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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풀 May 27. 2020

등교하는 아이를 보내고

오랜만에 등교하는 아이들을 보내고 돌아선다.

반짝거리는 아침이다. 오월의 햇살이 닿은 모든 것이 눈부시다.

얼마 만에 홀로 맞이하는 아침인가?

아이들 개학만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이 쓸쓸한 기분은 대체 뭔지.


"여러분 친구들하고는 1m 이상 거리를 유지하고, 급식시간에 먹다 남은 음식도 친구에게 나눠주면 안 돼요."

어제 나린이 담임선생님이 화상 수업을 하며 중대본과 교육청에서 내려온 지침을 아이들에게 일러주었다. 그동안 친구들이 남긴 급식 디저트는 모두 나린이 차지였는데 이제 그것도 못 먹게 되었구나.


"주말에 친구 집에 놀러 가면  돼요?"  **이 목소리다. 이 녀석, *이네 자주 놀러 가는 거 다 안다.  지난주에도 *이네 근처 개울가에서 물놀이했으면서... 전교생이 40명도 안 되는 시골 초등학교다. 마을 안에서 친구들과 늘 부딪치며 놀던 아이들에게 이 코로나 사태는 더욱 기이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로 여겨졌다. 불특정 다수가 모여 사는 도시가 아니어서 코로나에 대한 경각심이 덜했던 것도 사실이다. 다들 뉴스를 통해서만 심각성을 인지했다. 그런 아이들이었기에 학교에서 종일 마스크 쓰고 있을 모습을 생각하니 내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마스크 쓰고 가고 되도록이면 떨어져서 놀아요." 이 말을 전하는 선생님도, 받아들이는 아이들도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린이는 방학 동안 거의 집안에만 있었다. 햇빛을 보지 않아 얼굴이 창백해서 푸른곰팡이가 슬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열두 살 사춘기를 통과하는 중이었다. 오전 열 시가 넘어도 침대에 누워 일어나지 않았다. 개학하면 과연 제시간에 일어날 수 있을까 염려했는데, 오늘 일찍 일어나 평소에 거르던 아침밥까지 먹고 학교에 갔다. 어제까지만 해도 "학교 가기 싫은데 마스크까지 쓰고 가야 하다니." 했던 나린이었다.  "그러게 제때에 갔어야지. 이제 가기 싫어졌잖아.”   옆에 있던 동생 지오도 한마디 했다. 그랬던 아이들이 오늘은 상기된 얼굴로 일찍 집을 나섰다. 아이들은 잘 적응했다. 문제는 나였다. 아이들을 보내고 돌아서자 힘이 탁 풀렸다. 요 며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내 일상이 제일 엉망이었다. 아이들 핑계로 아침밥은 거르기 일쑤였다. 활동이 줄어든 아이들도 밥 달라고 조르지 않았다.  배고프다면 마지못해 밥상을 차렸고 아이들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오늘부터 5대 영양소가 고루 들어간 급식을 제 때에 먹을 수 있으니 다행이다. 이제 내 일상을 회복해야지.


아이들이 없는 아침. 마당으로 나가 텃밭의 풀을 뽑고 작물에 물을 주었다. 샤샤샥~ 오월의 바람이 스치고 가자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카시아 향이 실려왔다. 이 향긋한 냄새와 바람을 느낄 수 없는 아이들. 오랜만에 본 친구들과 살을 맞대고 놀 수 없는 아이들.  어쩌면 이건 어른들의 지나친 염려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을 잘하니까. 저 초록잎처럼 싱싱하고 반짝이니까.  그런데 왜 반짝이는 것들을 보면 울컥해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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