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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현서 May 13. 2024

스페인 3개월 살이(45)

- 알람브라 궁전과 토요일의 도시 풍경 -


 알람브라 궁전 온라인 입장권이 없다. 내 일정이 유동적이기 때문에 온라인 입장권을 미리 사둘 수도 없다. 우선 다른 지역에서와 같이 현장구입이 가능한지 알아보기 위해 아침 산책 겸 궁전에 가보기로 한다. 거리를 측정해 보니 입구까지 2.3 킬로미터이다.


 구글 맵을 켜고 숙소를 나선다. 아침 식사는 궁전 근처에서 할 생각이다. 나는 구글 맵이 2019년 11월 그라나다에 머물 때 아침 산책을 했던 ‘그라나다의 문(Puerta de las Granadas)’에 데려다줄 것으로 생각했다. 그라나다 문을 통과하면 ‘알람브라 숲(Bosque de la Alhambra)’ 이 나오고 약간 경사진 길을 길게 따라 올라가다 보면 궁전 입구를 만나게 된다. 아내도 그렇게 생각하고 따라온다. 하여튼 출발은 상쾌했다.



 알람브라 궁전의 황토색 담장이 얼핏 보이는 지역에 들어오고 길이 경사지고 있는데 구글 맵이 안내하는 길이 내 예상과 틀리다. 오르막 계단이 길게 보이고 계단 양쪽에 하얀 집들이 늘어서 있는 길이다. 무릎이 좋지 않은 아내의 안색이 별로이더니 구글 맵 비난을 하기 시작한다. 구글 맵이 숲길 대신 다른 언덕길을 선택해 알려준 것이다. 생각해 보니 사실 알람브라 숲길은 구글 맵이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목적지로 검색해 보니 나온다. 내가 실수한 것이다.



 아내의 불평을 귓등으로 흘리면서 새롭게 만난 주변 풍경에 관심을 가지며 땀을 조금 흘렸더니 결국  이 길은 숲길의 끝과 만난다.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는 내게 불만을 한 것이 아니고 구글 맵이 잘못 안내하기 때문에 화를 낸 것이라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아침 산책을 오지게 잘 한 셈이다.



 궁전 입장객들이 줄 서 있다. 입장권 매표소에 갔더니 줄을 쳐서 막아놓았다. 앞에 서있는 여성 안내원에게 입장권 구입여부를 물어보니 ‘No Online ticket, No ticket’이라고 말한다. 이곳은 아예 오프라인 입장권을 판매하지 않는다. 그래서 줄이 없다. 주변 풍경만 사진에 담는다. 2019년 11월은 노란색이었는데 지금은 녹색으로 바뀐 것 빼고는 달라진 것이 없다.



 땀도 식힐 겸 매표소 곁의 카페에서 아침 식사를 한다. 크루아상과 카페 콘 레체를 주문한다. 아내에게 오렌지 생즙 주스를 주문해 주었더니 맛을 보고 지금까지 마셔본 것 중 가장 맛있다고 하며 마셔보라고 한다. 마셔보니 지금까지 마셔오던 것과 정말 차이가 난다. 달고 시고 진하고 알갱이 식감이 입안에서 느껴지고.... 아마 질 좋은 오렌지를 손으로 눌러 짜낸 것이다. 아침 식사 값도 관광지 특가가 전혀 없는 착한 가격이다.



 알람브라 숲을 산책한 뒤 점심을 먹으로 시내로 가기로 한다. 궁전 외곽 성을 돌아다니다 문득 주위를 보니 내가 이미 알람브라 궁전 안으로 들어와 있다. 다시 한번 가늠을 해보니 입장권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알람브라 궁전에서 ‘나스리 왕궁’과 ‘헤네랄리페’ 영역만 볼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그러니까 입장권이 없는 방문객들은 아쉽겠지만 이 두 곳을 빼고 보고 가라는 뜻이다. 나는 네 번을 가보았으니 가지 않아도 된다. 궁전의 이곳저곳을 돌아본다. 마지막 방문했을 때 노란 풍경이 녹색의 풍경으로 바뀐 것 말고는 새로운 것이 없다. 그래도 사진에 담아 온다.



 아침 햇빛을 받은 몇몇 풍경들이 아름답다.



