 시에 먹는 항불안제'를 먹어야만 탈 수 있습니다.


약사님에게

병원 진료 잘 받아서 우쭐한 아기처럼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이 약이요,

먹는 약 아니에요.

보관용이에요.

저 공황 치료 종료 받았어요.


다정한 약사님이

손뼉까지 치시면서

"어머나 너무 잘 되었어요. 진짜 고생하셨어요. 그렇게 먼 곳에서 꼬박꼬박 오시고"

"아쉽지만, 다시 안 만나야겠지요?"



기분 좋은 아쉬운 인사를 나누고 약국을 나오면서,

처음 약국을 방문했던 그 시간이 떠올랐어요.


간신히 말을 하고

약물에 대한 주의 사항을 겨우 이해하고

결제한 카드와 우산을 떨어뜨리고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어요.

마치 꿈 속에 살고 있는 것처럼 감각이 둔했지요.


1주일 후 진료받고 처방전 들고 갔더니

잘 챙겨놨다가 주시더라고요.


참 아슬아슬하게도 살던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들이 창피했다면 이렇게 글을 쓰지 않겠지요^^

그 시간들이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져서 글을 씁니다.


드라마 "정신 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 나왔던 공황 환자들처럼

턱까지 찬 물속에서 아차 실수로 넘어지지 않기 위해 간신히 아슬아슬하게 한 걸음씩 옮기던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 제 일상이 얼마나 환하고 빛나는 순간들인지 깨달을 수 있었거든요.


약기운이 빠지면 제 몸은 다시 적응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겠지요.

수면에 어려움도 있을 것이고

딱지 떨어진 새 살처럼 작은 자극에도 아리고 쓰릴 거예요.


제 몸과 마음을 잘 돌봐야만 하는 기회가 다시 왔군요.


세상은 시련처럼 보이는 축복을 이렇게 던져 주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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