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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사라 Aug 02. 2021

걸림돌을 최고의 디딤돌로 삼는다

지금 걸려 넘어진 그 자리가 전환점이다


죽음의 목전에서 깨달은 것은 나를 삶에 집착하게 만드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해결되지 않은 분노라는 사실이었다

사랑나로부터 흘러나오고 나를 향하여 흘러들어오는 

그 진정한 사랑은 나를 자유롭게 죽을 수 있게 해주었다     

죽음 앞에서 정말 고통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정말 문제는 내가 용서하지 못한 사람들과 나를 용서하지 못한 

사람들을 뒤로하고 떠나야 한다는 것과 상관이 있었다

그러한 느낌들이 나를 낡은 몸에 계속 얽어매 두려 했고

나에게 깊은 슬픔을 가져다주었다.’ 

헨리 누엔,영성에의 길     


30대 시절 친구가 희소 암으로 떠나간 그해 늦은 가을 남편과 함께 종합검진을 받았다. 잔병치레하지 않아 건강에 자신 있던 나에게 갑상샘 조직검사를 하라는 결과가 나왔다. 남편도 얼마 전 갑상샘 조직검사를 했었지만 아무 이상이 없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검사를 했다. 며칠 후 검사 결과를 들으러 병원을 방문했다.     

의사가 조직 검사 결과를 설명해 주었다. 나에게 ‘갑상샘암’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시면서 그래도 제일 착한 유두상 암이라 수술만 하면 괜찮다고 토닥여 주셨다. 친구를 통해 처음 접했던 암이라는 단어가 나에게도 적용이 될 것을 예측하지 못했다. 나는 순간 멍해졌다.      




설명을 듣고 병원을 나오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웃음을 터트리면서 “나 암이래. 갑상샘암이래.”라고 전했더니 남편은 장난하지 말라고 껄껄 웃었다. “장난이 아닌데, 갑상샘암인데 제일 착한 유두상 암이래.” 

전화기 속에서 남편의 침묵이 흘렀다.      


남편과 통화를 끝낸 후 병원을 나가면서 감사할 제목을 급하게 찾았다. 암 환자가 된 현실이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감사할 제목들이 몇 가지 떠올랐다.      


첫째, 암중에서도 흔한 갑상샘암이어서 감사합니다.

둘째, 음식 섭취에 지장을 받지 않는 암이어서 감사합니다.

셋째, 제일 착한 유두상 암이니 감사합니다. 

넷째, 수술만 하면 괜찮다니 감사합니다.

다섯째, 건강검진을 통해서 암이 일찍 발견되어 감사합니다.     

병원을 걸어 나오면서 나는 계속 읊조렸다. 


“암이어도 감사합니다. 수술하면 괜찮다니 감사합니다.”

친구의 희소 암 투병을 지켜보았기에 나의 소소한 암에 불과함에 감사했다.      




외과 수술 잘하신다는 원장을 소개받아 수술 날짜를 예약했다. 평소 병원 갈 일이 별로 없었던 내가 환자복을 입고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입장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침대 누워서 수술실로 들어가면서 나는 생각했다.      

‘수술실로 들어가 마취가 깨지 않으면 그대로 천국행이구나. 

마취가 시작되면 하나님께 나의 생명을 맡겨드려야겠다.’      


20대에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했다. 30대에 친구의 죽음을 경험했다. 사실 나의 죽음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었다. 수술을 받으러 들어가던 그 날 난생처음 죽음의 문턱에 서보는 하루가 되었다. 낯선 죽음이라는 첫 경험, 죽음의 문턱에 서서 나 자신에게 질문했다.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지금까지 나는 후회 없이 살아왔는가?’

나에게 지금 가장 후회되는 일은 무엇인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던 도중 교통사고로 죽음의 문턱에 잠시 머물렀던 헨리 누엔이 느꼈던 안타까움이 나에게도 머물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죽음 앞에서 화해하지 못하고 떠나야 한다는 것이 가장 깊은 슬픔을 가져다주었다는 헨리 누엔의 고백이 나와 같은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평소 좋은 관계를 유지해온 사람들과는 당장 죽음으로 헤어진다 해도 아쉬움이 남지 않았다. 오래전 오해로 관계가 틀어져 연락을 끊고 지내온 친구가 떠올랐다. 그 친구와 화해하지 못하고 떠나는 것에 깊은 슬픔을 느끼게 되었다.      





친구와 화해하지 못함이 이 땅에서의 마무리를 못 하게 하는 자책감으로 다가왔다. 수술 후 요양병원에 머무는 동안 전화를 걸어 친구에게 안부를 물었다. 몇 년 만에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은 친구는 반가워하면서도 “무슨 일이 있는 거냐?”고 물었다.       


나는 암 수술 후 치료 중이며, 그동안 연락을 끊은 것이 미안해서 전화했다고 고백했다. 한 통의 전화가 끊어졌던 친구를 다시 연결해 주었다. 친구는 오랜만의 연락에 반가워하며 힘내라고 격려해 주었다.      

암 덕분에 죽음의 문턱에 서 볼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 


죽음 앞에 서는 경험을 통해 인생의 소중한 가치를 점검했다. 

몇 년 동안 연락이 끊어졌던 좋은 친구를 되찾을 수 있었다.      

암은 나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인생 최대의 장애물이었다. 

하지만 내가 넘어진 그 자리는 최고의 디딤돌이자 전환점이 되었다.      


내가 넘어진 자리가 가장 큰 전환점이 되어 내 삶을 장식하는 리본(REBORN)이 되었다.

내 인생은 다시 새로운 시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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