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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사라 Oct 24. 2021

배설은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

《나는 말하듯이 쓴다》독서에세이 

〈금쪽같은 내 새끼〉프로그램에 배변을 거부하는 5살 금쪽이가 출연했던 적이 있다.



배변을 일주일까지 참는다고 금쪽이의 부모는 안타까워했다. 오랫동안 배변을 참아 배가 아픈 금쪽이는 병원을 찾게 되었다. X-ray 결과 장에 가득 차 있는 대변과 대장에 갇혀있는 가스를 확인했다. 식은땀을 흘리고 비명을 지르고 울면서도 대변을 참는 금쪽이에게 오은영 박사는 전문가로서 진단과 설루션을 명쾌하게 제시했다.     






오은영 박사의 전문가다운 진단과 설루션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금쪽이는 익숙한 것에서 

변화라는 단계를 밟을 때, 

특히 촉감과 관련된 변화가 

불편하면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면이 있다. 그래서 금쪽이가 

새로운 것을 접할 때 그 과정에서 

언제나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배변에서 자기만족까지 이어져 

자기 효능감을 맛볼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오은영 박사가 설루션 중에 인상 깊은 여운을 남겨준 대사가 있었다.    

 

배설은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 

배설 활동만은 자기가 항문을 열어 

스스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가 해야 하는 일이다. 

이 과정을 잘 해내는 것이 자기 효능감과 

유능감에 깊은 관련이 있다. 


배설 활동이 정서발달에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배변훈련이 되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던 나에게 배설이 안 되는 금쪽이의 사연이 인상적이었다. 배설에 대한 오은영 박사의 설명이 여운에 남았다.     





“감수성이 둔하고 감정이 무딘 

사람이 과연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글 쓰는 데 필요한 공감력, 창의력,

직관력 모두 감정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감정을 건드려야 마음이 움직인다.     

감동을 주고 설득하는 글을 쓰려면

이성만으로는 안 된다.


감정이 필요하다.     

감수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

감정을 말로 드러내야 한다.

글을 쓰면서 자신의 감정과

마주해야 한다.”     

 《나는 말하듯이 쓴다》    


  

강원국 작가는 감동을 주는 글을 쓰려면 감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성우학원에 말 잘하는 방법을 배우러 갔었는데 더 중요한 것을 알게 되었다고 회상한다. 자신 안에 표현되기를 기다리는 많은 감정이 있다는 것, 살아오면서 그 많은 감정을 외면해 왔다는 것, 아니 있는지조차 몰랐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작가의 감정을 말로 드러내어 자신의 감정과 마주해야 한다고 강원국 작가는 설명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문자로 펼쳐진 자신의 감정, 문자화 된 자기와 마주하는 것이다. 마주함으로 자신의 감정을 아는 것이며 뭉텅한 감정을 세분화하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인간은 감정이 먼저인 존재이지만 우리 한국 사회는 이성을 중시한다. 특히 한국사회는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절제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과 감정에 충실한 사람을 ‘프로 불편러’로 정의하는 분위기 때문에 우리는 감정을 숨기고 억누르며 살아간다고 강원국 작가는 설명해 준다. 우리 사회가 그렇지만 작가가 되기 위해서, 감동을 주고 설득하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감정이 필요하다고 강원국 작가는 이야기한다.     


개인저서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강원국 작가가 이야기하는 ‘글을 통해 감정을 마주하는 경험’을 했다. 나 역시 목석처럼 감정을 오랫동안 억누르고 살아왔다. 유년 시절 상처 받은 슬픔을 그 당시 한 번도 누구에게도 표현해 본 적이 없다. 혼자서 통곡하며 울지언정 사람들 앞에서는 나의 감정을 억누른 채 살아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7년이 되어간다. 유년 시절의 기억과 경험들은 30여 년 전의 일들이다. 다 잊혔다고, 다 지나갔으니 내 안에 아무런 감정이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착각하고 살았다. 아버지에 대한 글을 쓸 때마다 내면에 쌓여있는 감정들이 여전히 눈물로 흘렀다. 오래된 기억 속에 아버지에게 상처 받은 아픔과 슬픔, 절망들이 청소되지 않은 채 그대로 쌓여 있음을 비로소 마주했다.     


