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의 종교를 넘어> 책 리뷰
Start date: 1월 23일, 2020
End date: 2월 7일, 2020
책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뉘어 있는데, 큰 범주에서 도덕의 비전을 다루는 첫 번째 파트와 좁은 범주에서 개인이 그러한 도덕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에 대한 두 번째 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사실, 첫 번째 파트는 원론적인 이야기도 많고 스르륵 읽어보면 "아 좋은 이야기이구나.."로 결론이 지어져서 큰 임팩트로 다가 오진 않았다. 두 번째 파트에서 그 좋은 이야기들을 개인들이 어떻게 실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읽어보고 곱씹어보는 시간이 되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종교를 넘어선 내적 가치, 도덕 윤리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종교를 넘어서서 이 가치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이유는, 우리 삶에서 이 가치들이 너무나 중요하며, 종교가 규정하는 정의에 국한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자비, 정의(Justice), 용서 등 내적 가치들에 대한 본질이 무엇인지, 왜 그것이 중요한지, 왜 종교와 관계가 없는지 등을 굉장히 논리적으로 또 과학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한 종교의 수장의 이야기라고 하기엔, 너무나 이성적으로 들렸다. 책을 읽으며, 이 점이 가장 좋았다. 흔히,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그러하고, 부처의 가르침이 이러하다” 가 아니라, 심리학자, 뇌과학자의 이야기를 빌어 종교를 넘어선 가치와 그 실천이 왜 중요한지를 설파한다.
자비의 실천을 왜 해야 하는가? 우리는 왜 도덕적인 자각을 해야 하며, 왜 그렇게 끊임없이 수행하여야 하는가? 등 종교에서 자주 던지는 질문은 굉장히 단순한 답으로 귀결된다. 그 답은, 나에게 좋고, 타인에게도 좋기 때문이다. 이를 가장 잘 드러내는 구절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것에 성공하든 그렇지 않든 자비의 혜택을 첫 번째로 받는 사람은 언제나 자기 자신입니다. 자비는 두려움을 줄이고 자신감을 불러일으키며 내면의 힘을 가져다줍니다.
자비의 목적은 타인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지만, 비록 그것이 실패하더라도 그 혜택을 가장 먼저 받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행복도 마음수행도 모든 것은 나에게 좋은 방향으로 이루어가야 한다는 이 책의 가장 큰 줄기는, 종교에 문외한 나에게는 가장 역설적으로 다가왔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내가 좋아하지 않거나 그 일의 혜택을 받는다고 느끼지 못하면 어떠한 일을 정말 깊이 그것을 다루거나 오래 유지할 수 없다. 특히, 마음에 크게 와 닿았던 11장과 관련해서도 아래의 구절에서 이 이야기가 잘 드러난다.
“명상 시간 초반에 큰 도움이 되는 수련은 수행의 혜택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한 가지 즉각적인 혜택은 수행 덕분에 강박적인 걱정과 계산, 마음이 습관적으로 점령되곤 하던 공상으로부터 잠시나마 숨을 돌릴 수 있게 된다는 점입니다.
중학교 때 처음 시작한 봉사활동 동아리가 계기가 되어, 대학교에 진학하고서도 다양한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하였다. 인도에 가서 아이들에게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기도 하고, 학교 근처의 작은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노인복지회관에서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의 끼니를 배달해드리기도 했다. 그때, 누군가 왜 그렇게 봉사활동을 하냐고 하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하곤 했다. 결국, 나는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돕는 나의 모습이 좋았고, 거기서 내 존재에 대한 힘을 가지게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근데 가끔 이런 생각이 들면, 오히려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내 이익을 위해서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이 도덕적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이 책이 나의 행복을 위해, 더 나아가 타인의 행복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힘을 다시 실어주었다고 느낀다.
이 책의 전체 챕터 중에서는 11장이 제일 좋았다. 앞 장들에서는 수많은 가치들이 종교의 영향 아래 있을 필요 없이 그냥 현실세계를 사는 우리 사람들이 추구해야 될 방향이라고 이야기하였다. 11장에서는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필요한 마음 수행에 대해 다룬다. 아래 구절도 마음 수행(명상)을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마음 수행은 선택한 대상이나 주제와의 친밀감을 깊게 하는 마음 훈련입니다. (...) 이 두 단어는 종종 '명상'으로 번역되며, (...) 본래 이 말의 뜻은 그것이 습관이든 바라보는 방법이든 존재하는 방법이든 상관없이, 어떤 것과의 친밀감을 키우는 과정입니다.
