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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현서 Mar 29. 2024

스페인 3개월 살이(1)

- 출발하며 -

‘스페인 3개월 살이’를 하기 위해 출국한다.


 스페인 행 항공기는 인천-마드리드 직항선 으로 12시 55분에 출발해 14시간 반을 비행한다. 먼 거리임에도 직항선이고 국적기라 심리적으로 편하다. 직항선이 생긴 지가 14~5년 되지 않았나 싶다. 2000년도 초반기 직항선이 없을 때는 파리, 암스테르담, 프랑크푸르트 등을 경유했다. 요즈음도 여행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경유해 마드리드에 가는 노선도 있다. 그런데 1박 2일이 소요되어 힘이 든다.


 원래는 이코노미 클래스를 예약했다. 그런데 며느리가 이 번 여행이 시어머니 칠순여행이고 결혼 45주년 기념인데 편하게 여행하라고 좌석 업그레이드를 시켜주었다. 고맙게 생각한다. 프레스티지 클래스 좌석으로 여행하니 훨씬 쾌적하다. 이 글도 그 쾌적함을 느끼며 쓰고 있다.


 

그런데 왜 ‘스페인 3개월 살이’ 여행이냐고 ?


 이 여행은 순전하게 아내의 취향에 따른 것이다. 아내와 나는 2000~2001년 중 직장에서 마드리드에 파견되어 2년을 살았다. 마드리드에 살 때 시간 나는 데로 스페인 여행을 종종했고 여름휴가 때는 이베리아 반도를 일주하기도 했다. 특히 아내는 스페인 음식에 대해 관심이 많아 좋아했다.


 아내는 스페인에서의 추억을 종종 상기하며 다시 가고 싶어 했다. 은퇴 후 몇 년 뒤 2017년 가을에 스페인 2주 단체 여행을 함께 다녀왔다. 두바이-모로코-스페인 남부-중부를 여행하는 일정이었는데 나름대로 알찬 여정이었다. 그런데 단체 여행이라는 것이 편한 것도 있지만 만족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2019월 늦가을 결혼 40주년을 기념해 다시 ‘스페인 1개월 살이’ 여행을 함께 다녀왔다. 꽤 긴 여행기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귀국 길에 아내는 스페인에 대한 아쉬움을 보였다. 그래서 내가 ‘몇 년 후면 당신 칠순이니 그 때 다시 한 번 기간을 길게 잡아서 오자’라고 위로를 했다. 그 때는 그냥 한 말이었는데 현실이 되었다.


 당초 나는 동유럽을 가보지 못해서 스페인을 포함에 동유럽 국가들을 가보고 싶었다. 그런데 아내가 ‘유럽 국가들 대강 비슷한데 힘들게 멀리 왔다 갔다 하지 말고 스페인에서 계속 지내자’고 주장했다. 자신의 칠순 기념 여행이고 또한 이 여행이 자식들이 마련해준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자고 한 것이 ‘스페인 3개월 살이’ 여행이 되었다.


 나는 젊은 시절부터 직장관계로 20여년 넘게 8개 국가에서 해외생활을 하고 은퇴를 했기 때문에 해외여행에 대한 로망이 거의 없다. 사람 사는 것 어느 곳을 가나 본질이 같다는 것을 느껴왔기 때문에 호기심이 많지 않다. 이 번 스페인 여행도 마찬가지이다. 담담하다. 결국 아내의 여행가이드 겸 통역사 그리고 위기관리자 역할을 하고 다닐 것이다. 종종 불평불만을 들어가면서....

 그럼에도 여행을 준비하고 출발하면서 항상 과거 해외생활을 위해 출국과 귀국을 반복하며 만들어진 기억들이 이른 세 살이 된 지금에도 소환되어 같은 감정을 일으킨다.


 1981년에 베네수엘라에서 처음으로 파견 근무를 시작한 뒤 이어서 미국(마이아미), 도미니카공화국, 아르헨티나, 스페인, 멕시코, 독일(프랑크푸르트), 칠레 등 8개 국가에서 20여년을 살았다. 나는 지금까지 누구에게 말해 본적이 없지만 심적으로 어린 애들이 포함된 가족을 데리고 매 번 해외로 나갈 때마다 무거운 책임감과 긴장감으로 막막함과 외로움을 느꼈고 귀국할 때는 착잡한 안도감을 느끼곤 했다. 그러한 기억 탓인지 모르지만 나는 집을 떠날 때마다 이 기분에 휘둘리는데 이 번에도 마찬가지이다. 가만히 생각해봐도 크게 걱정되는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중요한 것을 남겨놓고 온 것 같은 불안함과 함께 그 막막함과 외로움이 엄습한다.


 ‘스페인 3개월 살이’에 대한 구체적인 여행 계획은 없다. 우선 마드리드에서 1개월 지내면서 마드리드와 그 주변 도시들을 바쁘지 않게 다니면서 그냥 일상적인 생활을 할 것이다. 그렇게 하려고 아파트를 1개월 임차했다.


 그 후에는 영국 런던을 일주일 정도 다녀 올 예정이다. 이 것도 아내가 희망하는 여정이다. 그리고 스페인 남부로 내려가 바르셀로나를 포함한 서부와 산세바스티안, 빌바오 등 북부를 돌아본 뒤 아마도 북부 도시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중부 도시들을 거쳐 마드리드로 올 것 같다. 이 것도 정해진 것이 아니고 그 때 가면서 조정하며 가게될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마드리드에서와 같이 한 곳에 장기적으로 머물지 않고 4-5일 간격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것이다. 과거에 몇 번 가본 도시도 물론 다시 갈 생각이다. 남부 안달루시아 지역의 그라나다도 이 번에 가면 다섯 번째이다.


 갑자기 이 글을 쓰면서 500 미터 거리에 살며 매일 할아버지 집으로 놀러왔던 세 돌에서 1개월 모자란 손자가 눈에 밟힌다. 여행을 떠날 때 가장 마음을 아련하게 만들었던 가족이었다. 떠나면서 가족의 귀중함을 다시 깊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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