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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현서 Jun 01. 2024

스페인 3개월 살이(64)

- 비오는 날의 마그달레나 왕궁 -

 새벽부터 비가 내리고 있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오후 늦게 비가 멈출 모양이다. 바람에 흩날리는 가랑비라 우산을 써도 옷은 젖기 십상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행객이라서 가랑비 정도 온다고 좁은 호텔 방에 있을 수는 없다. ‘마그달레나 궁(Palacio de la Magdalena)’에 가기로 한다. 거리를 측정해보니 3.4 킬로미터이다. 비 오는 날 3.4 킬로미터 거리?  아내에게 걸어갈거냐고 물어봤더니 동네 구경도 하며 가겠다고 한다.


  마그달레나 궁은 1909~11년 기간 중 산틴데르 해변의 마그달레나 반도에 건설된 스페인 왕족이 사용했던 궁이다. 왕궁이 건설된 이 곳은 산탄데르 만을 지키기 위한 요새가 있었던 지역이라고 한다. 지금도 남아있는 요새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우산을 쓰고 호텔을 나선다. 아내가 미워하는 구글 앱은 그렇지 않아도 높은 지대에 있는 호텔에서 위로 더 올라가라고 한다. 숨차게 올라가니 대로가 나오고 길이 평탄해지면서 주거지역이 나온다. 그러니까 해변 쪽에서 보면 해변가에 늘어서 있는 19세기 풍의 건물 들 뒤로 어느 정도 경사진 언덕에 구 시가지가 형성되고 여기보다 더 높은 지역에는 신 주거지가 형성된 것이다. 도로 폭도 넓고 잘 정돈되어 있다.


 지도 앱이 알려준 대로 별 어려움 없이 목적지에 가까워진다. 해변이 보인다. 가랑비가 바람에 세차게 날리고 시야가 흐리지만 오기가 힘든 지역이어서 비를 맞으며 사진을 몇 컷 남겨둔다. 시내 해변에서 멀리 보였던 모래사장이 눈 아래에 펼쳐 있다. 산세바스티안의 넓은 해안을 봐서 그런지 유별나게 좁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이 맑으면 해변 풍경이 아름답겠다.  



 조금 더 가서 왕궁 입구가 나온다 입구에 경찰 초소가 있다. 이 초소에서 왕궁까지 거리가 1.4 킬로미터이다. 그 사이는 바다를 끼고 있는 넓은 녹지 공원이다. 공원 안에는 관광열차를 운행하고 있다. 시내관광까지 포함된 것인지 잘 모르겠으나 1인당 13 유로를 받는다.



 초소에서 왕궁에 이르는 길에도 볼거리가 있다. 주변 풍경도 아름답고 또 가는 길에 ‘바다와 남자’라는 야외 전시장이 있다. 동상 앞에 설치된 조각 안내판을 보니 아마 목선을 타고 대양을 답사한 사람을 기리기 위해 그 목선들을 전시해 놓은 것 같다.



 왕궁은 20세기 초에 건축된 것이라서 고색창연하지는 않고 그런대로 소박하다. 내부는 들어가 보지 못했다. 오늘과 내일 이틀 동안 회의 장소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왕궁에서 돌아올 때는 시내버스를 탄다. 가랑비가 내리고 여기에 바람까지 불어 우산이 뒤집히는 상황에서 걸어 내려갈 수가 없다. 관광열차 매표소 직원에게 물어보니 정류장 위치를 자세하게 알려준다. 버스 타고 높은 지역에서 굽이굽이 돌고 돌아 내려오는데 30여분 걸린다.



 버스에서 내려 산탄데르 시청 쪽으로 간다. 2019년 11월 시청 광장에 왔을 때 일요일 오후여서 그랬는지 광장과 주변 거리가 적막할 정도로 인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거리에 사람이 많이 있고 상가가 모두 개점을 해서 활기가 있다. 시청 앞에 있는 버거킹에 가서 점심을 때운다. 아내는 항상 그랬듯이 샐러드에 닭 날개 튀김을 먹고 나는 햄버거를 주문했는데 그 한 개를 배가 불러 다 먹지 못하겠다. 먹는 양이 크게 줄었다.



 아내가 왕궁 갈 때 가랑비에 스웨터가 젖어 으슬으슬하게 춥다면서 호텔로 돌아가자고 한다. 어차피 내일 아침에 히혼(Gijon)으로 가기 위한 짐도 싸야한다. 돌아가기로 한다.


 돌아가는 길목에서 뜻밖에 마요르 광장 같은 형태의 광장을 만난다. 나는 시청 앞 광장을 사실상의 마요르 광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이 광장이 규모나 형태면에서 마요르 광장인 것 같다. 광장 이름은 ‘벨라르데 광장(Plaza de Velarde)’이다. 그의 동상이 광장 입구에 보기 좋게 서있고 잘 관리되고 있다. 그는 19세기 초 나폴레옹이 프랑스를 점령하자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싸운 영웅이다. 산탄데르 시가 그를 영웅으로 기리기 위한 동상을 헌정한다고 기록해 놓았다.



 호텔로 올라가는 길은 경사진 길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급경사가 있는 고비마다. 계단 에스컬레이터나 워킹 에스컬레이터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수고를 덜어준다. 아내가 매우 신기해하고 감동한다.



 호텔에 도착해서 쉬고 있는데 비는 개기 시작한다. 갑자기 뱃고동이 울려 베란다로 나가보니 여객선, 화물선 등이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호텔이 높아 전망이 좋다보니 이런 호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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