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따뜻한 온기가 필요해
“빨리 가려면 혼자서 가라.
그러나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 아프리카 속담 -
그때가 2002년이었으니 벌써 18년 전이다. 대학원 동기들과 함께 지리산 등반에 도전했다. 친한 동기들의 천왕봉 등반에 초대받아 가본 적 없는 지리산을 오르겠다고 도전했다. 내가 올라본 산은 고작 무등산, 마이산, 월출산 정도였다. 산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나는 ‘지리산이 힘들면 월출산 정도 되겠지.’ 하는 무식함으로 지리산 등반을 출발했다.
만만한 무등산만 자주 올랐던 나는 등반이 시작되는 길목에서 지리산 도전을 후회했다. 지리산은 오를수록 산이라는 무게와 위엄을 느끼게 해 주었다. 가도 가도 끝없이 이어지는 산등성이가 펼쳐졌다. 다리가 아파지면서 고된 산행을 하산하고 싶어졌다. 다행스러운 것은 지리산을 함께 걷는 동기들이 있었다.
등산 초보가 힘들어 하면 쉬어가고, 또 힘을 내어 함께 걷다 지치면 쉬어가고를 반복했다. 혼자였으면 바로 돌아왔을 험난한 코스였다. 함께 걷는 동기들 덕분에 지리산 천왕봉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우리가 지리산을 올랐던 그 날은 이틀 내내 날씨가 화창해도 너무 화창했다. 지리산을 구석구석 모두 볼 수 있는 화창함이 허락되었다. 날씨가 흐리거나 안개가 끼는 날이 많아서 지리산은 좀처럼 자신의 모습을 잘 보여주지 않는다고 했다. 화창한 햇살 덕분에 지리산의 절경을 감탄하며 천왕봉을 찍고 내려오는 발걸음은 상쾌하고 후련했다.
동기들과의 지리산 천왕봉 완주를 통해 나는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생하게 경험했다. 험산 준령일지라도 함께 걷는 사람들이 있을 때 멀리 갈 수 있고, 끝까지 완주할 수 있다는 교훈이었다.
우리가 하루하루 한 걸음을 내딛는 우리의 일상도 마찬가지이다. 때론 무등산처럼 쉬운 언덕 같은 날이 있다. 반면 지리산의 험산 준령처럼 너무 고되어 중간에 돌아가고 싶고, 그만 포기하고 싶은 날들도 펼쳐진다. 산이 높을수록 골짜기가 깊다. 우리 삶의 목적지가 높을수록 깊은 골짜기를 걷는 시간이 통증으로 펼쳐진다.
걷다 보니 산이 높고 가파른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목적지에 도달하느냐의 문제는 목적지의 높고 가파름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길을 함께 걷는 사람들이 있느냐 없느냐로 결정되는 것이다. 지리산 천왕봉이어도 함께 걷는 이들이 있어 등산 생초보가 완주할 수 있었다. 우리가 도달하고 싶은 인생의 목적지도 함께 걷는 사람들의 동력임을 고백한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의 저자 이종선 작가는 누구에게나 꿈이 있지만 재능만으로는 이루기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 한다. 꿈을 이루는 길은 너무 험난하여 다른 이의 도움 없이는 결국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죽을 것 같은 순간에도 살게 하는 것, 그것이 격려라고 말한다. 격려와 같은 뜻을 가진 고무(鼓舞)는 ‘북 고(鼓)’에 ‘춤출 무(舞)’ 바로 ‘북을 쳐 춤을 추게 한다’라는 뜻이다. 그냥 춤추라 명령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북을 쳐주어 상대를 춤추게 하는 것, 그것이 격려이고 고무이다.
미국의 가장 힘든 남북 전쟁을 이끌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대통령 시절 많은 비난과 협박에 시달렸다. 링컨이 암살당했을 때 그의 주머니에서 나온 종이 한 조각이 발견되었다.
“링컨은 모든 시대의 가장 위대한 정치인 중 한 사람이었다”라고 적힌 신문 기사 한 조각이었다. 링컨은 자신을 칭찬하는 신문 조각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고난의 시간을 견디어 낸 것이다. 많은 이들이 링컨 대통령을 비난했지만, 그 신문 기사를 쓴 한 사람은 링컨을 가장 위대한 정치인으로 평가하며 격려를 해주었다. 격려해 주는 한 사람이 있어 링컨은 그 어려운 시간을 견디어 낼 수 있었다.
이종선 작가는 자신을 좌절시키고 아프게 했던 사람들과 자신에게 힘을 주고 제대로 사는 길을 안내해 주었던 사람들, 꼭 닮고 싶었던 사람들 모두가 자신의 인생 여정 가운데 함께 해준 다 소중한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한다. 사람 사이에서 생기는 피로감을 회복 시켜 주는 것도 함께해주는 사람이고, 더 큰 성공을 꿈꾸게 하는 것도 함께하는 사람이기에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고 책의 결론을 맺는다.
작가가 되고 싶은 꿈이 오랫동안 씨앗처럼 머물고 있었다. 작가의 꿈이 있어도 내 이름으로 된 책 한 권을 출간한다는 것은 무모해 보였다. 초라한 내 인생이 책 한 권에 담길 만한 재료가 될 수 있을 것인가를 오랫동안 고민했다. 지리산을 겁 없이 올라 산을 오를수록 내려가고 싶었던 것처럼 출간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반복되었다. 집필을 시작할 때에도 과연 출간에 도달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나 혼자였다면 과연 출간까지 완주할 수 있었을까?
첫 글쓰기 후 찾아온 우울함에 빠져 포기했을 것이다. 작가의 꿈을 꾸며 함께 걷는 수많은 선후배 작가들이 함께 집필의 여정에 동행해 주었다. 앞서 걷는 선배들의 출간 소식은 희망이 되었다. 출간된 책들이 멋진 항해를 펼치는 모습이 주저앉아 있는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었다. 선후배 작가들이 함께 걸으며 내딛는 걸음마다 열렬한 응원을 보내 주었다. 한 박자를 쉬더라도 함께 걷는 이들이 있어서 다시 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다.
출간은 히말라야처럼 높아 보였다. 절망과 염려가 가득했다. 하지만 뒤에서 밀어주고 앞에서 이끌어 주는 전문 코치들이 집필 과정에 동행해 주었다. 히말라야 등반에 초보여도 히말라야 전문가 셰르파와 동행하면 히말라야를 정복할 수 있다.
글쓰기에 무지했고, 글쓰는 능력이 부족했다. 방향을 잃었고, 자주 주저 앉았다.
셰르파들과 함께 걸었기에 끝까지 갈 수 있었다.
글쓰기 코치들과 함께 걸어 완주할 수 있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면 된다.
그러나 멀리 가려면, 끝까지 가려면 언제든지 함께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