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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현서 Apr 01. 2024

스페인 3개월 살이(4)

- 마드리드 추억 소환 그리고 꼬리곰탕 -

 

 오늘도 비가 계속 내리고 차갑고 강한 바람이 불고 있다. 마드리드에 도착한 뒤 을씨년스러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으니 ‘이제는 조금 좋아졌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하루 종일 이 날씨가 계속된다는 예보이다.


 아내가 오전 8시경 ‘오늘은...?’ 하고 물어온다. ‘오늘...?’ 하고 생각해 보니 막막하다. 마드리드에 살아보기도 했고 여행도 몇 번 와 보았으니 특별하게 생각나는 곳도 떠오르지 않는다. 프라도 미술관,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도 모두 몇 번씩 가본 곳이니 비 온다고 그곳에서 돈 내고 몇 시간 보내고 싶지 않다. 날씨가 좋으면 1.5 킬로미터 정도의 거리에 있는 ‘레티로 공원’에서 산책하고 늦은 점심을 먹으면 되지만 이런 을씨년스러운 날씨의 일상은 아니다.


 지하철을 이용해 2000년과 2001년 두 해 우리가 살았던 동네를 가보고 주말에 시장을 보고 쇼핑도 했던 ‘라 바구아다 쇼핑센터(Centro Comercial La Vaguada)’에 가서 몇 가지 식품을 사고 돌아오자는 것으로 합의했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은 약 5분 거리에 있는 그란 비아역이다. 마드리드 메트로 앱을 보니 그란 비아(Gran Via) 역에서 5호선을 타고 알론소 마르티네스(Alonso Martinez) 역에서 내려 10호선으로 갈아탄 뒤 플라자 카스티야(Plaza Castilla) 역까지 간다. 이곳에서 9호선을 타고 헤르레라 오리아(Herrera Oria) 역에 내리면 되겠다. 두 번 갈아탄다.



 마드리드에 거주했을 때는 차가 있으니 지하철을 이용할 일이 거의 없었다. 다만 아내는 아이들 학교 보내고 난 뒤 헬스장을 다니느라고 헤르레라 오리아역 – 산티아고 베르나베우(Santiago Bernabeu) 역을 매일 오갔다.


 지하철역에서 카드 티켓을 사는 것은 우리나라와 별반 다를 것 없이 무인 판매대에서 지시에 따라 하면 된다. 다만 탑승 플랫폼 찾아가는데 조금 어리둥절했지만 곧바로 눈치챘다. 각 호선 색깔을 보면서 안내 표지판을 확인하면 되는데 안내 표지판은 종착지역을 꼭 명기해 탑승방향을 가늠하게 했다. 이 것만 확인하면 된다. 지하철 풍경이 생소하게 느껴지면서 정말 우리나라 지하철이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마드리드 지하철은 협괘이며 전동차 문은 승객이 버턴을 눌러야 개폐된다.


 별문제 없이 헤르레라 오리아역에 내렸다. 역사를 나오니 비바람이 친다.



 헤르레라 오리아역에서 우리가 거주하던 아파트까지는 대강 15분 거리였다. 아내와 나는 먼저 살던 곳을 돌아보고 우리가 자주 갔던 아파트 아래쪽 3분 거리에 있는 ‘라 하이마(La Jaima)’라고 불리는 카페 겸 식당에서 점심으로 타파스(Tapas)를 먹는 것으로 합의했다.


 20년이 넘는 세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크게 변한 것은 없이 과거 그 풍경이다. 신시가지 중상층 주택가답게 구시가지의 낡은 건물의 어수선한 풍경과는 다르게 차분하다. 아내와 지난 얘기를 하면 빗속을 걸어오니 멀리 2년 동안 살았던 아파트 건물이 보인다. 정말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



 라 하이마 카페에 들러 식사를 하려고 했더니 부활절 연휴였는지 영업을 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포도주와 곁들여 먹었던 이베리코 하몬(Jamon Iberico)은 일품이었다. 다 똑같은 하몬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잘 썰어내는 것에 따라 풍미가 달라진다. 이 카페에는 이 것을 잘하는 나이 드신 수석 종업원이 있었다. 2019년에 스페인 1개월 살이 할 때 들렀더니 그분은 은퇴하고 당시 젊은 종업원이 이를 이어받아 일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가니 어렴풋하게 ‘코레아노(한국인)’ 하고 알아보았다.  