알람브라 궁전에서 나와 알람브라 숲길을 산책하며 걸어 내려온다. 시원한 그늘 속 벤치에 앉아 숲 속의 편안함을 느낀다. 알람브라 궁전을 방문한다고 하더라도 이 숲을 알고 돌아다니는 관광객은 많지 않다. 나는 2019년 11월 그라나다에 왔을 때 우연하게 이곳에서 5분 거리에 있는 호텔에 머물렀다. 머무는 동안 이 숲에 들러서 몇 번 산책을 했었기 때문에 대강 숲길을 알고 있다.



 입장권이 없어 들가보지 못한 헤네랄리페와 나자리스 궁은 20019년 11월 찍은 사진으로 소개한다.



 숲 아래 끝에 있는 그라나다의 문을 통과해 아래 길로 내려오니 도로가 사람으로 막혀 있고 말을 타고 있는 사람들로 길이 차있다. 무슨 행사를 하는 것 같다. 일부 여성들도 전통 옷을 입은 여성들이 보이고 말과 마차기 도로를 매우며 행진하고 있다.



 이들을 피해서 내려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을 찾는다. 아내가 중국음식을 원해서 구글 맵을 돌려 찾아갔더니 폐업이다. 그래서 또 다른 중국 식당을 선택해 찾아가 보니 아예 그 주소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 망한 것 같다.


 그래서 스페인 식당에 들어가기 위해 길을 가늠하고 있는데 아내가 갑자기 2019년 올 때 맛있게 먹었던 식당이 있는 길목과 비슷하다며 잠깐 기다리라고 한다. 그러더니 한 골목길로 들어가 보니 과연 그 식당이 있다. 내가 거듭 얘기하지만 아내의 길눈과 방향성은 매우 정확하다. 지형지물을 본능적으로 잘 기억하는 것 같다.


그때 아내가 이 식당에서 문어 구이를 아주 맛있게 먹었다.



 식당에 들어가니 내장이 바뀌어 분위기가 다르다. 그때의 차분함이 부족하다. 계절 탓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때는 늦가을이었고 지금은 늦봄이니까. 문어 구이 요리를 물어봤더니 지금은 없다고 한다. 연어 샐러드와 국물이 많은 파에야를 주문해 나눠먹는다. 아내는 음식이 역시 정갈하고 맛있다고 아주 만족한다.



 식사 후 2시 반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알람브라 숲을 나설 때 보았던 말 탄 사람들의 긴 행렬을 다시 만난다. 대로를 차지하고 말과 마차 행렬이 이어진다. 어떤 행사일까?



 아마 우리가 그라나다 명동 길을 통과하고 있는 모양이다. 밑바닥이 돌로 잘 닦여져 있고 화려한 상가들이 들어서 있는 긴 도로를 통과한다. 도로 위 하늘은 햇빛 가리개로 덮어놓았다, 물어보니 이 햇빛 가리개는 5월에 설치한 후 9월에 걷어낸다고 한다. 오후의 햇빛이 차단되니 걷기에 좋다. 3시가 넘어서인지 상가 문을 대부분 닫았다. 안달루시아 지방은 대강 오후 3시에서 7시 또는 8시까지 상가를 닫는다. ‘시에스타(siesta)’ 시간이다. ‘시에스타’는 ‘낮잠’을 의미하며 점심식사 후에 짧게 수면을 취하는 현지 관습이다. 이 때는 붐볐던 카페에도 손님이 없다. 한두 팀이 있다 하더라도 아마 관광객일 것이고 카페 자체도 브레이크 타임에 들어간 곳도 많이 보인다.



 우리도 현지 관습에 적응하기로 하고 오후 3시 이후에는 강한 햇빛도 피할 겸 가급적 숙소에서 머물기로 합의한다.


 숙소에 돌아와 씻고 난 뒤 며느리가 보내 준 손자 동영상을 몇 번 돌려보면서 즐거워한다. 세돌 되기 한 달 전에 여행을 시작했는데 한 달 반 사이에 하는 짓이 많이 변했다. 더 활동적이고 무엇보다도 말을 조리 있게 하고 발음이 분명해졌다. 아내는 동영상을 자꾸 돌려보고 즐거워한다. 8시쯤에 나가자고 했는데 자기는 나가지 않겠다고 한다. 나는 가볍게 차려입고 부근의 슈퍼에서 필요한 것을 구입하고 돌아온다. 역시 길가에 사람들의 움직임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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