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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사라 Jun 02. 2021

언제든 기댈 언덕이 되어주는 한 사람이 있는가?

김주환 교수의 《회복 탄력성》에 미국 하와이에 카우아이라는 섬이 소개된다. 이 섬에서 에미 워너 교수가 1955년에 태어난 아이 700명 중, 가정환경이 가장 열악한 아이 201명을 30년 동안 집중적으로 추적한 연구를 했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201명 중 약 2/3는 사회적 부적응자로 바람직하지 않은 상태로 성장했다. 소년원 출입자도 많았고, 범죄자, 중독자도 많았다. 그런데 나머지 1/3에 해당하는 72명은 달랐다. 그들은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아주 건강했으며, 학업 성적도 중간 이상으로 장래가 촉망되는 정상적인 청년으로 자라났다.     


그들은 가정환경의 열악함과 아무 상관 없이 훌륭하게 성장한 것이다.     

이 72명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토록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이들은 어떻게 이웃한 불량 친구들과 달리 잘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 연구를 주도했던 에미 워너 교수는 이 학생들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했다. 

“이 72명의 공통점은 회복 탄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에미 워너 교수는 72명이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공통된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삶의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힘의 원동력이 되는 이 속성을 에미 워너는 ‘회복 탄력성’이라고 불렀다. 워너 교수가 40년에 걸친 연구를 정리하면서 발견한 회복  탄력성의 핵심적인 요인은 결국 인간관계였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꿋꿋이 성장해나가는 힘을 발휘한 아이들의 공통점이 발견되었다.


그것은 그 아이의 입장을 무조건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어른이 적어도 한 명은 있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엄마였든 아빠였든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이모이든 간에 그 아이를 가까이서 지켜봐 주고 조건없는 사랑을 베풀어서 언제든 기댈 언덕이 되어주었던 사람이 적어도 한 사람 있었다.    


톨스토이 말대로, ‘사람은 결국 사랑을 먹고 산다’라는 것이 카우아이섬 연구의 결론이다. 




사랑 없이 아이는 강한 인간이 되지 못한다. 사랑을 먹고 자라야 아이는 이 험한 세상을 헤쳐나갈 힘을 얻는 법이다. 이러한 사랑을 바탕으로 아이는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과 자아 존중심을 길러가며 나아가 타인을 배려하고 사랑하고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는 능력을 키우게 된다. 이것이 회복 탄력성의 근본임을 카우아이섬 연구는 알려준 것이다.     


어릴 적부터 함께 살았던 할머니는 내가 스무 살 되던 해 아빠가 돌아가신 후 분가를 하셨다. 광주를 떠나 고향 화순으로 혼자 독립을 하신 것이다.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독립이 청천 벽력같은 소식이었다. 20년이라는 긴 겨울 내가 얼어 죽지 않고, 어긋난 인생으로 추락하지 않을 수 있도록 내 인생을 지지해 주신 분이 할머니였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나에게 첫 번째 엄마였다. 


할머니는 아들만 둘을 낳아 기르며 혼자 살아오셨다. 딸이 없던 할머니는 첫 손녀였던 나를 딸처럼 여기며 무척이나 아껴주셨다. 장남의 첫 손녀였던 나는 할머니가 가장 특별한 애정을 쏟아주는 존재였다. 여동생보다, 남동생보다 할머니는 항상 내가 먼저였고, 나에게는 늘 특별대우를 해주셨다.     


일하는 엄마는 피곤하셔서 아침에도 출근 전까지 주무셔야 했다. 엄마를 대신해 할머니가 이른 아침 2개의 도시락과 따뜻한 아침 밥상을 준비해 주셨다. 이른 아침에는 입맛이 없다는 나를 위해 할머니는 매일 새 반찬을 만들어 주셨다. 새 반찬으로 밥상을 차려주셨던 할머니에게 길든 나는 지금도 새로운 반찬이 있어야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필요한 옷이나 신발을 살 때도 할머니와 함께 쇼핑하러 다녔다. 할머니는 쇼핑 중에도 사람들에게 ‘우리 손녀가 참 예쁘다.’ 라며 나의 프라이드를 한껏 높여 주셨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저녁 10시가 넘어가면 할머니는 항상 버스 정류장에 마중을 나오셨다.  손녀딸 무서울까 봐 버스 정류장에서 집까지 걸어가는 길이 10분 거리도 안 되는데 말이다. 1년이면 365일, 3년이면 1,095일이다. 천일이 넘는 시간 동안 할머니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손녀의 늦은 귀가를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셨다.     


비가 오는 날은 우산을 들고서, 눈이 오는 날은 두꺼운 외투를 들고서 할머니는 항상 그 자리에서 기다리다 버스에서 내리는 나를 함박웃음을 지으며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정류장에서 집까지 10분 남짓 거리를 할머니와 늘 팔짱을 끼고 함께 걸었다. 할머니의 따뜻한 온기가 나에게 전해졌던 그 시간이 지금도 뭉클해진다.     


딸이 없었던 할머니는 큰손녀인 나에게 특별한 사랑을 주셨다. 어디를 가든 할머니는 사람들을 만나면 우리 손녀딸이라고 자랑스러워하시며 나를 자랑해 주셨다. 20년의 긴 겨울 동안 어린 시절의 따뜻한 기억들은 모두 할머니가 주신 사랑의 온기였다.     


할머니의 88년은 모질고도 험악했다. 가슴에 묻어야 할 아픔과 슬픔이 켜켜이 쌓이는 슬픈 소풍이었다.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었고, 아들 둘과 남겨졌고, 연로한 시어머니를 오랫동안 봉양해야 했다. 큰아들은 인생이 너무 버거워 알코올중독이 되어 방황했다. 둘째 아들은 서울로 상경해 할머니는 일평생 외로우셨다.     





할머니는 딸에게 베풀어 주었을 따뜻함을 첫 손녀인 나에게 아낌없이 베풀어 주셨다. 따뜻한 모닥불이 되어 주신 할머니의 사랑으로 긴 겨울을 무사히 견뎌내었다. 나의 입장을 무조건 이해해주고 받아주며 지지해 주는 할머니가 내 인생에 있었다는 사실이 지금의 나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높은 회복 탄력성의 비밀이다.     


제대로 꽃피워보지도 못한 청춘들이 스스로 낙엽이 되는 슬픈 소식들이 종종 들려온다. 

무조건 이해해 주고 받아주며 지지해 주는 한 사람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는 모두 언제든 기댈 언덕이 되어 줄 한 사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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