 헤르레라 오리아역에서 라 바구아다 쇼핑센터까지 가려면 긴 건널목을 지나야 한다. 그 지나가는 길에 넓은 파세오(통행보도)가 있는데 이곳에서 조깅을 하기도 했다. 입구는 라 바구아다 쇼핑의 정문이 아니고 뒷문 쪽이다. 뒷문 쪽 입구를 향해 가다 보면 언덕배기에 큰 나무들이 보이는데 20년 전에는 내 허리 높이도 안 된 어린 나무들이었다. 세월의 간격을 느끼며 들어선 쇼핑센터는 리모델링이 진행 중이었다. 어수선하다. 부활절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지 많은 사람은 없지만 그렇다고 적지도 않다.



 아내는 여행 출발 전부터 마드리드 가면 꼬리곰탕을 해 먹겠다고 다짐을 하곤 했다. 나는 냄새가 주변에 흐를 수가 있으니 자제하라고 했지만 아내는 소고기 삶은 냄새라 문제가 될 것 없다고 했고 마드리드 살 때 아이들 많이 해 주었는데 왜 그러냐고 핀잔이다. 송아지 꼬리라고 하는데 싱싱하고 좋은 품질의 소꼬리를 두 팩 구입했다. 가게 주인이 한 팩이 한 마리 꼬리라고 한다. 모두 52유로를 주었는데 20년 전에는 10유로면 살 것이 많이 올랐다고 말한다. 동양인이 소꼬리를 먹는다는 것을 알고 꼬리를 잘 다듬어 상품화하고 가격을 올렸다는 말이 있다.



 소꼬리를 샀으니 곰탕을 만들 파, 마늘, 후추 등을 쇼핑센터 내 알캄포(Alcampo) 슈퍼마켓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야채 전문가게에서 구입했다. 구입량이 적어 크고 복잡한 슈퍼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런데 소금과 쌀을 구입할 수가 없어서 결국 슈퍼마켓에 들어갔다. 넓은 매장에서 우리가 먹는 쌀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할 수 없이 종업에게 물어 쌀을 구입했다.



 구입한 식품 등으로 지하철을 타지 않고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도 택시를 거의 타 본 기억이 없는데 우버 앱을 사용해 해외에서 택시를 부르자니 생소하기 이를 데가 없다. 우버 앱을 가동해 비속에 우산 들고 돋보기 쓰고 입력을 하려니 자꾸 오류가 생겨 당황하게 한다. 젊은 사람들은 양손으로 번개같이 하더니만 나는 정말 둔하다. 겨우 우버를 부르는 데 성공하고 ‘아이고 이른 세 살 나이에 이 정도 했으면 준수하지 뭐. 이제 다음부터는 수월하게 하겠지’하고 스스로 위로했다. 요금은 17유로 나왔는데 잔돈이 없어 20유로 주었더니 대단하게 고마워한다.


 나는 시차와 피곤함으로 잠들어 버리고 새벽 2시에 일어나 보니 벌써 곰탕 만들 준비를 다 해놓았다. 소꼬리를 찬물에 담가 피 빼는 것 보고 잤는데 그 사이 삶아 고기 분리하고 기름 뺀 육수를 크게 한 솥 마려해 놓았다. 밥도 해놓았다.



 여행기를 쓰고 있는데 누룽지를 끓여 준다. 나는 결혼 이후에 누룽지를 참 많이 먹었다. 아내는 전기밥솥을 잘 사용하지 않고 항상 돌솥이나 냄비 또는 가정용 주물 가마솥에 밥을 짓는다. 그래서 평생 누룽지를 먹었다. 그런데 해외여행 중 누룽지라니.... 반찬이 없어 라 바구아다 쇼핑센터에서 사 온 염장 피클 등과 함께 먹으니 그런대로 구색이 맞다. 위가 개운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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