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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풀 May 09. 2020

드로잉 산책

오월의 숲으로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 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오월  / 피천득



나날이 달라지는 초록을 보기 위해 나는 날마다 숲으로 간다. 사월의 숲이 말랑하고 보드라운 세 살 아가 얼굴이었다면 오월의 숲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아침해가 뒷산 위로 얼굴을 내밀면 난 자전거를 타고 화양계곡 입구로 달려간다.속리산 국립공원 안에 흐르는 화양계곡. 조선 시대 성리학자였던 우암 송시열 선생이 절경을 자랑하는 아홉 개의 골짜기마다 이름을 붙여 화양구곡이라 명명하였다는 그 길.



오월의 숲은 모든 것이 전과 다르게 보인다. 숲이 마법을 부리는 달이다.

코끝에 감기는 풀꽃 향.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온도와 습도와 바람. 쇠물푸레나무 꽃이 흰쌀밥처럼 활짝 피었고, 단풍나무 작은 꽃은 고개를 떨구고 시들어간다. 명자나무 붉은 꽃과 황매화 나무 노란 꽃도 활짝 피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지금 이 시간, 가장 절정의 순간을 맞은 아이는 왕벚나무 꽃.



가만히 멈추어 식물의 시간을 가늠해본다. 고요한 듯하지만 숲은 온갖 소리로 가득 차 있다. 날마다 빠르게 변하는 봄의 숲.


보들보들 여린 봄 순 같던 우리 아이들, 너무 금방 커버려 하루하루 아까운데 지금 눈에 보이는 숲이 

아홉 살, 열한 살 꼭 두 딸의 모습 같다. 아이들은 그 모습을 잃어가지만 내년 봄엔 이 보드라운 숲을 다시 만날 수 있겠지.

되돌아오는 길. 해가 머리 위에 있다. 숲을 벗어나니 하늘은 뿌옇고 공기의 질감이 아까와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길을 걸으며 오월의 신록을 그림에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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