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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현서 May 24. 2024

스페인 3개월 살이(56)

- 로마 유적 위에 만들어진 타라고나 그리고 미라클 해변 - -

 타라고나 일정은 2박 3일이다. 오고 가는 날 빼면 온전한 날은 하루인 셈이다. 그래서 오늘은 아침 일찍 해변 산책을 하고 오전 중에 주요 로마 유적지를 찾아본 뒤에 타라고나 항구 쪽에 있는 해산물 식당(호텔에서 추천)에서 점심을 먹는 것으로 계획한다. 점심 후에는 항구에서 해변에 나있는 산책로를 따라서 2.5 킬로미터를 걸어 호텔로 돌아올 생각이다.


 7시 조금 넘어 아침 식사를 마친 뒤 호텔에서 나와 5분 정도 아래 길로 내려와 해변 길로 들어선다. 해변으로 내려가지 전 왼쪽으로 두 개의 방어성(Fortaleza)이 보인다. 아침 햇살을 받아 주변풍경과 어우러져 아름답다.



 해변도 오늘은 바람이 없어 걷기에 좋다. 해변 아랫길로 내려가 이곳저곳 돌아본다. 낚시하는 사람도 있고 조깅하는 사람들도 간간이 보인다. 전체적으로 조용한 아침 바다 풍경이다.



 해변을 돌아본 뒤 로마 유적지를 돌아보기 위해 다시 호텔에서 나온다. 로마원형경기장까지는 대강 1 킬로미터가 못 미친다. 원형경기장은 해변을 바라보는 위치에 있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로마 유적지는 대부분 해변과 가까운 곳에 있다. 당연한 이치이다. 호텔은 비아 아우구스타(Via Augusta) 길에 있는데 이 길의 끝 부분에 원형경기장이 있다. 원형경기장은 길 아래쪽에 있다. 계단을 이용해 내려간 뒤에 입장할 수 있고 입장한 뒤에도 오르고 내리고 해야 하는 구조이다. 아내는 일찌감치 감을 잡고 나만 가서 보고 오라고 말한다. 자기는 널리 보면 된다고 말한다. 무릎 때문에 그렇다. 



 원형 경기장 입장료는 5유로인데 경로 요금은 2.5유로이다. 하여튼 경로대우는 잘 받고 다닌다. 원형경기장은 아직도 발굴 중인 것 같다. 여기저기에 발굴 작업 터가 보인다. 로마에 있는 원형경기장보다는 규모가 압도적으로 작지만 내려가서 보니 구조는 비슷하다. 아래에 모래사장이 있고 모래시장 아래 지하에는 통로도 있으며 관중들 좌석아래 지하에는 방들이 있다. 아마 검투사들이나 관리인들이 대기하고 있는 장소일 것이다. 문득 세월의 덧없음이 내려쬐는 아침 뙤약볕 속에서 문득 느껴진다.



 전차경기장은 호텔에서 원형경기장으로 오는 길을 중심으로 정확하게 반대편에 있다. 그러니까 길에서 해변 쪽은 원형경기장 그리고 길 뒤쪽에는 전차경기장과 로마 행정관청(Procuraduria) 유적이 있다. 참고로 호텔에서 걸어온 길 명칭이 ‘비아 아우구스타(Via Augusta)’인데. ‘황제의 길’이란 뜻이다. 아주 오랜 시절 그러니까 기원전부터 중요한 길목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전차경기장이라고 하면 그 규모가 아주 커야 하는데 실제 발굴되어 보여주고 있는 유적지의 규모는 그렇게 크지 않다. 고대로마 행정관청 건물이 높게 솟아있고-오랜 시간 개보수 되었겠지만- 발굴된 유적지는 전차경기를 했다고 보기에는 작다. 



 그런데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발굴된 곳은 정말 일부분이고 이 주변의 주거지와 상가지역 일대가 전차경기장이었다. 즉 전차경기장위에 주거지가 지어지고 상가 건물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들어섰다는 것이다. 주변 골목을 돌아다녀보고 그 사실을 깨달았다. 현재 주거하고 있는 건물의 벽이나 기초가 모두 옛날 유적지의 그것들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평범한 주택인데 입구 철책 문 사이로 보니 집안에 유적지의 돌 벽이 묻혀있어 발굴 중이다. 그러니까 이 근방 땅 속은 거의 유적지인 것 같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타라고나는 사실상 고대로마 시기에 중요한 거점 지역이었다.  



 로마극장을 걸어서 어렵게 찾아갔는데 허탕이다. 언덕의 골목길을 힘들게 올라갔는데 보이지 않는다. 구글 앱에는 도착한 것으로 나온다. 할 수 없어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았더니 지금은 수리 중이라 폐쇄되었다고 한다. 철조망 사이로 내려다보니 수풀만 우거지고 잘 보이지도 않는다. 



 다시 언덕길을 내려와서 오후 1시 가까운 시간에 항구로 내려온다. 항구는 그런대로 깨끗하게 조성되어 있지만 분주한 곳은 아닌 것 같다. 



 항구의 주택가 방향에 식당들이 들어서 있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한 곳에 자리 잡는다. 우리가 첫 손님이다. 그런데 1시에 개장한다고 한다. 20여분 남았는데 시간이 되자 주문을 받아간다. 아내는 전식으로 생굴 그리고 본식으로 연어구이를 주문한다. 나는 아침 먹은 것이 아직 소화 중인지 입맛이 없어서 가장 저렴한 스파게티를 시켰다. 아내는 식사를 아주 만족스럽게 한다. 아내의 여행은 식사여행이다. 좋은 음식 그리고 새로운 음식을 먹으려고 한다. 생굴 먹는 것은 TV에서 보는 여행소개 프로그램에서 가끔 보는데 먹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20여 년 전 스페인에서 살 때 어느 식당에서 정말 많이 먹었다고 기억하는데 나는 전혀 기억이 없다. 생굴에 레몬 즙을 잔뜩 뿌려 맛있게 먹는다. 연어도 잘 구워져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며 잘 먹는다. 나는 입맛이 없어 스파게티도 반 이상을 남긴다.



 점심 식사 후 항구 공원 벤치에서 휴식을 취한 뒤 해변 길을 따라 호텔로 돌아온다. 뙤약볕을 받고 걸어가지만 바닷바람이 시원해 견딜 만하다. 어제는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모래가 날렸는데 오늘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 해수욕하기에 아주 좋은 날씨이다. 나는 밀려오는 파도와 파도소리를 즐기며 걷고 있는데 아내는 자꾸 스페인 사람들이 옛날과 같지 않다고 말한다. 바닷가에서 여자들이 윗옷을 다 벗고 선탠을 한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나한테 사진 찍을 때 그런 것은 피하라고 얘기하면서. 나는 안경을 쓰고도 잘 보이지 않는데 자꾸 얘기하니 훔쳐보게 되는데 역시 흐려 보인다.



 해변에는 아직 철이 아니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 않다. 상당히 긴 해변이라 이곳 사람들은 행복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파도소리를 담기 위해 동영상도 몇 개 만든다. 아내는 이 동영상을 한국의 가족들에게 보내지 말라고 한다. 내가 호텔에 와서 재생을 해보니 그런대로 잘 만들어졌는데 아내는 파도소리가 너무 강렬하다고 한다. 나만 보라고 한다. 


 내일은 11시 버스로 사라고사로 이동한다. 자기 전에 이동 준비를 마친다. 한국을 출발 한지 56일 차의 하루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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