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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현서 May 15. 2024

스페인 3개월 살이(48)

- 구글 앱을 끄고 보는 그라나다 도시 풍경 - 

 오늘 특별하게 계획된 일정이 없다. 우선 아침 식사를 하면서 갈 곳을 정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내가 어제 산 가죽 실내화에 하자가 있어서 교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가게가 알람브라 숲의 그라나다 문을 나와 50여 미터에 있으므로 실내화도 바꿀 겸 알람브라 숲의 가보지 않은 곳을 돌아다녀 보자는 생각이 떠오른다. 아침 식사는 그 주변에 가서 하기로 하고 출발한다.


 호텔을 나서며 구글 앱을 켰더니 아내가 앱을 끄고 가자고 한다. 앱을 켜면 내가 고개를 숙이고 걸음이 빨라져서 주변을 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골목길로만 안내해서 불편하단다. 맞는 말이다. 2019년 11월 스페인 한 달 여행 중 나는 구글 앱을 자주 사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곳저곳을 무작정 다니다 보면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우연하게 만나기도 했다. 


 앱을 끄고 아내에게 방향을 잡아 보라고 했더니 대로를 선택해서 걷는다. 알람브라 궁전이 그라나다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으니 대로에서 산등성이가 보이는 쪽으로 가면 된다는 논리이다. 군대 문턱에도 가보지 않은 사람이 지형지표를 가지고 판단한다. 대로를 조금 가니 공원이 보이고 컨벤션센터가 크게 자리잡고 있다. 가로등을 수리하는 공원 관리자들도 보인다.



 아내는 공원을 지나서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방향의 반대쪽으로 앞서 간다. 급할 것도 없고 또 길이란 것이 가다가 아니면 돌아오면 된다는 생각으로 따라가니 뜻밖에 강을 만난다. '아니 그라나다 시내를 흐르는 강이 있었나?' 하고 생각을 한다. 이 강은 우리 수준에서 보면 하천이다. 아내는 바로 ‘탄천’이라고 표현한다. 탄천은 우리가 사는 분당을 새로 지르는 하천이다. 나중에 지도에서 보니 강의 이름은 헤닐 강(Rio Genil)이고 동서방향으로 흐른다.



 이 강은 좁지만 아주 잘 정비되어 있고 산책로가 훌륭하다. 강둑과 바닥이 모두 돌로 건축되어 있다. 물은 많지 않지만 바닥이 돌이고 경사가 있어 물 흐름이 매우 빠르다. 강변 지역은 주거지로 아주 정갈한 분위기이다. 학교들이 많은지 학생들의 등교모습이 많이 보인다. 강변 풍경이 아주 보기 좋다. 더군다나 오늘 아침은 흐리고 선선해서 산책하기가 매우 좋다. 기온을 보니 18도이다. 갑자기 기분 좋은 산책을 하게 된다. 과연 지도 앱을 끄니 다른 풍경이 보인다. 



 강 산책로에 플라멩코 동상도 보인다. 누구를 기리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하게 플라멩코를  상장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동상에 새겨진 글은 '그라나다가 플라멩코에게'로 번역된다. 



 강을 따라 올라가다 좌측 건너편을 보니 멀리 산등성이가 보인다. 아내 말대로 강을 타고 가다가 적당한 곳에서 다리를 건너 산등성이가 보이는 방향으로 가면 알람브라 궁전으로 갈 것 같다.



 강을 건너가니 강변을 따라 길게 조성된 공원에 생각했던 것보다 수목이 우거지고 잘 관리되고 있다. 이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지나간다. 



 알람브라 궁전을 가기 위해 방향은 옳게 잡았지만 막상 도시의 도로에 들어오니 대로에 연결된 골목길 중 어느 골목길로 들어가야 될지 막막하다. 골목길은 잘 못 들어가면 뱅뱅 돌기가 쉽다. 구글 앱을 켜니 그라나다 문까지 1.5 킬로미터가 나온다. 그러니까 우리가 호텔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강을 만나고 강변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그래서 알람브라 궁전이 있는 산등성이를 보긴 보았는데 그것이 그라나다 문이 있는 반대 쪽이다.  이 것은 나중에 호텔에 돌아와서 지도를 보고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그 때도 그런 감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고~ 며칠 전같이 또 언덕 길을 올라가려면 고생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로를 걷다 보니 주변에  아랍 건축 양식의 잘 관리된 주택들이 아름답다. 특히 주변의 공원 풍경과 장 어울린다. 