내가 처음 명상을 접한 건 초등학교 시절에 다녔던 검도 도장이었다. 관장님은 수업 전부터 축구하느라 뻘뻘 땀 흘리던 나와 친구들을 앉혀놓고 조용히 명상하는 시간을 갖게 하였다. 그때는 그냥 눈을 감고, 어떻게 하면 더 배를 빵빵하게 내밀고 단전호흡을 하는 것처럼 보일 까만 생각했던 것 같다. 다만, 종종 내 삶의 무게를 견디기 어려울 때 나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들면 그때 하던 단전호흡이 생각나곤 했다. 왜냐면 그게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명상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10년이 지난 뒤에야 차분하게 호흡을 하며, 검도 도장에 다니던 나와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시간은 명상을 하는 시간에만 머물지 않았다. 운동을 할 때도, 가만히 카페에 앉아 있을 때에도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감정을 바라보다 보니, 서른이 넘어서야 조금씩 나와 친해지게 되었다. 달라이 라마가 말한 “친밀감을 키우는 과정”이라는 것이, 이렇게 내 삶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그 대상을 나에게서 타인에게로, 내가 이루고 싶은 방향으로 돌리고 싶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
이 책에서 계속 곱씹어볼 구절이 꽤 있다. 나에게 새로운 관점을 주거나, 내가 앞으로 살아가는 데에 많은 힘이 되어줄 구절들만 모았다.
"무관심은 그 자체로 이기심의 한 가지 형태입니다. 우리가 도덕에 접근하는 방식이 진정으로 의미가 있으려면 당연히 세상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만 합니다."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과 주변 세상을 어떻게 대하는가는 대체로 자기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는 가에 달려 있습니다.
외로움에 대한 단 하나의 해독제는 그들 자신의 내적 태도라고 상기시키곤 합니다. 그 내적 태도는 인간을 향한 애정과 배려, 따뜻한 마음입니다.
도덕적 자각, 다시 말해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 모두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는 것은 마법처럼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이성을 사용하여 생기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도덕적 자각에 대한 교육은 다른 종류의 교육과 다르지 않습니다.
직면하는 도덕적 선택을 일일이 숙고한다면 다른 일을 할 시간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경우 세세하게 일을 처리할 시간이 없다면 내면화된 일반 규칙을 가지고 우리 행동에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유용합니다.
우리도 매일 도덕적으로 살려고 노력할 때 도움이 되는 기본 연장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조심스러움, 깨어있는 마음, 마음속 자각이 그것입니다. (...) 깨어 있는 마음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되살리기'라고 생각합니다. (...) 나날의 삶에서 조심스럽고 깨어있고 자각함으로써 자신의 행동과 말을 통제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자유의 토대입니다.
모든 파괴적인 감정이 갖는 한 가지 특징은 현실 인식을 왜곡하려는 성향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관점을 좁게 만들어 주어진 상황을 좀 더 넓은 맥락에서 보지 못하게 합니다. (...) 불만족의 밑바탕에 놓여 있는 원인을 다루는 것이 그러한 감정이 완전히 폭발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보다는 파괴적인 감정의 해로움을 막기 위한 좀 더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 그러므로 자신에게 마음을 열고 솔직해져야만 합니다. 무엇이 그 감정을 일으키는지,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느낌을 들게 하는지, 어떤 종류의 행동을 불러일으키는지 깨어 있는 마음으로 자각해야만 합니다.
삶의 일상적인 좌절은 어떻게 다루는 게 좋은가?
"해답이 있다면
낙담(걱정)할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해답이 없다면
낙담(걱정)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 8세기 인도 사상가 산티데바의 충고
명상과 마음 수행이 속세와 동떨어져 있을 이유는 없습니다. 어쨌든 마음 수행 그 자체는 신앙적 헌신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요구하는 것은 더 고요하고 분명한 마음을 키우는 것은 노력을 들일 가치가 있으며, 그렇게 하면 자기 자신과 타인에게 이익이 되리라는 인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