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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 Sep 12. 2019

나의 아홉수

나의 첫 번째 슬럼프.

 어린 시절부터 남들이 흔히 말하는 '꿈'이라는 것이 없었다. 이것도 저것도 딱히 되고 싶은 것이 없었다. 그러다 어른이 되었고, 어른이 된 이후로 처음으로 가슴 뛰는 꼭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바로 '공무원'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한다니. 너무 가슴이 뛰었다. 또 취업준비를 하면서 느꼈던 수많은 차별과 부당함들이 공무원만 된다면, 공무원 사회에서만큼은 하나도 당하지 않을 것 같았다. 회사일도 열심히 하고 싶었지만 가정생활과 나의 개인적인 취미활동도 하며 살고 싶었던 나는 여러 이유로 공무원이 나에게 가장 적합한 일이라고 느꼈다. 매일매일 새로 배우는 각종 법 용어들과 문법들은 어렵고 암기는커녕 이해조차 어려웠지만,  명확한 목표가 있었기에 그 과정이 힘들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열정만으로 딱 1년 공부했었는데, 안타깝게도 결과는 불합격. 7급이었고 처음이라 열정만 앞섰지 서툰 것이 많았음을 스스로도 알기에 속은 상했지만 절망하지는 않았다. 1년만 더 고생하면 된다고, 그다음 해에 합격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첫 번째 시험이 끝나고, 내년을 위해 잠깐 쉬어가는 기간 중 이미 7급 공무원에 합격하여 세종시에 근무하는 대학교 후배를 만났다. 당연히 '네'라는 답이 나올 줄 알고 물어봤던 질문. '매일 칼퇴는 하니??'.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답변은 예상과는 다른 답변이었다. '아니요'. '발령받고 칼퇴해본 적 정말 손으로 꼽아요. 원래 회사 다니면서 하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워낙 일도 힘들도 매일 늦게 끝나서 집에 와서는 잠만 겨우 자요. 사 놓은 책도 거의 못 읽고, 하려고 했던 취미생활도 하나도 못하고 있어요.' 그때만 해도 세상에 무지했고 공무원에 무지했던 나는 그 답변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그녀에게 들은 공직생활은 나의 가슴을 뛰게 했던 그것과는 많이 달라 보였다. 사기업에서 느꼈던 것만큼은 부당하지는 않았지만 또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완전 이상적인 곳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매일 야근을 하고 법으로 정해진 근무시간 이상 근무를 할 때도 많아 일한 만큼 초과근로도 받지 못한다는 말이 정말 충격이었다.-국가직, 지방직인지에 따라 근무환경이 다르고, 또 같은 국가직이라도 본부인지 산하기관인지에 따라 다르며 같은 조직 안에서도 상사나 과 특성에 따라 달라지는 상황이 있다는 것을 그때는 전혀 알지 못했기에 공무원이 된다면 모두 그녀처럼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ㅎㅎㅎ )


 내 가슴을 뛰게 했던 불씨가 차갑게 꺼진 느낌이었다. 더 이상 가슴이 뛰지 않았다. 처음으로 공부가 하기 싫다고 느껴졌다. 힘들어도 힘들다고 느끼지 않았었는데,  그날 이후로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이 괴로웠고 고통스러웠고 공부가 너무 하기 싫었다. 목표를 보고 흥이 올라 해오던 공부였는데, 목표가 사라지니 흥이 사라졌고 모든 즐거움이 고통으로 변했다. 다행히 내가 싫어도 맘에 안 들어도 규칙은 지켜야 하는 성격이었기에 그 기간 동안 그렇게 공부가 하기 싫었지만 그래도 꾹 참고 책상에 앉아 버텼다. 뭔가 내가 실수로 잘못된 선택을 한 것 같지만 다시 취업시장에 뛰어들고 싶지 않았고, 다시 돌아간다면 오히려 그때보다 더 좋지 않은 결과만 얻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돌아갈 수 없었다. 게다가 작년과 달리 이제 2년째가 되기 때문에 꼭 합격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힘들어도 힘든 것을 모르게 만들었던 가슴을 뛰게하는 목표는 사라졌는데, 압박감은 더 커진 상황이었다.


 정말 버티기만 했었다. 그러다 보니 공부 능률도 떨어지고, 집중력도 떨어지고, 스트레스가 많아서 그랬는지 아프기도 참 자주 아팠다. 성격도 예민해지고 정말 총체적 난국이었다.  너무 싫지만 다음 해 8월까지 1년도 되지 않는 기간 조금만 참으면 그래도 뭐가 되든 될 것이라며 나 스스로를 다독이며 28살 하반기를 보내고 29살을 맞았다. 조금만 참으면 괜찮아질 것이다. 좋은 결과가 있을것이라며 내 스스로를 어르고 달래며 힘들게 버티고 있었는데 29살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더 큰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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