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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사라 Jun 02. 2021

따뜻한 온기가 필요해


〈내 어깨 위의 고양이 밥〉이라는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며 거리 공연으로 살아가는 제임스는 노숙자, 마약중독자였다. 마약 중독 치료를 받는 중인 제임스는 가족에게도 홀대를 받고 혼자 살아간다. 아무런 희망도 미래도 없는 제임스는 길거리에서 상처 입은 고양이 ‘밥’을 우연히 발견한다. 거리 공연만으로는 벌이가 안 되어 쓰레기통을 뒤져 식사를 해결하기도 하는 제임스가 고양이 밥을 위해 생활비를 모두 쏟아 치료해 주었다. 그날부터 제임스와 고양이 밥은 가족이 되었다.     


어느 날 공연을 시작한 제임스는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느낀다. 고양이 밥이 제임스 옆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고양이 밥 덕분에 제임스는 사람들의 따뜻한 환호 속에 공연을 이어간다. 고양이 밥은 항상 제임스가 가는 곳에 함께 한다. 고양이 밥 덕분에 제임스의 공연도 유명해지고, 세일즈에도 성공한다. 고양이 밥과 함께한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제임스의 인생이 고양이 한 마리로 인해 역전되었다.     




결혼 후 대학원에 입학했다. 두 번의 출산으로 두 번의 휴학을 했다. 마지막 학기를 다니면서 가장 큰 절망의 수렁에 빠져들었다. 육종암으로 투병하던 사랑하는 친구가 갑작스러운 슬픈 이별을 안겨주었다. 더구나 졸업을 앞두고 눈앞의 현실이 발 디딜 곳이 없었다.     


높은 산을 오랜 시간 힘겹게 올라 정상에 이르렀다. 정상은 벼랑 끝처럼 느껴졌다. 모든 수고가 물거품이 된 듯한 절망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런 시기 암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했다. 치료를 위해 하던 일도 사임을 했다. 갑자기 켜진 내 인생의 적색 신호등이 당황스러웠다. 대학원 졸업을 했으니 본격적으로 일을 해야 할 타이밍에 체력이 바닥을 쳤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멈춤이 암 수술과 치료보다 더욱더 힘겨웠다. 수술 후 3년 동안은 무리하면 안 된다고 했다. 친정엄마도 컨디션이 되돌아오기까지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에너지가 많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6개월이 창살 없는 감옥이 되었다. 요양 기간이니 집에 온종일 머물며 쉬어야 했다. 가족들은 여전히 나를 아끼고 사랑했지만, 아침에 집을 나가 늦은 오후 귀가를 했다. 남편은 직장에,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을 다녀오느라 종일 집에 혼자 남았다.    


6개월 동안 마음이 한없이 바닥으로 내려앉기 시작했다. 백수가 된 현실이 서러웠다. 막막한 미래가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온 나의 삶에 대한 분노로 바뀌었다. 온종일 빈집을 혼자 지키면서 가득해진 우울감과 자괴감으로 마음이 바닥을 쳤다.     






어느 날 지인이 키우던 강아지 입양을 권면하였다. 1년 된 시추였는데 남편이 너무 싫어해 강아지를 친구에게 보냈는데 친구도 키울 수 없다고 연락이 왔다는 것이었다. 키울 의향이 있으면 강아지 용품도 모두 줄 수 있다고 했다. 4학년이던 아들의 사춘기를 위해 입양을 잠시 고민했다.     


애완견을 키워본 적이 없지만, 아들을 위해서 키워볼까 생각하고 강아지를 보러 갔다. 강아지는 나를 보자마자 강아지 운반 가방에 쏙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자기를 데려가라고 하는 듯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강아지 짐을 모두 싸놓아 얼떨결에 강아지를 입양해 왔다.     


어색한 만남이 이루어졌다. 강아지도 갑자기 변한 환경에 사흘 동안 눈물을 흘렸다. 만지려 하면 민감해하고 으르렁거렸다. 일주일이 지나 목욕을 시키면서 강아지에게 딸아이의 태명이었던 ‘행복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행복이가 집에 온 후 혼자가 아니었다. 내 옆에는 항상 행복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소파에 앉으면 행복이도 소파에 앉았다. 피곤해 침대에 누우면 행복이도 내 옆에 붙어 침대에 누웠다. 강아지도 체온이 필요했나보다. 내가 머무는 곳에 강아지 행복이가 함께 머물며 자신의 따뜻한 체온을 나누어 주었다. 혼자라고 생각했던 나는 강아지 행복이가 전해주는 따뜻한 체온을 매일 느꼈다. 작은 강아지가 나에게 꼭 붙어 살이 맞닿아 느껴지는 따뜻함의 온기를 전달해 주었다. 신기하게도 강아지의 온기를 통해 마음의 우울감이 점점 가벼워졌다.       


‘내가 당신과 함께 있어요. 힘내요.’


이런 따뜻한 무언의 메시지가 강아지의 체온을 통해 나에게 전달되었다. 앞날도, 미래도, 진로도 모든 것이 어둡고 캄캄했다. 아무것도 꿈꿀 수 없는 현실이 암담하고 슬펐다. 풍선처럼 차오르던 절망이 강아지의 온기를 통해 희망으로 바뀌어 갔다. 강아지가 따뜻한 체온으로 격려하며 토닥여 주었다. 강아지 행복이 덕분에 절망과 우울을 이겨낼 수 있었다.     




누군가 찾아와 접촉을 통한 온기를 전할 때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됨을 배웠다. 행복이가 나의 곁에 머물며 따뜻한 온기를 통해 위로와 격려를 해주고, 우울과 절망을 이겨낼 에너지를 주었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따뜻한 온기를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마음아, 너는 누구니?》저자 박상미 작가는 마음에도 근육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위로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체온으로, 몸으로 하는 것임을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친구를 통해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마약중독으로 외롭게 무너져 가던 제임스에게 들고양이 밥의 따뜻한 온기가 삶의 생기를 안겨 주었다. 함께 하는 동안 위로가 되는 관계는 사람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제임스에게 고양이 밥이 따뜻한 온기가 되어 그의 절망을 위로해 준 것처럼 강아지 행복이가 따뜻한 온기가 되어 나의 절망을 위로해 주었다. 행복이에게 나는 사랑의 빚을 졌다.     


모든 사람은 사연을 가지고 살아간다. 누구나 인생의 바닥을 치는 순간이 있다. 

그저 누군가의 따뜻한 온기를 공급받아야 할 순간이 있다. 

누구에게나 죽을 것 같은 날들이 있다. 


우리 모두에게는 따뜻한 온기가 필요하다. 

때로는 강아지와 고양이의 따뜻한 온기가 우리를 살려내는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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