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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사라 Jun 01. 2021

세상에 공짜는 없다

지금 걸려 넘어진 그 자리가 전환점이다

가족사진을 찍은 지 7년이 지나 사진을 한번 촬영해야겠다 생각했다. 그 무렵 아들이 응모했던 무료촬영쿠폰이 당첨되어 촬영을 예약했다. 19년 만에 풀메이크업을 했다. 웨딩드레스를 입어야 하는 난감함도 있었지만, 강아지들과 함께 즐겁게 촬영을 끝냈다. 촬영이 끝난 후 찍은 사진을 화면으로 보여준다고 하면서 액자로 만드는 비용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액자를 걸 공간이 없어서 필요 없다고 했더니 이벤트라서 원본 파일을 줄 수가 없다고 했다. 촬영은 무료지만 원본 파일은 비용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마냥 좋아했던 아들의 순수한 마음에 생채기가 나는 것 같아 미안했다. 제일 작은 소형 액자를 주문하고, 원본 파일을 50%에 구매하는 것으로 합의를 했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아들에게 한참 동안 이야기했다.

“아들아, 세상에 공짜는 없단다. 무엇이든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허탈한 결과를 얻는 거야.

비싼 수업료 냈다고 생각하고 앞으로는 공짜 좋아하지 마라.”    




모든 일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이것이 세상의 진리이고 자연의 법칙이다. 

그런데 뒤집어 생각해 보면 세상에는 공짜로 얻는 것도 없지만, 공짜로 잃은 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지우개로 지워버리고 싶은 경험들이 가끔 있다. 


“진심으로 그 일이 생기지 않았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누구나 남아 있다. 

그런 경험과 시간을 ‘잃은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나에게도 아버지와 살아온 20년이 ‘잃은 것’이었다. 


특히 고등학교 3년의 세월은 기억 속의 쓰레기통에서조차 지워버리고 싶을 만큼 아빠가 원망스럽고 한숨이 가득한 시간이었다. 그 시간만 되돌릴 수 있다면 내 인생은 정말 차원이 다른 인생이 되었으리라 생각했었다. 시간이 지나 내가 걸어온 시간은 과거가 되었다.     


글쓰기를 하면서 문득 깨달았다. 

내가 잃었다고 생각한 것들이 정말 공짜로 잃은 것인가?     




그동안 잃은 것으로 생각한 시간과 경험마저도 공짜로 잃은 것은 아니었다. 잃은 것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많이 성장하고, 더 깊게 성숙했기 때문이다. 잃은 것 덕분에 나는 독립적인 인간으로 좀 더 일찍 설 수 있었다. 누구에게도 내 인생을 의지하거나 탓하지 않고 오롯이 내 인생은 내가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야 함을 잃은 것을 통해 배웠다.     


잃은 것이 많아서 내 힘과 능력으로 인생을 헤쳐나가는 근력을 키울 수 있었다. 

잃은 것의 흔적이 있어서 잃은 것으로 아파하는 이들에게 더 깊은 공감이 가능했다. 

잃은 건강마저도 내 삶의 중요한 메시지를 깨닫게 해주는 최고의 선물이 되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공짜로 얻는 것은 없다.

공짜로 잃는 것도 없다. 




국내 2만여 명의 음저협 등록 회원 중 저작권료 수입 1위인 작사가에게 수여 한 KOMCA 대중 작사 부문 대상을 수상한 김이나 작사가는 그녀의 저서《김이나의 작사법》에서 10년간의 생존기를 공개했다. 그녀의 울림 있는 가사는 그녀의 ‘잃은 것’에서 탄생하였다. 그녀의 가정사를 살짝 들여다보았다.     


그녀가 아주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다. 엄마가 일본에서 사업을 하게 되면서 2년 동안 엄마와 떨어져 지낸 시간이 있었다. 몇 개월에 한 번씩 서울에 와서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낸 엄마가 출국하기 전날이면 잠든 그녀를 안고 소리내 울었다. 그녀는 잠들지 않은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눈물을 꾹 참아야했다.    

 

김포공항에서 일본으로 출국하는 비행기가 늦은 오후 떠나면 엄마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저녁 하늘을 마주해야 했다. 반복되는 엄마와의 생이별이 그녀의 무의식에 엄청난 영향을 남겼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는 저녁 하늘이 너무 싫었고 무서웠다. 그녀는 매일 저녁 하늘이 트라우마였다고 고백한다.     


그녀는 저녁하늘 포비아가 어릴 적 트라우마였다는 사실을 객관화했다. 자신이 서정적으로 느껴졌다. 그녀는 자신의 잃은 것을 통해 얻은 트라우마를 에일리의〈저녁하늘〉에 가사로 넣어 곡을 완성했다. 작곡가도 대중도 모두 좋아해 주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미국에서 새 가정을 꾸려 살고 있었다. 미국 유학 시절을 아빠의 새 가족과 지낼 정도로 아빠와 딸로서 사이가 좋았다. 그녀는 아빠 관점에서 딸에게 미안해하는 감정이 싫어 모른척 했다. 다른 딸들이 아빠에게 흔히 하는 말들을 많이 못 하며 살아왔다.     


옥주현의 앨범을 작업하게 되었던 2013년. 옥주현도 아버지를 일찍 여읜 사연이 있었다. 만약 아빠를 더는 볼 수 없게 된다면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이 뭘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당신 때문에 이렇게 잘 컸다’라는 한마디였다. 

옥주현의 노래 ‘아빠 베개’ 가 가장 고음으로 치닫는 부분에서 그 말이 가사로 등장한다. 


‘잘 있고, 잘 컸고, 사랑한다’ 

지금도 멀리 있는 아빠에게 작은 위안이 되기를 그녀는 바란다.     

김이나 작사가의 개인적인 결핍과 아픔은 그녀에게 잃은 것이다. 그녀의 잃은 것은 최고의 작사가로서 인정받는데 적절한 느낌과 감성을 실어주었다. 옥주현의 목소리가 최고의 고음으로 치닫는 가사에서 가슴이 뭉클해서 눈물이 쏟아진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빠에게도 내가 전하고 싶은 바로 그 한마디였기 때문이다. 

‘잘 있고, 잘 컸고, 사랑한다’     



 

“ 모든 불행은 아무리 못해도 훌륭한 교훈이 될 수 있다.

그것은 당신을 더 강하고 노련하게 만들어 준다.”

바딤 젤란드,《리얼리티 트랜서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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