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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사라 May 30. 2021

인생에는 자기만의 속도가 있지

지금 걸려 넘어진 그 자리가 전환점이다


치타가 순식간에 달려가는 거리를 달팽이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달팽이는 치타와 경쟁할 수 없다. 달팽이는 달팽이대로, 치타는 치타대로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생태계를 이루는 동물들을 살펴보면 성체로 거듭나는 시기가 모두 다르다.     


태어난 지 10일 만에 가장 빠른 독립을 하는 동물 누가 있다. 태어난 지 15년이 되어서야 느린 독립을 하는 코끼리가 있다. 각자 삶의 속도가 다르다. 독립하여 살아가는 방식도 다르다. 모든 자연의 생명체는 나름의 질서 속에서 자기 속도를 따라 살아간다.     




해마다 꽂잔디가 곳곳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3월이 되면 그리워지는 친구가 있다. 지구별 소풍을 일찍 마치고 하늘로 먼저 떠난 친구이다. 비슷한 시기에 대학원을 같이 다녔고, 비슷한 시기에 결혼해 아이 둘을 낳았다. 대화가 잘 통했던 친구는 서로 깊은 마음을 편하게 나눌 수 있었던 30대 시절 든든한 동지였다.  

   

둘째를 낳은 지 얼마 안 되어 친구가 다리가 계속 아프다고 했다.

계단을 오르내리는데 다리가 아파서 파스를 한 달째 붙인다고 했다. 

“다리가 아프면 빨리 병원을 가야지 왜 파스만 붙이고 있니? 빨리 병원을 가봐야지.”


나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느 날 병원이라고 다급하게 친구의 떨리는 목소리가 전화로 들려졌다. 다리가 너무 아파서 응급실에 실려 왔는데 골반과 엉덩이 쪽에 종양이 발견되었다고 했다. 수술해야 한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겨진 친구는 정밀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가 5,000명 중의 1명에게 발견되는 희귀암, 육종암*이라고 했다. 수술 날짜가 잡혔다. 친구는 종양이 들어 있는 고관절뼈를 드러내고 곳곳의 종양을 제거하는 대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잘 끝났다. 친구는 다시 걸어 다니며 일상으로 복귀하였다. 일상으로 돌아온 친구가 너무 반가웠다. 친구의 평범한 일상이 그렇게 유지되기를 기대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날 갑작스러운 허리통증으로 119를 타고 응급실로 실려 갔다. 육종암 재발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30대 푸르른 젊음을 지녔던 친구는 더는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침대에 누워 생활 하는 날들이 펼쳐졌다. 어린 아들들이 “우리 엄마가 신발을 신고 외출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한다고 친구는 슬픈 웃음을 지었다.     


친구는 동지 같은 절친이었고,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혼자 외롭게 교회를 다녔다. 친구는 부모님이 부부 교사로 봉사를 하셨다. 신앙이 좋은 부모님의 기도를 듬뿍 받으며 믿음 생활을 하는 친구가 어린 시절 참 부러웠다.     


어린 시절 고슴도치여서 나는 친구가 없이 늘 혼자였다. 친구는 골목대장처럼 많은 친구를 몰고 다녔다. 어디를 가든지 중심이 되었다. 성격좋은 친구는 남자든 여자든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둥글둥글한 돌멩이였다. 친구와 나는 대학원도 비슷하게 입학했다. 육아를 도와줄 사람이 없었던 나는 오랜 시간 휴학으로 학업이 멈춰 있었다. 친구는 출산 바로 직후 친정 부모님이 육아를 맡아 주셔서 멈춤 없는 전진을 했다. 달팽이처럼 느리게 가는 나는 치타처럼 빠른 속도로 전진하는 친구의 모습이 신기하고 놀라웠다.     


치타처럼 빠른 속도로 달음질했던 친구가 침대에만 누워 있어야 했다. 휴대전화를 들 힘도 없어서 연락이 안 되니 주말이면 친구 집을 찾아갔다. 온몸에 통증이 지나다닌다는 친구의 팔다리를 마사지해 주는 것과 말동무해 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었다.     


친구는 결국 건강이 회복되지 못했다. 생일을 일주일 앞둔 어느 날 마지막 생일 축하를 받고 지구별 소풍을 마무리했다. 친구와의 슬픈 이별은 한동안 나에게 오랜 침묵을 안겨주었다. 절친했던 친구의 죽음은 30대의 가장 충격적인 슬픔의 흔적으로 남아있다.     




친구와의 슬픈 이별은 내 인생에 또 다른 전환점이 되었다.     

‘인생의 속도가 빠른 것보다 자신의 사명을 다 이룬 삶이 더 중요하다’라는 것을 슬픈 이별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인생의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자기만의 속도로 살아간다.    

 

인생의 속도는 자신만의 독특한 인생 시간표에 담겨 있다. 모두가 다른 자신만의 인생 계획표가 있다. 나와 같은 삶을 살아내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 각자 일정표가 모두 다르므로 다른 사람과 속도를 비교하거나 경쟁할 수 없는 것이다.     


한비야는 그의 저서《중국견문록》을 통해 등산하며 깨달은 교훈을 나누어 준다.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 파키스탄의 낭가파르바트, 네팔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오를 때마다 공통으로 그녀가 깨달은 것이 있다.    

 

 ‘정상까지 오르려면 반드시 자기 속도로 가야 한다’

한비야《중국견문록》    


자기 속도로 가는 것이 느리고 답답하게 보여도 정상으로 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체력 좋은 사람이 뛰어오르는 것을 보고 같이 뛰면 꼭대기까지 절대로 갈 수가 없다. 반대로 어린이나 노약자들의 속도로 가면 반도 못 가서 지치고 만다. 자기 속도로 가면 된다. 남과 비교하면서 체력과 시간을 낭비하느라 꼭대기에 오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식물들도 자기만의 속도로 꽃을 피워낸다. 

들에 피는 꽃들도 각자만의 속도로 아름다움을 뽐낸다.     

매일 물을 줘야 하는 꽃이 있고 

사흘에 한 번 물을 줘야 하는 꽃이 있듯이 

우리도 각자만의 속도로 나만의 꽃을 피워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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