매일 밤 글을 쓰면서 어린 시절의 나의 감정을 받아주고 쓰다듬어 주었다. 아버지에 대한 나의 감정을 글로 써내면서 나는 용서했다고 생각했지만 아버지에 대한 분노의 감정과 날카로운 적대감정이 남아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강원국 작가는 감정을 받아주고 쓰다듬고 치유하는 것이 먼저 되어야 하기에 글로 감정을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을 글쓰기의 “배설 효과”라고 이름 붙여 설명한다.





“우리 뇌는 부정적 감정에 

휩싸여 있는 것을 싫어한다. 

빌미를 주면 벗어날 준비가 

되어 있다.      


부정적 감정을 느끼는 것은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남을 좋아하기보다 미워하고 

경계해야 예기치 않은 공격을 

방어할 확률이 높다.    

  

그런 감정을 글로 쓰면

‘이만하면 됐다. 그만 미워하자.’라는

마음이 들면서 미움에서 빠져나온다.     

《나는 말하듯이 쓴다》    


 

오랫동안 글쓰기의 치유 효과를 연구해 온 미국 심리학자 제임스 페네베이커가 두 집단에 일기를 쓰게 했다. 한 집단에는 그날 한 일을, 다른 집단에는 그날 느낀 감정을 쓰라고 했다. 일을 쓴 집단은 별다른 특이점이 없었으나, 감정을 쓴 집단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이전보다 훨씬 건강해졌다는 결과를 얻었다고 소개한다.     

일기에 감정을 글을 쓰면서 부정적인 감정에서 헤어난 것이다. 결국 글쓰기를 통해 부정적인 감정을 잘 배설한 것이다. 강원국 작가는 배설은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고,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결혼 전까지 내가 일기에 적었던 글들이 모두 힘든 감정을 토로하는 글이었다. 글로 힘든 감정을 털어놓은 것만으로도 나는 나름 부정적인 감정을 배설해 왔다.     


5살 아이라도 스스로 배설을 해야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모든 사람은 스트레스와 부정적인 감정들을 스스로 배설하며 살아야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퇴고를 마친 후 이전과 완연히 달라짐을 느끼면서 너무 신기했다.      





그저 아버지에 대한 내 안의 감정들을 그대로 글로 썼을 뿐인데.

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지금까지 원망스럽기만 했던 아버지를 사랑한다 고백할 수 있게 되었을까?     


어렴풋하게 해묵은 감정들이 눈물을 통해 정화되어 나타나는 효과라고만 생각했는데 강원국 작가의 “글쓰기의 배설 효과”를 통해 상처 입은 감정을 드러내는 글쓰기가 바로 작가들의 묵은 감정을 배설하게 해주는 중요한 처방이었음을 깨달았다.     


“배설은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다.     

감정을 표현하고 나면 남의 일같이

되어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뇌의 넋두리에 공감해 줄 수 있게 된다.  

   

글을 쓰면서 논리적으로 정리하면서

불안과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글쓰기의 치유효과는 쓰는 과정에서는

물론, 시간이 지난 후 써놓은 글을

읽을 때 더 크게 느낀다.


글을 통해 반추하면서 용기를 얻는다.     

글을 읽는 이들의 상처까지 어루만져준다.

그래서 글은 나눌수록 좋다.

글쓰기는 감정과 밀접하다.     


글을 계속해서 쓰려면 용기나 배짱이

있어야 한다. 마음이 단단해야 한다.

글이 잘 써지는 자신의 기분을 잘 알아야

한다. 감정 그 자체가 글쓰기 소재다.”     

《나는 말하듯이 쓴다》           


《나는 말하듯이 쓴다》 한 권을 쓰기 위해 트위터와 카카오스토리에 2,000개가 넘는 메모를 남겼다고 강원국 작가는 회고한다. 이 책은 아무런 미련이 없다고, 도리어 신물이 난다고 강원국 작가는 자신 있게 고백한다. 다시 써도 이보다 잘 쓸 자신이 없으니 이것이 최선이라고 당당하게 외친다. 




글을 쓰면서 행복했고, 남을 위해 쓴다는 명목으로 나를 위해 썼으며, 쓰면서 글을 쓸 용기가 더 솟구쳐 올랐다고 서술한다. 작가인 자신이 책을 쓰면서 행복했으니 이제는 독자인 당신이 책을 읽으며 행복하길 바란다고 에필로그를 마무리한다.     


한 권의 책에 담은 그의 최선과 행복이 그대로 나에게도 밀려온다.

밥을 먹듯이 꼭꼭 씹어서 천천히 책을 마스터하게 하는 달콤함이 있다. 

나의 글에도 최선의 최선과 행복을 담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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