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으면서, 나의 모든 것을 바치라는 회사
이곳에 계신 어른들은, 모든 것을 회사를 위해 희생하고 감내하기를 바란다. 특히 몇몇 주요 부서에 배치된 사람들은 그것을 영광으로 알고 모든 것을 회사를 위해 바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본인들도 그랬으니 우리도 그래야 한다며 너무 당연한 것이라며 요구한다.
끊임없이 말한다. 나 때는 상사가 시키면 무엇이든했다류의 말들. 지금보다 더 많은 갑질이 있었고, 더 힘든 세상이었다고 한다. 그들이 보기엔 우리가 사는 지금의 세상이 훨씬 편해 보이는데, 요령 피우며 이곳을 위해 희생하지 않는다고 불만한다. 하지만 그때와는 다르다. 적어도 그때는 여기에 나의 무언가를 바치면 기본적인 '의식주'는 보장받았고, 또 적어도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는 이곳에 들어오기 위해 훨씬 더 많은 노력을 들였음에도 받을 수 있는 것은 훨씬 적다.
말도 안 되게 올라간 집값에 서울에서 10억짜리 집은 비싼 집 축에도 속하지도 못하는데, 우리의 월급으로는 30년 내내 일해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도 그 집들을 살 수 없다. 이미 몇 년 전 개혁된 연금으로 인해, 현재의 우리는 선배들보다 훨씬 높은 비율의 기여금을 감당하면서도 훨씬 적은 액수의 연금으로 노후를 준비해아한다. 이런 와중에 뉴스에서는 매일 우리의 연금을 없애야 한다느니, 줄여야 한다느니 하루가 멀다 하고 기사가 떠 우리의 불안감을 자꾸만 자극한다. 또한 몇 년 사이 최저임금이 무서운 기세로 오르는 동안 공무원 급여는 계속 거의 제자리나 다름이 없었다. 내가 받는 급여로는 '주'는 택도 없고 '의'와 '식' 정도만 간신히 유지할 수 있으며, 과연 2세를 낳아서 키우는 것이 2세와 나를 위해 현명한 선택인지 고민해봐야 이런 환경 속에서 우리는 그 어떤 것도 '보호'받고 '보장'받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데, 그들은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나때'를 이야기하며 자꾸만 모든 것을 회사에 바치라고만 한다.
* 내 동기중 한 분은 코로나 관련 부서로 배치받았다. 그분은 한 달에 100시간 이상의 초과근무를 하고 있단다. 그나마 초과근무 수당은 100시간 모두 인정되지 않아서 90시간만 받고 있다고 한다. 한 달에 100시간의 초과근무라니? 그분 말로는 일주일에 딱 반나절 쉴 수 있다고 하더라. 그렇게 1년 가까이 일하는 그에 대한 보상은 무엇일까? 다달이 주어지는 90시간의 초과근무 수당이 전부이다.
90시간의 초과근무 수당은 70만 원 초반대이며, 그나마 세금을 모두 제하면 (우리는 기여금 때문이 일반 회사원보다 내야 하는 것들이 더 많다) 60만 원대 초반. 한 달에 100시간의 초과근무라면 그는 개인생활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며 건강 또한 놓칠 위험이 많은데 고작 60만 원 초반의 수당을 주면서 무조건 버티라는 것이다. 고작 60만 원의 수당으로는 아무것도 보장받을 수 없다. 그분의 건강도, 그분의 개인생활도, 사실 현재의 물가에서는 의식주조차 간신히 해결하는 것이지 풍요로운 선택지 내에서 선택할 수 없다. 하지만 고작 이런 것들을 대가로 받으면서 그가 회사를 위해 제공하는 것들은 너무 가혹한 것 아닌가??
* 옆과에 있던 어떤 분은 격무부서에 배치된 상태에서 임신하셨다. 하지만 임신했다는 이유로 업무를 바꿔주거나 그런 일은 없었고, 그녀는 만삭의 몸으로 새벽까지 이뤄지는 팀의 업무의 대부분 모두에 참여했다. 물론 사기업보다 좋은 환경에서 육아휴직을 쓸 수 있으며, 모든 임신한 직원들이 새벽 근무를 하지는 않는다. 모성보호시간이라고 4시면 퇴근할 수 있는 그런 좋은 혜택을 누리는 직원도 있다.
다만 그녀가 임신했을 당시 그 팀이 엄청난 격무에 시달리는 팀이었다는 불운이 그녀에게 적용한 것인데, 그 팀으로 그녀는 보내달라고 한 적이 없다. 본인들 멋대로 보내 놓고, 임신 사실을 확인 한 뒤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해주지 않았다. 그냥 조직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마인드인 것이다. 다행스럽게 그녀는 건강한 아이를 출산했고, 지금 행복하게 지내지만 만에 하나 과도한 업무로 아이나 엄마게에 안 좋은 영향을 미쳤다면 그때 과연 정당한 책임이라도 졌을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