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풀 May 22. 2020

네모난 호수


며칠 전 세차게 퍼붓던 비가 그치고 해가 쨍하더니 갑자기 초록세상이 펼쳐졌다. 빗살을 통과한 느티나무 이파리들이 싱그럽게 하늘거렸다. 마치 녹색 광선이 점멸하는 듯했다. 그날 저녁 마당 가득 묘한 기운이 감돌았다. 


다음날부터 해가 길어지고 초록은 한껏 물이 올랐다. 달력을 확인해보니 여름 기운이 들기 시작한다는 절기, 소만(小滿)이었다. 입하(立夏)와 망종(芒種) 사이에 들며, 만물이 점차 생장(生長)하여 가득 찬다고 하는 절기.


그래서였구나.



초저녁이면 마당의 텃밭을 돌보고 풀을 뽑는다. 한 번 뽑고 돌아서면 어느새 다시 속곳속곳 솟아있는 풀들. 풀 한 포기 없던 모래땅이었다. 야생화를 부러 옮겨 심었더랬다. 몇 년 지나자 사방에서 날아온 풀씨가 마당 곳곳에서 손 쓸 틈도 없이 솟아났다.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거나 우주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모든 존재나 상태.’ 우리말 사전에서 자연(自然)을 이렇게 멋지게 뜻풀이해 놓았다. 


그렇지, 그래서 자연인 게지. 






초록 기운이 깊어지면 바다가 그리워지곤 했다. 바다 위로 해가 지는 풍경을 좋아한다. 갯벌을 볼 수 있는 서해 바다라면 더욱 좋다.  찰랑찰랑 물이 차오르는 질퍽한 뻘 틈새로 황금빛 물줄기가 흐르는 갯벌의 노을. 그 비슷한 풍경을 이 산골마을에서도 볼 수 있다. 딱 이맘때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모내기를 위해 물을 댄 논, 그 위로 노을이 진다. 석양을 담고 하늘과 나무와 달을 담아내는 네모진 호수다. 바지런한 농부의 발걸음이 선사해준 고마운 호수다. 어둠을 가득 채운 개구리울음소리는 덤으로 주어진 배경 음악.


첩첩산골이 호수를 품은 좀 더 근사한 곳으로 변신하는 저녁, 놓칠 수 없는 해거름 산책이 시작되는 때가 왔다.



트랙터의 우아한 스텝! 부평초, 일명 개구리 밥이 한가득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산에 나물 하러 갈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