 이제는 대충 골목길을 따라 언덕배기를 올라갈 지점이다. 아내는 올라가다 보면 어디선가 만날 것이라고 한다. 언덕 길을 오르다 만난 한 할머니가 알람브라를 가는지 먼저 물어보면서  대강의 방향을 알려 주신다. 


 아침을 먹지 않고 오래 동안 걸어서 아내는 배가 고프다고 한다. 먹을 수 있는 곳을 빨리 찾아야 하는데 보이지가 않는다. 그런데 다행이 가파른 언덕의 끝에 넓은 공간의 광장이 나온다. 당연하게 가페 식당이 있다. 



 광장의 카페 식당은 그야말로 과거 스페인 동네 카페 모습이다. 외부와 내부 모습도 그렇지만 일하는 종업원을 포함해 앉아서 아침 식사를 하는 손님들의 목소리가 거의 외치는 수준으로 왁자지껄하다. 토스트에 커피 그리고 오렌지 주스를 주문한다. 토스트는 양이 많아 다 먹지 못하고 포장을 해 가져왔다.



 아내는 자신이 선택한 것이라 언덕을 올라가면서도 별 불평이 없다. 오르막길에서 보는 예쁜 주택과 석류꽃을 본다. 



그렇게 해서  알람브라 숲에 도착한다. 결국 또 다른 루트를 통해 알람브라 숲을 둘러보게 되었다. 좋은 경험이다. 뜻밖에 다닐 강을 만나 좋은 풍경을 보며 기분 좋게 산책을 한 것도 오늘 누린 호사이다.



 그라나다의 문을 통해 내려와 실내화를 바꾸고 아래쪽 도시 상가를 기웃거리기도 하고 벤치에 앉아 사람 지나가는 것을 구경하다 보니 점심식사 때가 된다. 아내에게 지난번 가보지 못했던 중국 음식점을 가보겠냐고 물었더니 동의한다. 이번에는 구글 앱에서 적당한 식당을 찾아 전화해 보니 12시 30분에 영업을 시작한다고 한다. 15분 정도 걸어가면 되는 곳이다. 이번에는 앱을 켜고 찾아간다.


 식당은 조촐하다. 우리가 첫 손님이기는 한데 배달음식도 하는지 전화벨이 계속 울린다. 그런데 모두 중국어로 답한다. 현지에 사는 중국인들이 배달 주문을 하는 것 같다. 완탕수프를 전식으로 하고 소고기, 새우, 야채 요리 그리고 흰밥 한 공기를 주문한다. 보통 2인인 경우 요리 3개 주문하면 조금 남는다. 요리는 따끈하게 잘 나왔다. 여행 중에 먹은 중국음식 중 가장 좋았다고 말한다. 내일 점심때 다시 오자고 해서 그러자고 했더니 그냥 하는 얘기란다. 잘 먹었다는 표시이다. 



 점심 식사를 마친 뒤 2시가 넘어 호텔로 향했는데 오늘은 날씨가 그렇게 덥지 않고 걷기에 마치 좋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목이 갑자기 소란하다. 교사들이 시위를 하는 것 같은데 많은 사람들이 나와있다. 소리를 지르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주장하는 것은 '공교육을 위하여: 정교사 증원'이다. 세상은 어디를 가나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시위를 뒤로 하고 앱을 켜지 않고 대충 방향을 정해서 돌아온다. 그런데 우리가 항상 오던 길이 아니다. 그 반대편으로 호텔에 접근하고 있는데 지하철 입구 같은 것이 보인다. '그라나다에 지하철이 있나?' 하는 생각으로 호기심이 생겨 아내에게 내려가 보자고 했더니 자기는 밖에서 기다리겠으니 보고 오라고 한다. 



과연 지하철이다. 역내 보안요원에게 문의해 보니 1개 노선이 있다고 한다. 지하철역은 새로 지은 것인지 아주 정갈하다. 노선은 그라나다 도시의 중앙을 관통하고 있어서 편리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3시가 가까운 시간에 분주하던 길이 갑자기 조용해진다. 호텔 주변의 상점들도 문을 이미 닫았다. 호텔도 관광객이 이미 많이 빠진 것인지 로비가 한가하다. 우리도 이제 이틀 밤 자면 떠난다. 다음 행선지는 카르타헤나(Cartagena)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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