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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현서 May 14. 2024

스페인 3개월 살이(47)

- 알람브라 숲과 도시 산책 -

 그라나다 일정을 길게 잡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스페인에서의 일상을 보내기 위해 여행 중이기는 하지만 이틀 정도 짧았어도 좋았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숙소를 나선다.


 아침 식사는 어제 아침에 갔던 누에바 그라나다 광장 근처의 ‘라 쿠에바’에서 하기로 한다. 약 1킬로미터를 걸어가야 한다. 그곳에서 식사를 한 뒤에 5~6백 미터 떨어져 있는 알람브라 숲에 가서 산책할 생각이다. 광장 근처 화단에서 정원사들이 꽃을 관리하고 있다. 어느 곳에서나 사회 시스템이 잘 운영되기 위해 수고하는 사람들이 있다.



 월요일 아침이어서 그런지 길거리에 관광객들의 움직임이 많지 않다. 주말을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출발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투숙하고 있는 호텔에서도 나올 때 보니 관광버스 두 대가 대기하고 있었고 투숙객들이 짐을 싣고 있었다.


 아내가 구글 앱을 켜지 말고 식당을 찾아가지고 한다. 이제 꽤 익숙해진 길눈으로 가늠하며 목적지에 도착한다. 나는 어제 소화불량으로 불편한 것이 조금 남아 있어서 카페 콘 레체와 크루아상을 그리고 아내는 어제 먹었던 아침 메뉴를 주문했다. 아내는 베이컨과 소시지가 어제같이 조금 더 바삭하게 구워지지 않았다고 한다.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모양이다. 여기에 갑자기 주변에서 강한 체취가 느껴져 비위가 상한다고 한다. 나도 그 체취를 이미 느꼈다.  차이는 아내가 앉은 의자와 등을 맛대고 있는 의자에 어떤 젊은 여성이 앉은 것밖에 없다.



 안달루시아 지역으로 내려오면서 나같이 후각이 둔감한 사람도 냄새로 성가시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향수나 콜로냐, 체취, 사람들의 옷과 식당의 컵 등 주방 기구에서 나는 세제 향, 향이 첨가된 담배연기로부터 오는 냄새는 다른 지역과 차이가 없다 하더라도 안달루시아 지역은 아랍의 영향으로 향을 태우는데 그 향  냄새가 이곳저곳에서 많이 난다. 내가 머물고 있는 호텔도 로비에 들어서면 그 향이 강하게 느껴지고 엘리베이터, 복도에도 계속 배어있다. 일부러 향을 뿌려 놓은 것 같다.길을 걸으면서도 향 태우는 냄새가 느껴진다. 아마도 향을 피워놓는 상점때문인 것 같은데 특히 기념품을 파는 가게일수록 더욱 그렇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알람브라 숲길을 따라 올라간다. 그라나다의 문에 도달하기 전 길목에 여행사가 눈에 보여 들어갔더니 알람브라 궁전 입장권을 두 배로 불려 팔고 있다. 구입 여부를 물어보니 7월분까지 다 팔렸다고 말한다. 어떤 시스템으로 장사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참고가 될 것 같아 여기에 기록을 남겨둔다.



 아내는 식사 후라 걷기가 좀 부담된다고 한다. 급할 일이 없으므로 몇 번을 돌 벤치에 앉아 쉬어간다. 그런데 돌 벤치는 나무 벤치와 다르게 앉으면 엉덩이와 허벅지에 싸늘함이 느껴진다. 등받이도 없어 안락하지 않다. 그래서 오래 앉아 있지 못하고 대충 다시 일어나 걷는다.



 아침 숲길은 햇빛을 받아 청량하게 빛난다. 햇빛을 받은 이파리들은 맑은 초록빛으로 빛나 강한 음영을 만드는데 나는 그 색감을 매우 좋아한다. 생동감이 느껴진다. 이 것은 내가 톨레도 골목길에서 보는 햇빛에 반사되는 황토색이 주는 안정감과 평안함과 같은 것이다. 너무 주관적이어서 아내에게도 공감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알람브라 궁전의 개방된 곳을 다시 둘러본다. 참 신기한 것이 이곳은 카메라 앵글로 보면 모든 곳이 아름답다. 사진이 된다. 특히 내가 경험한 알람브라 궁전은 봄에 오면 봄의 싱싱한 정취가 있고 여름에 오면 여름의 강렬한 느낌이 있으며 가을에는 쓸쓸함이 배어있다. 2001년에는 가을의 가랑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에 왔는데 쓸쓸함과 비장감이 깃들어 있었다. 이곳의 역사를 좀 알고 있어서일까?



 오후 1시가 넘어서 시장(메르카도, Mercado) 구경을 하기 위해 시내 길로 내려온다. 그라나다의 문을 거쳐 내려오는 길목에 사탕수수 생즙을 짜주는 카페가 있다. 나는 보지 못했는데 아내가 먼저 보고 마시겠다고 얘기한다. 1990년 초 카리브 해에 있는 도미니카(공)에서 근무할 때 길거리에서 마셔보고 그 이후에 마셔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단순한 즙은 한 컵에 2.5 유로, 럼을 추가하면. 5 유로이다. 한 잔을 주문하니 사탕수수 대를 넣고 기계로 압축한다. 하얀 거품과 함께 즙이 흐른다. 아내가 마셔보고 나보다 맛을 보라고 한다. 마지못해 한 모금 마셨다. 진한 사탕수수 천연 향이 느껴지고 무척 달다. 그런데 이 사탕수수는 어데서 가져왔을까? 열대성 기후에서 성장하는 작물인데...



사탕 수수 즙 파는 카페 바로 앞에 있는 토산품 점에서 아내는 자신의  가죽 실내화를 한켤레 구입한다. 가죽 제품에 신기에도 좋을 것 같은데 가격이 아주 착하다. 19 유로이다.



 아내가 메르카도를 가보자고 해서 검색해 보니 ‘산 아구스틴 시장(Mercado de San Agustin)’과 ‘아랍 시장(Mercado Arabe)’이 있다. 모두 멀지 않은 곳에 있어 걸어간다. 산 아구스틴 시장 건물이 반듯해서 기대하고 들어갔는데 마드리드의 산 미겔 시장이나 코르도바의 시장과는 차이가 있다. 입점 업체 수도 많지 않고 썰렁하다. 한 번 둘러보고 난 다음 바로 나온다.



 아랍 시장은 건축물이 없고 일정한 거주 지역에 상점과 카페와 식당이 어우러진 곳이다. 아람 특유의 향냄새가 강하게 나는 골목을 돌아다닌다. 아랍 토속 예술품들은 매우 정교하고 색상도 아름다우나 우리와는 정서가 틀려서인지 구매하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냥 눈요기하는 것으로 끝이다.



 역시 3시가 가까워지자 우리도 더위에 걸어다니는 것이 힘들다. 거리도 파장 분위기가 되면서 조금 어수선해진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의 카페들도 닫었거나 열었어도 손님들이 없어 비어있다. 숙소로 돌아와 아내는 세탁도 하고 짐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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