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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사라 Jun 02. 2021

내 인생의 첫 번째 은인

우리는 모두 따뜻한 온기가 필요해

세바시 강의를 종종 유튜브를 통해 시청한다. 


김미경 강사의 《엄마의 자존감 공부》라는 책을 읽으면서 김미경 강사의 강의를 몇 편 듣게 되었다. 가장 아픈 시간을 지나온 둘째 아들 이야기를 통해 자녀에게 엄마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를 감동적으로 전달하고 있었다. 청음 능력이 좋은 둘째 아들이 악보도 잘 보지 못하는데 중3 늦은 시기 예고에 가고 싶다고 입시 곡을 열심히 연습해 합격 했다. 예고입학 후 학교생활이 악보도 보지 못하는 아들에게 버거운 시간이 찾아왔다.     


아들이 열등생으로 찍혔다. 학교생활이 괴로움으로 가득 차 결국 자퇴를 동의하고 결정하게 되었다. 중졸이 된 아들이 오후 3시가 될 때까지 집에서 잠을 자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엄마의 답답함을 김미경 강사는 참 지혜롭게 가다듬었다. 예고에서 뮤지션으로 불가능하다 낙인찍은 아들을 무한 신뢰해 주었다. 오히려 자퇴를 축하해 주고 정성을 다해 집밥을 먹였다. 자퇴 후 지하 10층의 나락에 떨어진 아들을 위하여 자신은 지하 11층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 아들이 자신을 딛고 지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대목에서 눈물이 뭉클거렸다.     


‘엄마는 아이가 지하로 떨어졌을 때, 불행한 사건을 겪을 때, 

온몸으로 받쳐주는 첫 번째 은인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다시 힘을 얻어 세상에 나가서 두 번째, 

세 번째 은인을 만날 수 있다.’

김미경,《 엄마의 자존감 공부 》    


아들이 자퇴 하고 나락으로 떨어졌으나 엄마인 자신이 아들 밑에서 단단한 땅으로 받쳐 주니 아들이 다시 소생되더라고 했다. 엄마는 기꺼이 아이가 밟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땅이 돼줘야 한다고 했다. 아이가 지하로 떨어졌을 때, 불행한 사건을 겪을 때, 엄마가 온몸으로 받쳐주는 첫 번째 은인이 되어야 아이가 다시 힘을 얻어 세상에 나가서 두 번째, 세 번째 은인을 만날 수 있다고 호소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들에게 엄마가 자신에게 첫 번째 은인이 되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 아들은 지금 일본으로 가서 뮤지션이 되기 위해 열심히 도전하고 있다고 했다. 세상의 기준이 아닌 엄마의 기준으로 아이의 피난처가 되고 응원군이 되어야 함을 엄마로서 공감했다.      


세바시 강의를 들으면서 두 자녀에게 첫 번째 은인으로 여겨지는 엄마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내 인생에 첫 번째 은인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았다. 나에게도 가장 힘겨웠던 시간을 헤아려 보았다.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시동을 꺼야 했던 시간이 떠올랐다. 몸이 아픈 것보다 더 큰 정신적인 허무함이 나를 덮었던 시간이 생각났다. 살아갈 의미와 희망이 남아 있는 것인가를 깊이 고민했던 시간이 있었다.  


바로 그때, 깊은 지하로 떨어져 있던 나보다 더 깊은 지하로 내려가 온몸으로 받쳐 준 은인이 있었다.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는 한 사람, 우리 엄마였다. 






엄마와 나는 결혼 전 27년을 한집에서 살았지만 서먹했다. 바쁘고 피곤한 엄마보다는 할머니와 마음의 거리가 더 가까워서 엄마의 사랑을 잘 느끼지 못했다. 결혼 후에도 엄마와 마음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마흔을 앞두고 갑상샘암이 발견되어 서울 병원에서 열흘 입원을 했다. 입원하던 날 남편이 휴가를 내어 이틀 병원에 머물러 주었다. 간단한 수술이었기에 휴가가 끝난 남편은 출근하러 먼저 귀가했다. 거동에 불편함이 없으니 혼자 있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했다.     


1월 초 수술을 했으니 가장 추위가 심한 겨울이었다. 한파가 몰아치는 날씨였는데 기차역의 세찬 바람을 뚫고 엄마가 혼자 서울 병원을 찾아오셨다. 엄마도 감기가 잔뜩 걸려 컹컹 기침하셨다. 감기를 무릅쓰고 상경을 하신 것이다. 수술한 딸이 혼자 병원에 머무는 것이 못내 내키지 않아 엄마라도 곁에 머물다 같이 퇴원하시려고 오신 것이었다. 엄마는 일주일이 넘게 좁은 간이침대에 누워 주무셔야 했다. 컹컹 기침 소리가 멈추지 않는 감기와 동침을 해야 했다.     


자신의 몸이 기침 감기로 힘든 중에도 날개를 잃은 딸을 위해 자신의 몸보다 딸을 극진히 챙겼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 엄마였구나!’ 

난생처음으로 엄마의 사랑을 가슴으로 느꼈다.     




재혼하지 않고 삼 남매를 위해 희생하며 살아가는 삶이 우리를 향한 사랑이라고 평소 머리로 엄마의 사랑을 헤아렸었다. 그 무렵 나는 마흔이 되어 5살 딸을 가진 엄마였지만, 우리 엄마에겐 내가 여전히 보호해주어야 할 아기로 보였다.     


어미 새는 자신의 날개로 아기새를 품어 사랑의 온기를 전해 주었다. 자신의 몸보다 아기새를 더 사랑하는 따뜻함이 전달되었다. 병들어 바닥으로 추락한 딸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로 품어 주셨다. 어떤 모습이든지 사랑받는 존재임을 한없는 토닥임으로 전해 주셨다.     


가장 불행한 사건을 겪을 때, 첫 번째 은인이 되어 주신 엄마가 계셨기에, 나는 다시 힘을 얻어 세상에 나가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은인을 만날 수 있었다. 엄마처럼 두 자녀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열렬한 치어리더가 되어 주고 싶다. 두 아이의 첫 번째 은인이 되어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아이들이 세상에 나가서도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은인을 만날 수 있도록 아이들보다 더 낮은 바닥이 되어 든든히 받쳐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내가 살면서 누군가를 위해서 살아야 한다면, 

내가 실망시켜서는 안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분은 바로 나의 어머니입니다.” 

- 토마스 에디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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