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만큼 우리 동네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내가 태어나고 평생을 자란 나의 동네는, 서울에서도 외곽지역으로 개발이 많이 느린 곳이다. 얼마나 느리냐면 내가 대학교에 가고 처음 사귀었던 남자 친구는 소위 말하는 좋은 동네인 강의 남쪽 동네에 살았는데, 내가 오로지 이 동네에 산다는 이유로 그의 어머니는 나를 극도로 싫어했고, 그것이 결국 헤어짐의 주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 동네'를 사랑했다. 20대 초반에는 나도 떠나고 싶기도 했었으나, 어쨌든 30년이 넘는 동안 우리 가족 모두 이 동네에 살면서 동네에 없던 지하철이 생기고, 영화관도 생기고, 동네의 발전을 보며 미운 정 고운 정이 들기도 했고, 남들은 모르는 동네의 장점을 나는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태어난 '우리 동네'를 진심으로 애정하고 사랑했다.
그래서 지방자치 공무원이 된 이후에는 내가 사랑하는 이 동네를 위해서 일하고 싶었다. 나만 알고 있는 이 장점들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었다. 이 동네가 충분히 발전하고 더 나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으며, 작지만 거기에 일조하고 싶었다.
그래서 공무원에 임용되고 단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5순위까지 쓸 수 있는 희망지역 1순위에 '우리 동네'를 넣었다. 그리고 나는 운이 좋게(?) 우리 동네에 배치받게 되었다. 집과 가깝다는 장점도 있었지만 내가 사랑하는 이 동네에 뭔가 하고 싶었고 그렇게 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하지만 그 생각은 한참 잘못된 생각이었다.
구청에 임용되고 얼마 안돼서 누군가가 혜택을 받는 것을 보고 (정확히 어떤 혜택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 이곳에서 혜택이라고 해봤자 대단한 것도 없다. ) 어떤 선배가 그 사람은 '성골 출신 '이잖아.라고 하는 이야기를 흘려 들었다. 그리고 좀 더 지나 그가 말한 그 '출신'이라는 게 '태어난 연고지'와 관련이 있음도 알게 되었다.
나는 당연히 누군가가 '연고지'로 혜택을 받는다면 이 동네에 거주하거나 태어난 이곳 주민들이 받는 것이구나 라고 생각했다(정말 1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땐 정말 순진했다). 아무래도 동네에 대해 더 잘 아니까 업무를 하는 데 있어서 이점에 될 수도 있기에 그런 부분에 우대를 해주나 보다 하고 순진하게 생각했다. 태어난 연고지로 누군가를 차별하고 혜택을 준다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지만, 어쨌든 당시 나에게는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크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넘겼다. 그리고 나는 '혜택'을 준다는 것이 사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혜택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해서 그냥 큰 생각하지 않고 넘기기도 했다.
구청에 임용되고 한 달이 지나고 , 육 개월이 지나고 1년이 지나고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 전보다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듣게 되는 정보도 많아졌다. 그러면서 나는 구청에 아는 사람도 많아지고 듣게 되는 정보도 많아지면서 점점 아는 것이 많아졌다.
연고지 혜택이란 내가 생각했던 '이 동네에 태어난 사람'을 우대해 주는 것이 아닌 현재 구청장의 집권당 '연고지'에 대한 우대였다. 그리고 그 '우대'라는 것이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일의 능력 또는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로지 출신지역만으로 주요 부서를 꽉 채운다. 그리고 그들은 본인들의 능력에 상관없이 승진에 유리한 자리에 앉게 되고 일의 업적과 상관없이 승진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젊은 우리 또래의 직원들 줄 '지방'출신을 찾기 힘들어지자 이제 부모의 고향까지 뒤져서 앉힌다는 소문마저 돌고 있다.
실제로 나의 동기중 가장 무능력하기로 소문난 OO 씨는 그쪽 연고지 출신이라는 이유로 승진할 타이밍에 주요 부서로 발령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그곳의 그 복잡한 일을 감당할 능력이었없다. 그러기에 그 자리는 사람은 있으나 업무가 없는 그런 자리로 두고, 주변 사람들이 그의 일을 다하고 있는 눈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동기들 중 가장 먼저 승진을 하였으며, 여전히 그곳에서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고 있다.
내가 들어오기 직전에 구청장의 '당'이 바뀌었는데, 그 전 구청장이 있을 때는 또 다른 지역이 권력을 잡고 지금 방식 비슷하게 구청을 운영했다고 한다. (그때는 구청장실이 있는 층에서는 반대편의 사투리도 들리면 안 됐다고 한다. )
2021년도에 지역 가지고 싸우는 것도 어이가 없는데, 그것도 왜 남의 동네 와서 A도와 B도가 싸우는 건지 싸우고 싶으면 자기네 동네 가서 싸웠으면 좋겠다. 왜 이 동네에서 이 동네 구민들이 주는 세금으로 일하면서 이 동네에 대한 생각들은 안 하고 자기 고향 생각을 하는 건지... 나는 왜 이 동네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부려 먹히고 버림받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건지 나의 이성으로는 정말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는 것들 뿐이다.
그런 지역에 연고지가 있는 사람들의 경우 대부분 본인들 고향에서 살다가 공무원에 임용되고 나서야 이 동네에 살게 되었거나 아니면 아직도 직장만 다니고 살지도 않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이 지역 출신이라고 무조건 일을 잘하고 애착을 가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평생 이곳에 서울에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다가 이곳에 와서 자기 고향으로 편을 먹고 싸우는 사람들이 과연 내가 사랑하는 '우리 동네'발전에 진심으로 관심이 있기나 할까?
30년을 넘게 이 동네에 살면서 우리 동네가 왜 이렇게 발전이 더딘지, 왜 이렇게 외부에 장점들이 알려지지 않는 것인지 늘 속상해하고는 했다. 근데 이곳에 들어오고 금방 알게 되었다. 내부에서 이런 것들로 싸움을 하고 있으니 동네 발전이 제대로 될 리가 있나.
나는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라 결혼한 후에도 아이까지 낳아 평생을 살고 싶었는데, 30년이 넘게 지켜온 동네에 대한 애정이 임용 3년 만에 사라져 버렸다. 이 동네를 사랑하지만 이런 구조라면 더 이상 이곳은 발전이 힘들지 않을까?
**다른 지역에서 근무해보지 못해, 다른 자치구의 상황이 어떤 정도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제가 겪는 일이 모든 지방자치 공무원이 겪는 일은 아니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